경쟁보다는 협력 강화
중국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협력보다는 경쟁 구도를 형성한 적이 더 많았다. 1960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방 국가들과의 ‘평화공존론’을 주창한 것에 대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 촉발된 ‘중·소분쟁’ 이후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1년 ‘중국·러시아 선린우호협력조약’ 체결을 계기로 양국은 상호협력을 모색했지만 돈독한 관계로까지 발전하진 못했다. 옛 소련 영토인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한 탓이다.
러시아는 현재 옛 소련 국가들이 참여하는 경제공동체 ‘유라시아경제연합(EEU)’ 건설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서부지역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 유럽 등을 잇는 ‘실크로드 경제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전승 기념일 행사 하루 전인 지난 8일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경쟁보다는 협력 강화를 선택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우선 ‘서부노선’을 통한 대중(對中) 가스공급 사업의 기본조건에 합의했다. 서부노선 가스공급 사업이 최종 타결되면 러시아는 서부 시베리아 알타이지역에서 중국 서부지역으로 대량의 가스를 공급하게 된다.
군사 밀착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 해군 함정 2척은 지난 4일 흑해에 진입했다. 중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흑해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 국가와 러시아의 긴장이 팽팽한 지역이다. 중국 해군은 11일 흑해와 지중해에서 러시아 흑해함대와 해상 연합훈련을 벌인다. 중국 국방부는 지중해 해역에서 처음으로 양국이 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해상 방어 등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해 자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는 미국과 일본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일 공세 대응에 이해관계 일치
중·러의 ‘밀월 행보’는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 잡지 포린폴리시는 “러시아는 작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경제봉쇄 정책으로 압박해 들어오자 ‘러시아판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일본이 최근 미국과 밀착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 사정도 마찬가지다. 시 주석은 취임 이후 중화 민족의 부흥을 골자로 하는 ‘중국의 꿈’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전 세계에서 중국의 패권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동·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미국 일본 필리핀 등으로부터 ‘포위공격’을 받고 있어 러시아라는 ‘우군’이 절실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의 연간 천연가스 수요는 1800억㎥에 달하는 반면 공급량은 1230억㎥에 그쳐(2014년 기준) 추가 공급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양국 아직은 ‘프레너미’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 간 상호협력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물음표를 달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더디플로맷은 “현재 잠복해 있는 중앙아시아 문제가 앞으로 중·러 관계를 악화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 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서다. 중국은 이미 중앙아시아 5개 국가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연간 교역 규모로 따지면 러시아의 두 배가 넘는다. 또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 필요한 천연가스의 40%가량을 공급하고 있다.
더디플로맷은 “서방 국가들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을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에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세이브린 데용 헤이그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중·러 양국 간에는 여전히 불신이 존재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며 “두 나라는 현재 베스트 ‘프레너미(frenemy·친구이자 적)’ 관계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