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장기간 검거되지 않자 검찰이나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에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유씨의 도피를 돕는 주변인들이 여러 대의 대포폰(차명 휴대폰)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그를 돕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범죄수사에는 기술적으로 유선전화 감청만이 가능하고 휴대전화 감청은 불가능하다. 휴대전화를 감청하려면 이동통신사에 감청 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법도 개정해야 한다. 범죄수사를 위해서는 이런 감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최근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도 추진됐다가 무산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유병언 씨 장기도피를 계기로 휴대전화 감청을 둘러싼 찬반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휴대폰 감청 없이는 감청 자체가 무의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수사기관은 휴대전화 감청 장비가 없고 이통사는 감청 설비 구비 의무가 없어 휴대전화를 이용한 범죄에 속수무책”이라며 통신보호비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그는 테러 납치 산업스파이 간첩 등 중범죄에 이용되는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도록 이통사가 휴대폰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감청허가를 받으면 통신사에 마련될 감청 설비를 활용해 합법적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휴대폰은 이미 보편적인 통신수단이 됐는데 휴대전화를 감청에서 제외한다면 감청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감청 오·남용을 막기 위해 영장제도를 강화하고 감청 의뢰기관과 감청 설비기관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한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휴대전화 감청이 전 국민 통신의 자유를 잠재적으로 침해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형사법이 전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위시한 기본권을 침해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감청의 오·남용 문제는 휴대전화 감청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발생시 제재규정에 의해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성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위치정보를 24시간 수집, 보관했다 제공하는 게 아니라 통신이 이뤄진 시점의 위치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 반대 “사생활 심각한 침해…재앙적 위험 우려”
반대하는 측은 그렇지 않아도 권력기관에 의한 불법적인 도청 감청이 과거 적지 않았는데 이를 아예 합법적으로 한다면 그로 인한 인권침해를 어떻게 막겠느냐는 입장이다.
송호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금융회사관처럼 보안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는데도 정보유출이 될 수 있는데 정보관리시스템이 전혀 안 돼 있는 통신사에 감청 설비를 허용하면 훨씬 더 위험해진다”며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같은 당의 박영선 의원도 국회 공청회에서 “감청 오·남용에 대한 통제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면서 “통신 사실 확인자료 요청 건수도 연간 수십만건에 달하는데 이는 법이 개정되면 위치정보 파악도 수십만건 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인 바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통신사업자에게 감청기기를 구비하게 하려면 5000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는데 과연 그 정도의 큰 돈을 들여야 할 만큼 휴대전화 감청이 수사 효율성을 높일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그 돈으로 차라리 전국 곳곳에 파출소를 만들어 민생치안을 강화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이 변호사는 휴대전화 감청이 이뤄질 경우 GPS를 통해 수십 m 정도까지 정확하게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데 이는 재앙적인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국가기관이 감청 범위를 확대하려고 한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국정원이 그동안 광범위한 감청을 해 온 점을 감안할 때 더더욱 악용될 위험이 적지 않다”고 반대론을 폈다.
○ 생각하기
휴대전화 감청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통신사에 감청 설비를 의무화 해야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감청을 어떤 경우에 어떤 절차를 통해 허용할 것인지라고 봐야 한다.
범죄 수사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용 방지를 위한 사전적, 그리고 사후적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느냐일 것이다.
감청을 위해 법원의 영장발부와 비슷한 사전 허가제를 도입하고 사후에 감청이 적절한 경우에 이뤄졌는지, 남용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국회가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만 수사기관에 의해 오용이나 남용된 경우가 적발된다면 관련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을 규정해 꼭 필요한 경우, 필요할 정도까지만 감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현재 범죄수사에는 기술적으로 유선전화 감청만이 가능하고 휴대전화 감청은 불가능하다. 휴대전화를 감청하려면 이동통신사에 감청 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법도 개정해야 한다. 범죄수사를 위해서는 이런 감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최근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도 추진됐다가 무산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유병언 씨 장기도피를 계기로 휴대전화 감청을 둘러싼 찬반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휴대폰 감청 없이는 감청 자체가 무의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수사기관은 휴대전화 감청 장비가 없고 이통사는 감청 설비 구비 의무가 없어 휴대전화를 이용한 범죄에 속수무책”이라며 통신보호비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그는 테러 납치 산업스파이 간첩 등 중범죄에 이용되는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도록 이통사가 휴대폰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감청허가를 받으면 통신사에 마련될 감청 설비를 활용해 합법적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휴대폰은 이미 보편적인 통신수단이 됐는데 휴대전화를 감청에서 제외한다면 감청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감청 오·남용을 막기 위해 영장제도를 강화하고 감청 의뢰기관과 감청 설비기관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된다고 한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휴대전화 감청이 전 국민 통신의 자유를 잠재적으로 침해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형사법이 전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위시한 기본권을 침해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감청의 오·남용 문제는 휴대전화 감청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발생시 제재규정에 의해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성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위치정보를 24시간 수집, 보관했다 제공하는 게 아니라 통신이 이뤄진 시점의 위치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 반대 “사생활 심각한 침해…재앙적 위험 우려”
반대하는 측은 그렇지 않아도 권력기관에 의한 불법적인 도청 감청이 과거 적지 않았는데 이를 아예 합법적으로 한다면 그로 인한 인권침해를 어떻게 막겠느냐는 입장이다.
송호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금융회사관처럼 보안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는데도 정보유출이 될 수 있는데 정보관리시스템이 전혀 안 돼 있는 통신사에 감청 설비를 허용하면 훨씬 더 위험해진다”며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같은 당의 박영선 의원도 국회 공청회에서 “감청 오·남용에 대한 통제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면서 “통신 사실 확인자료 요청 건수도 연간 수십만건에 달하는데 이는 법이 개정되면 위치정보 파악도 수십만건 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부정적 견해를 보인 바 있다.
이은우 변호사는 “통신사업자에게 감청기기를 구비하게 하려면 5000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는데 과연 그 정도의 큰 돈을 들여야 할 만큼 휴대전화 감청이 수사 효율성을 높일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그 돈으로 차라리 전국 곳곳에 파출소를 만들어 민생치안을 강화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이 변호사는 휴대전화 감청이 이뤄질 경우 GPS를 통해 수십 m 정도까지 정확하게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데 이는 재앙적인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국가기관이 감청 범위를 확대하려고 한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국정원이 그동안 광범위한 감청을 해 온 점을 감안할 때 더더욱 악용될 위험이 적지 않다”고 반대론을 폈다.
○ 생각하기
휴대전화 감청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통신사에 감청 설비를 의무화 해야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감청을 어떤 경우에 어떤 절차를 통해 허용할 것인지라고 봐야 한다.
범죄 수사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용 방지를 위한 사전적, 그리고 사후적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느냐일 것이다.
감청을 위해 법원의 영장발부와 비슷한 사전 허가제를 도입하고 사후에 감청이 적절한 경우에 이뤄졌는지, 남용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국회가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다만 수사기관에 의해 오용이나 남용된 경우가 적발된다면 관련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을 규정해 꼭 필요한 경우, 필요할 정도까지만 감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