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19) 1999년 EU와 유로의 탄생
1999년 EU와 유로의 탄생국가간 경제력 차이 고려없이
거래·헤징비용 줄이려
EU, 유로로 통화 단일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로 불안정성 드러나
ECB가 국채 담보로 받으며
PIIGS국가 방만한 재정 운영
인플레이션·버블 일으켜
PIIGS :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1999년 1월1일 유럽연합(EU)의 역사적인 통화 통합이 이뤄졌다. 독일, 프랑스 등 11개국이 단일 통화로 유로를 채택하고, 개별국의 중앙은행 대신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도록 했다. 1999년 출범 시에는 유로화가 금융회사 간 결제에만 사용되다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의 실물거래에 통용됐다. 당초 11개 국가로 출범한 유로존은 2001년 그리스, 2007년 슬로베니아에 이어 2008년 사이프러스와 몰타, 2009년 슬로바키아, 2011년 에스토니아, 2014년에 라트비아가 가입해 현재 18개 국가로 구성돼 있다.1999년 EU와 유로의 탄생국가간 경제력 차이 고려없이
거래·헤징비용 줄이려
EU, 유로로 통화 단일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로 불안정성 드러나
ECB가 국채 담보로 받으며
PIIGS국가 방만한 재정 운영
인플레이션·버블 일으켜
PIIGS :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EU가 유로를 출범시킨 명분은 유럽 내에서 같은 통화를 사용함으로써 개별 통화 간의 환전에 수반되는 거래비용과 헤징비용을 줄여 유럽인의 부와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함이었다. 출범 당시 세계 각국은 대체로 유로의 탄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유로가 달러에 대응하는 또 다른 기축통화가 된다면 국제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경쟁이 일반재화의 품질을 제고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듯이 통화도 경쟁을 해야 건실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의 통화보다는 복수의 통화가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러나 유로가 기축통화로 자리를 잡고 달러와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은 전적으로 유로의 안정성에 달려 있다. 유로가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해 기축통화로서 달러와 경쟁할 수 있다면, 기대한 대로 유럽인의 소득과 부는 증가할 것이고 국제 환율이 안정돼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유로가 불안정해진다면 유럽 경제는 오히려 타격을 받고 세계 경제는 불안해진다.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전자가 아닌 후자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및 유럽의 재정위기와 함께 유로의 불안정성이 드러났고, 유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 경제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사실 유로가 출범했을 때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로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세계 경제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어떤 특정학파와 관계없이 밀턴 프리드먼과 폴 크루그먼 등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유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것은 유럽의 통화 통합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EU 회원국 간 실업률에 큰 차이가 있었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인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해 실업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재정적자를 통해서라도 실업을 줄이려고 했다. 여기에 통화 통합을 하면서 ECB는 각국이 발행한 국채를 대출 담보로 받아주기로 돼 있었다. 이런 구조는 유럽 각국이 방만하게 재정지출을 늘리려는 강한 유인을 제공했다.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와 같이 실업률이 높은 국가들이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다.
한 예로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가 매우 방만한 운영으로 재정적자가 컸음에도 유로존 가입 덕택에 금리가 하락, 독일 금리에 접근했다. 위기 시 유로존의 건실한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암묵적 보증 때문이었다. 그리스는 그렇게 낮아진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정부지출을 더욱 늘렸다.
PIIGS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를 유럽은행들이 매입해 그 채권을 담보로 금리가 더 낮은 ECB로부터 대출을 받아 민간 부문에 대여해줬다. 그에 따라 새로운 유로가 창출돼 통화량이 대폭 늘어났다. 이런 재정적자의 화폐화 과정으로 인플레이션이 유발돼 유로가치가 하락하고 불안정해졌다. 또한 대규모 통화량이 유입된 스페인과 아일랜드 같은 국가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생겼고, 2007년 그 버블이 꺼지면서 금융위기를 겪었다. 유럽의 재정 문제는 통화 통합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더욱 악화됐다.
이런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 각국이 재정적자를 3% 이하, 정부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60% 미만으로 유지하는 ‘안정성 협약’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것을 지키는 국가는 없었다. 거의 모든 국가의 재정적자가 3% 이상이었고, 전반적으로 유럽 국가의 부채 비율이 80%가 넘었다.
각국이 자국의 통화를 사용하고 있을 경우에 정부의 의사결정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국의 통화 가치를 유지하려고 하며 국내 경제 정책에 신중을 기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재정적자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다른 국가로 떠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함이다.
통화 통합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회원국 정부가 이런 정책을 쓸 유인이 사라졌다. ECB가 재정적으로 무책임한 국가에 대해 보험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에는 늘 도덕적 해이가 따른다. 그래서 EU 회원국들의 도덕적 해이는 구조적인 문제다. 앞으로 도덕적 해이로 인해 재정적으로 무책임한 국가의 재정적자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리고 재정적자의 화폐화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며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로는 불안정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회원국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유로의 장래는 매우 불투명하고 어둡다. 유럽이 장기적으로 성장의 활력을 상실하고 정체될 수도 있다. 만일 유럽의 재정위기가 또 한 번 불어닥치면 세계 경제는 또다시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