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의 두 얼굴
‘KTX민영화 논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네 가지다. ‘민영화 됐다고 KTX요금이 천정부지로 오를 수 있을까’ ‘자연독점이란 것은 무엇인가’ ‘납세자가 공기업 부채를 메우는 것은 정의로운가’ ‘한국보다 먼저 민영화한 나라는 나아졌는가’ 하는 것이다. 네 가지를 알고 있으면 괴담에 휩쓸리지 않고 토론과 논술에 큰 도움이 된다. (1) 고속버스와 경쟁…요금폭등?
‘KTX민영화 논란’이 한창일 때 이런 괴담이 떠돈 적이 있다. “서울~부산 간 KTX요금이 20만원이 돼 서민들은 KTX를 타지도 못할 것이다.” 이 괴담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까.
이 괴담이 간과한 것은 대체재의 존재다. 사실 서울~부산 간 교통편은 많다. KTX를 비롯해 새마을열차, 승용차, 고속버스, 시외버스, 비행기…. 교통 소비자들은 각자의 편익에 따라 이 중 하나를 선택한다. 단순히 가격만 비교하거나, 소요시간을 우선시하거나, 쾌적함과 접근성을 먼저 생각하는 이용자도 있다.
KTX요금(현재 특실 7만4000여원, 일반 5만3000여원)이 민영화됐다고 20만원으로 오른다면 소비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대체교통 수단인 고속버스는 2만여원, 저가항공(김포공항)은 5만여원으로 훨씬 싸다. KTX 이용객은 현재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 뻔하다.
대체재의 존재는 가격경쟁을 유발한다. KTX요금이 폭등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조금 더 서둘러 고속터미널이나 공항으로 갈 것이다. 소비패턴에 변화가 일어난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은 KTX를 이용할지도 모른다. 대체재를 무시한 채 망하고 싶다면 요금을 올려도 된다.
KTX민영화 이후 운영기업이 아랑곳 않고 요금을 천정부지로 올리겠다고 해도 현실화되긴 어렵다. 정부는 각종 교통요금을 관리한다. 물가 관리가 정부의 핵심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 자연독점…민영화 금지?
독점시장이란 단 하나의 생산자(공급자)가 존재하는 시장이다. 기본적으로 이 시장에서는 생산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급량과 가격을 임의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소비자 이익 등 전반적인 사회후생을 악화시킬 수 있다. 독점은 나쁘고 경쟁이 좋다는 논리의 기본 프레임이다.
철도 민영화를 논할 때 독점보다 자연독점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자연독점은 ‘독점은 나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고 할 때 쓰는 개념이다. 자연독점이란, 전체 생산비용이 높아 여러 생산자보다 하나의 생산자가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공급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점이 될 수밖에 없는 시장을 말한다. 전기, 상하수도, 통신, 철도가 보통 자연독점 분야로 분류된다. 가격안정과 배분의 효율성을 우선시한다.
문제는 만성적자 상태인 철도를 공기업 체제의 자연독점 상태로 놔둬야 하느냐는 데 있다. 한국에서 자연독점에서 민간경쟁 체제로 바뀐 분야는 많다. 통신, 철강, 석유 등이 그런 분야다. 통신은 SK텔레콤 KT LG텔레콤 등 민간에 개방돼 세계 최고의 시장으로 바뀌었다. 개방을 통해 정부의 재정부담을 덜고 사회후생이 증대됐다.
철도도 통신처럼 여러 민간회사가 경쟁하는 서비스 체제로 바뀔 수는 없을까. 가령 철로는 정부가 관리하고, 철로를 이용하는 서비스 회사는 노선에 따라 혹은 동일 노선에서 2~3개사로 재편하는 방안은 불가능할까?
(3) 부채…납세자 부담이 정의?
KTX를 포함해 철도민영화가 나온 배경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 때문이다. 현재의 운영체제와 경영상태로는 정부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다.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의 부채는 2020년이면 2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2004년 6.3조원에서 2012년 15.6조, 2013년 상반기 17조원을 넘어서는 추세를 감안한 적자 규모다. 지난해 매출이 4조8100여억원에 불과했던 코레일이 갚을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문제는 적자와 이자를 납세자들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요금을 낮게 유지한 대가이니 세금으로 메워줘도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첫째 ‘KTX를 타지 않거나 못 타는 수많은 사람이 왜 세금을 내 적자를 메워줘야 하는가’이다. 이런 장사를 일컬어 앞으로 남는 듯이 보이지만 뒤로 밑진다고 한다. 설령 가격이 조금 오르더라도 이용자가 부담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을까.
둘째는 코레일의 방만한 경영과 독점공급자라는 점이다. 공기업은 경쟁에 노출돼 있는 민간기업과 달리 경제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원가개념도 없다. 뒤에는 국민, 정부라는 든든한 물주도 있다. 막대한 부채와 적자운영에도 불구하고 급여와 복지를 늘린다. 철도 종사자라고 해서 높은 임금을 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만성적자하에서는 평균임금이 6700만원일 수는 없다. 2만5000여명을 거느린 철도노조의 힘에 눌린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레일 부채 중에는 과거 KTX 시설 투자에서 생긴 게 상당하기 때문에 부채를 탕감하거나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나서 탕감정책을 쓸 수 있다. 문제는 민영화도 대안이라는 점이다. 외국 성공 사례도 없지 않다.
(4) '철도 민영화' 먼저 한 영국·일본은…
외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를 알아두면 좋다. 일본 영국 독일이 대표적인 국가다. 이들 나라의 철도 역시 부채 때문에 민영화했다. 민영화 직전인 1986년 일본국유철도의 부채는 37조1000억엔이었다. 영국과 독일도 고객유인 실패와 방만한 인력운영 등으로 인해 매년 엄청난 부채에 시달렸다. 한 해 적자 규모가 영국은 2억7000만파운드, 일본은 1조7000억엔에 달했다. 독일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민영화 이후 영국은 2억7000만파운드, 일본 JR 여객 6개사는 6100억엔 흑자를 냈다. 독일 도이체반은 경영합리화를 통해 세계적인 다국적 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정부가 일부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을 쓰긴 했지만 민영화를 통해 변신했다는 게 포인트다.
요금은 어떤 추세를 보였을까. 영국과 일본 고속철의 요금은 민영화 이후 오르거나 미미했다. 영국에선 예약 없이 표를 달라고 하면 26만원 정도를 줘야 한다. 환불도 가능하고 아무 때나 탈 수 있지만 ‘멍청한 외국사람’만 이 표를 산다고 한다. 가격은 종류, 시간, 예약 등에 따라 다양하다. 일본은 도쿄~신오사카 요금은 20년 전과 10% 차이도 안 난다. 독일도 별 변화가 없다.
요금 수준은 물가와 국민소득을 감안해 비교해야 한다. 명목상 요금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경제학도의 자세가 아니다. 주요 선진국의 요금은 1.6~2배이지만 국민소득 등을 감안하면 격차는 줄어든다. 민영화를 악마화(demonize)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