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14) 노재봉의 ‘정치학적 대화’
이 책은 서울대 교수와 국무총리를 지낸 국가원로 노재봉 선생님과 제자 3인이 2년에 걸쳐 나눈 ‘정치학적 대화’를 풀어쓴 대담집이다. 우리는 매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대화를 한다. 이 책은 이런 사건들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학적 관점’에서 설명을 시도하는 수준 높은 책이다.저자는 정치학적 대화를 정치 현실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사상적 풀이라고 정의한다. 정치학적 접근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의 차원을 떠난 모호한 공백 상태에서 어떤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 초점을 맞춰 문제를 보는 것이다.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상상의 나래를 추상적으로 편다는 것은 유토피아적 사고이지 정치학적 접근은 아니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현실에 완전히 빠져버리면 현실을 용인하는 어용적 이데올로기가 돼버리니 그렇게 돼선 안 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적인 눈으로 현실을 보는 것이 정치학적 사고에서 중요하다. 예술가는 세상을 창조하고, 정치가는 현실에 개입한다는 말이 있다.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세상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려는 지적 노력의 결정체가 정치학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사건들을 정치학적 질문으로 재구성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책은 대담의 주제에 따라 여섯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제1장에서는 최근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역사전쟁, 세월호 사건, 문창극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전작권 전환 문제 등과 관련된 ‘정치적 대화’를 담고 있다. 이 장은 이들 사건을 단순히 시사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정치적 대화를 넘어서서 사상적 차원에서 질문으로 재구성하여 정치학적 해답을 제시한다.
제2장에서는 정치 복원의 중요성, 국가와 시민사회 균형 회복의 중요성, 한국 정치의 가족주의적 특징 등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에 관해서 정치학적 성찰을 시도한다. 제3장에서는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지금까지 이르는 한국 정치의 발전 과정에 대한 정치학적 재인식을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제4장에서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어떻게 북한의 민족공조론과 정치적 낭만주의의 영향하에서 민족지상주의로 타락해갔는가 하는 점을 ‘민족 이데올로기’ 비판의 관점에서 정치학적 대화를 통해 비판한다. 제5장에서는 대북 및 통일정책에 관한 정치학적 평가를 시도하고, 제6장에서는 급변하는 21세기 국제 정세에 관한 정치학적 이해와 대응 방안들을 대화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정치학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정치학을 배우는 과정을 보면 정치이론과 개념을 먼저 배운다. 그리고 한참 지나고 나서 이런 개념의 도움을 받아 정치현실을 이해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현실에 가까이 밀착해 현실을 보는 훈련을 받고 노력해야 하는데 현실과 한참 떨어지는 지적 훈련을 해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실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입장을 갖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 바로 부닥쳐서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훈련이 정치학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 책은 독자에게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체적 문제들을 놓고 ‘정치학적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훈련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게 매일매일 언론에 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 방안을 내보는 것이다. 특히 시간이 지난 뒤 그 생각이 얼마나 맞는지 테스트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노력이 지속될 때 현실과 밀착된 정치학적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 정치현실을 사상적으로 쉽게 이해하려는 것은 곧 살아 있는 정치학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이래서 권합니다
현실문제 뚜렷한 입장 갖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안목 길러주는 책
현실 문제를 뚜렷한 입장을 갖고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논술의 능력을 키우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가 ‘사상’이라고 하면 매우 어렵고 거창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이 책은 사상은 쉽게 말하면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현실을 만들어나가는지를 보는 것이 바로 사상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세대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그들의 생각이 바로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의 생각이 그 시대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니까 정치사상이라는 것은 이들을 움직인 생각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이론적 노력이다. 자꾸 ‘정치사상’ 하니까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데 ‘정치생각’이라고 하면 훨씬 더 잘 이해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 사람들은 매일매일 신문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대화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대화가 시사적이고 정치적 대화다. 이런 오피니언을 넘어서서 현실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사상적으로 해명해나가는 것이 ‘정치학적 대화’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식적 대화를 사상적 차원에서 질문의 형식으로 재구성해보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한국의 정치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상징어와 개념이 명료화되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정치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수준높은 지적 향연(饗宴)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김영호 <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