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공화국 대한민국

● 화장품 판매하려면 정신감정
● 일회용 이쑤시개 개별포장에 제조연월
● 대형마트는 의무휴업
● 삼겹살집 오픈땐 건강진단서
[Cover Story]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에 있는 규제입니다
지난 20일 오후 9시5분. 저녁식사도 거른 채 장장 7시간 동안 이어진 마라톤 회의가 끝났지만 각 부처 장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로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죄악”이라며 “이런 죄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고 장관들은 규제를 완화하는 게 자신의 목표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 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앙정부의 경제 규제 1만1000여건 가운데 최소한 20%를 박 대통령 임기 말인 2017년까지 폐지하기로 했다. 또 내년부터 규제를 신설할 때는 늘어나는 규제비용만큼 기존 규제를 없애는 규제비용 총량제(cost-in, cost out)를 전면 실시하기로 했다.

‘암덩어리’로 지목된 규제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규제를 ‘암덩어리’로 지목했다. 그만큼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병폐라는 얘기다. 또한 우리나라에 그만큼 규제가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모든 규제가 철폐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규제의 옥석을 가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신설된 대기업 규제는 논란이 많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대기업 프렌차이즈의 신설 점포 거리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지만 시장논리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많다. 규제가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소상공을 겨냥한 설득력이 약한 규제도 많다. 예를 들어 화장품을 팔기 위해선 전문의에게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화장품이 직접 피부에 와닿는 제품인 만큼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항이라는 입장이지만 이것이 과연 필요한 규제인지는 논란이 많다. 메이크업 전문업체를 내려면 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일회용 이쑤시개도 개별포장지에 제조연월을 모두 표시해야 한다. 삼겹살 집을 오픈하려 해도 건강진단서가 필요하다. 음식점 영업은 신고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인·허가 수준의 규제가 수두룩하다.

‘관리=규제’라는 잘못된 인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취하는 규제 형태는 다양하다. ‘모범거래기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유제품, 편의점 등의 업체와 종사자 간 공정한 거래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었다. 준수사항, 금지사항 등을 담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힘을 배경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은 강하다. ‘가이드라인’은 공정위 소관 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준수방법을 담고 있다. 해당 내용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지침’은 가이드라인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공정위의 법 집행 기준이 보다 명확해 공정위가 위반사건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근거가 된다. 규제는 기본적으로 늘어나는 속성이 있다. 무엇보다 어떠한 사건, 예를 들어 식품위생이나 환경, 건축물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은 “정부는 뭐하고 있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 정부나 지자체는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떤 형태로는 규제조치를 취한다. 한마디로 ‘관리=규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당연히 국민 여론이 나빠지고 거기에 대응해 조치를 취하다보면 ‘과잉규제’가 양산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규제를 취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선 ‘규제=권한’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것 또한 규제가 늘어나는 요인이다.

속력내는 규제개혁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암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규제개혁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우선 정부는 현재 1만1000건에 달하는 경제 관련 규제를 올해 10% 줄이고, 박 대통령 임기까지는 20%까지 감축할 예정이다. 또한 규제에 미온적인 부처나 공무원은 문책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특히 일자리와 관련된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는 인증 숫자를 줄이고, 일몰제도를 적극 시행할 예정이다. KS표준을 국제표준과 연결시켜 한번 인증을 받으면 추가 인증이 필요 없도록 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규제일몰제도는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때 그 규제를 계속 존속할 명백한 사유가 없는 규제에 대해서는 규제영향 분석서에 그 존속기한을 정하여 법령에 명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규제 방식에는 포지티브 방식과 네거티브 방식이 있다. 포지티브 방식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허용하는 품목이나 서비스를 일일이 열거하는 방식이고, 네거티브 방식은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되 특정한 품목이나 서비스의 개방을 금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규제를 푼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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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송이 코트’ 해외판매 막은 액티브X…공인인증서가 발목


액티브X가 ‘암적 규제’로 꼽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액티브X를 깔아야 사용할 수 있는 ‘공인인증서’ 문제를 거론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한국 드라마를 본 수많은 중국 시청자들이 극 중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의상과 패션잡화 등을 사기 위해 한국 쇼핑몰에 접속했지만 결제를 위해 요구하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결국 구매에 실패했다고 한다”며 “우리나라에서만 요구하고 있는 공인인증서가 국내 쇼핑몰의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액티브X는 인터넷 초창기인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인터넷 응용 프로그램.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 사용된다.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려 해도, 전자정부나 전자금융을 이용하려 해도 액티브X를 깔아야 한다.

문제는 액티브X가 윈도 PC,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다른 운영체제(OS), 다른 브라우저로는 인터넷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어도 해외 팬들은 전지현(천송이)이 입고 나온 코트를 한국 사이트에서 살 수가 없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