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39) 아랍의 봄과 식량안보

러시아·우크라이나, 밀 수확 줄자 수출 제한
식량 절반 수입하던 아랍 국가
식탁물가 상승으로 불안 커져

식량 안정확보엔 변수 다양
정부 일괄적 통제 어려워
대응 빠른 민간에 맡겨야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아랍의 봄은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사회 안정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이후 민주화 바람은 중동 지역을 비롯해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쓸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권이 퇴진했고 대중의 요구에 따른 개혁조치가 뒤따랐다.

이를 촉발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 국가 내부의 비민주적 정치제도나 관료의 부패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대중의 참여를 유도한 것은 실업이나 물가상승 같은 생활고였다. 특히 2007년부터 진행된 식량가격의 급격한 상승이었다. 아랍 국가들은 전체로 보면 식량 소비의 56%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량가격의 상승은 소득 대부분을 식량에 지출하는 가난한 서민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됐던 것이다.

최근 들어 식량가격의 변동성이 커져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협하고 있다. 2007~2008년과 2010~2011년에 걸쳐 식량의 국제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한 식량가격지수에 의하면 국제식량가격은 2007년 1월부터 2008년 8월까지 67.6% 치솟았다. 그리고 2010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약 40% 상승했다. 쌀의 경우 2007년에서 2008년까지 평균 83.2% 상승했고, 2010년에서 2011년까지 평균 9.6% 올랐다. 이런 국제식량가격의 상승은 원유가격 상승을 비롯해 바이오원료 개발, 곡물 수출 규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초래됐다. 아랍지역의 식량가격 상승에 일조한 것은 이들 지역에 식량을 수출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수출 제한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상고온에 밀 수확이 감소해 국내 식량가격이 상승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수출을 제한한 것이다.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식량의 자급자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문제가 되면 흔히 식량의 무기화나 식량 안보라는 오래된 이슈가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식량의 무기화는 대부분 전쟁기간에 상대방의 병참선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현대에는 전쟁기간이 아니라도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응해 곡물 수출을 금지했지만 그것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본지 2014년 5월17일자 참조) 그래서 식량안보는 국가 간 갈등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보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의 안정적 확보라는 과제는 시장의 확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시장경제에서는 필요한 식량을 자신이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식량이 제대로 공급될 것인지 우려하기도 한다.

농부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만큼의 식량을 생산해 줄 것인가? 농부들이 어느 날 식량생산을 중단하면 나는 굶주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농부가 식량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며 비싼 값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요즘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소비자는 없다. 농부가 식량을 공급하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 때문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적인 식량교역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리의 먹거리를 어떻게 외국에 의존하는가? 어느 날 식량수출을 중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식량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면 양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농부의 식량 생산은 왜 이뤄질까?)

국제 간 교역에서도 식량수출이 이뤄지는 것은 수출국 농민의 소득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식량수출은 식량수입국의 굶주림을 걱정해서 행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할 수는 있겠지만 식량의 무기화를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다. 나아가 식량의 해외 의존을 두려워해 식량을 자급하더라도 그것이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식량 생산에 필요한 종자나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이 수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급자족하더라도 이를 생산하기 위한 각종 원자재가 수입될 수 있다. 결국 식량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직간접 원자재를 전부 자급해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식량이 국제시장을 통해 조달되더라도 시장교란 요인은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단기적 변동에 의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공급애로에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시장 거래에서 상대방이 손해를 무릅쓰며 거래를 중단하는 일은 드물다고 하지만 시장 외부에서 발생하는 충격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하철 파업이 발생하면 출퇴근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예비차량이나 운전자를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것은 식량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작황이 나빠 식량가격이 오를 수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식량수입이 제한될 수 있다. 그리고 이익집단의 담합으로 가격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일시적으로 식량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식량의 비축을 늘린다든지 해외에 식량 조달을 위한 기지를 확보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을 정부에 맡기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식량시장의 변동을 잘 예측하지 못할 뿐더러 그럴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정부에 맡기면 오히려 식량의 공급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 그래서 식량시장의 변동을 잘 예측할 수 있는 민간 기업에 맡기는 게 나을 수 있다. 민간 기업은 식량시장의 변동을 잘 예측할수록 많은 이익을 본다. 그래서 식량이 쌀 때 비축하고 비쌀 때 팔고자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요즘은 민간 기업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세계의 식량작황을 파악하는 시대다. 한국 정부도 세계적인 식량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