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소위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정부가 행정고시 선발인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5급 채용에서 공개경쟁 시험을 통한 선발, 다시 말해 행정고시를 통한 고급 공무원 충원 비율을 2017년까지 50%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민간 경력자들을 채용하겠다는 내용이다.
현행 5급 공무원(사무관) 채용 시험은 1963년 고등고시(당시 3급 채용시험)가 행정고시로 바뀌었을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오래 전부터 고위관료 등용문으로 여겨졌던 행시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하자 찬반 양론이 뜨겁다. 사법고시도 없어지는 마당에 당연한 수순이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개천에서 용나는 길을 막는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행정고시 선발인원 축소를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 찬성 “관피아 폐해 근절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
찬성론에는 아무래도 관피아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드는 경우가 많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고시 출신의 전직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줄로 퇴직 후에도 끊임없이 관련 이익단체들로 자리를 옮겨가며 연명하고 있다”며 정부의 축소 방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관료들이 관계-업계-국회에 걸쳐 삼각동맹을 맺고 있는데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행시가 이제는 더 이상 소위 ‘개천에서 용나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김재일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고시 합격생의 50% 정도가 특목고·자사고 및 강남 지역 고교 출신이라는 것만 봐도 그 취지가 퇴색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최근에는 주거비 생활비 학원비 등 매월 수백만원이 투입돼야 합격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이제는 행시도 돈 없이는 도전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공직에 수혈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행시 선발인원 축소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의 전문화 다각화 속도가 엄청난데 몇년간 고시에만 매달린 고시출신들이 공직에 진출하다보니 이들이 전문성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전문성을 결여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시에 매달리는 학생이 많아지면 학교 수업 정상화가 어렵고 한창 일할 젊은이들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 반대 “채용방식 문제 아니라 철밥통 관행이 문제”
관피아 문제는 선발 이후의 문제이지 선발 과정상 문제는 아닌데 행시를 축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견해도 있다. 행시 준비생이라는 한 학생은 “우리나라에서 행시만큼 공정하게 선발하는 제도는 없는데 부유하지 않은 가정 출신들의 그나마 희망을 갖을 수 있는 관문을 좁힌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민관 유착 등 문제는 공채냐 특채냐하는 선발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공무원에 대한 감시와 관리를 강화하고 퇴직 관리를 엄격히 하는 것이 올바른 개선방안이라는 것이다.
민간 채용을 늘릴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한 고시 수험생은 “미국처럼 민간 경력자가 공직에 임용될 경우 퇴직 후 민간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오히려 더한 특권과 전관예우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경력채용은 아무래도 스펙을 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채용과정에서 객관성을 떨어뜨리고 소위 ‘있는자’들만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든다. 행시가 아직까지는 소위 ‘신분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의 견해도 비슷한 맥락의 주장이다. 진재구 한국인사행정학회장은 “만약 행시가 없어진다면 7급 공채 출신이나 민간 경력자 출신 관피아가 새로 형성될 것”이라며 “관피아 폐해는 고시 때문이 아니라 이익집단의 이익 극대화 전략과 퇴직 관료들의 탐욕이 맞물려서 생겨난 것”이라는 입장이다.
○ 생각하기
행정고시 축소 내지 폐지론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2010년에도 비슷한 방안을 발표했었다. 당시에는 2011년부터 5급 채용의 30%를 민간 경력자로 채용하고 이 비율을 2015년까지 50%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한 달 만에 거의 백지화되다시피 했다. 당정 협의과정에서 구체적 비율이나 목표 연도는 정하지 않기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2011년 이후 5급 채용에서 민간 전문가를 매년 100여명씩 선발, 최근까지 민간 전문가 채용비율은 22~25%선을 유지해왔다.
사실 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고시 등 모든 고시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최근 공직 안팎의 환경이다. 고시제도는 과거 개발연대에 국가 발전을 이끌 소수의 엘리트가 필요했었던 시기에는 요긴한 선발제도였다. 사회가 복잡다기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소수의 똑똑한 관료들로 경제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이제는 공직이 민간의 발전속도를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시기다. 고위 공직자 선발에 민간 전문가 충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개방형 공무원 채용이나 민간 전문가 채용 문제는 그간 소리만 요란했지 그리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5급 채용 방식 변경이 이번에는 제대로 이뤄질지, 다시 흐지부지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현행 5급 공무원(사무관) 채용 시험은 1963년 고등고시(당시 3급 채용시험)가 행정고시로 바뀌었을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오래 전부터 고위관료 등용문으로 여겨졌던 행시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하자 찬반 양론이 뜨겁다. 사법고시도 없어지는 마당에 당연한 수순이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개천에서 용나는 길을 막는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행정고시 선발인원 축소를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 찬성 “관피아 폐해 근절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
찬성론에는 아무래도 관피아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드는 경우가 많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고시 출신의 전직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줄로 퇴직 후에도 끊임없이 관련 이익단체들로 자리를 옮겨가며 연명하고 있다”며 정부의 축소 방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관료들이 관계-업계-국회에 걸쳐 삼각동맹을 맺고 있는데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행시가 이제는 더 이상 소위 ‘개천에서 용나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김재일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고시 합격생의 50% 정도가 특목고·자사고 및 강남 지역 고교 출신이라는 것만 봐도 그 취지가 퇴색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최근에는 주거비 생활비 학원비 등 매월 수백만원이 투입돼야 합격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이제는 행시도 돈 없이는 도전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공직에 수혈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행시 선발인원 축소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의 전문화 다각화 속도가 엄청난데 몇년간 고시에만 매달린 고시출신들이 공직에 진출하다보니 이들이 전문성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전문성을 결여한 정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시에 매달리는 학생이 많아지면 학교 수업 정상화가 어렵고 한창 일할 젊은이들에게는 시간 낭비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 반대 “채용방식 문제 아니라 철밥통 관행이 문제”
관피아 문제는 선발 이후의 문제이지 선발 과정상 문제는 아닌데 행시를 축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견해도 있다. 행시 준비생이라는 한 학생은 “우리나라에서 행시만큼 공정하게 선발하는 제도는 없는데 부유하지 않은 가정 출신들의 그나마 희망을 갖을 수 있는 관문을 좁힌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민관 유착 등 문제는 공채냐 특채냐하는 선발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공무원에 대한 감시와 관리를 강화하고 퇴직 관리를 엄격히 하는 것이 올바른 개선방안이라는 것이다.
민간 채용을 늘릴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한 고시 수험생은 “미국처럼 민간 경력자가 공직에 임용될 경우 퇴직 후 민간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오히려 더한 특권과 전관예우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경력채용은 아무래도 스펙을 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채용과정에서 객관성을 떨어뜨리고 소위 ‘있는자’들만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든다. 행시가 아직까지는 소위 ‘신분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의 견해도 비슷한 맥락의 주장이다. 진재구 한국인사행정학회장은 “만약 행시가 없어진다면 7급 공채 출신이나 민간 경력자 출신 관피아가 새로 형성될 것”이라며 “관피아 폐해는 고시 때문이 아니라 이익집단의 이익 극대화 전략과 퇴직 관료들의 탐욕이 맞물려서 생겨난 것”이라는 입장이다.
○ 생각하기
행정고시 축소 내지 폐지론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2010년에도 비슷한 방안을 발표했었다. 당시에는 2011년부터 5급 채용의 30%를 민간 경력자로 채용하고 이 비율을 2015년까지 50%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한 달 만에 거의 백지화되다시피 했다. 당정 협의과정에서 구체적 비율이나 목표 연도는 정하지 않기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2011년 이후 5급 채용에서 민간 전문가를 매년 100여명씩 선발, 최근까지 민간 전문가 채용비율은 22~25%선을 유지해왔다.
사실 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고시 등 모든 고시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최근 공직 안팎의 환경이다. 고시제도는 과거 개발연대에 국가 발전을 이끌 소수의 엘리트가 필요했었던 시기에는 요긴한 선발제도였다. 사회가 복잡다기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소수의 똑똑한 관료들로 경제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이제는 공직이 민간의 발전속도를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시기다. 고위 공직자 선발에 민간 전문가 충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개방형 공무원 채용이나 민간 전문가 채용 문제는 그간 소리만 요란했지 그리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5급 채용 방식 변경이 이번에는 제대로 이뤄질지, 다시 흐지부지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