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8) 통역사의 대체재는 통역기?
직업의 흥망성쇠를 예측하거나 설명하는 데 있어 대체재만큼 유용한 경제개념도 없다. 특정 직업을 대체할 만한 신규 직업이 태동하는지, 아니면 특정 직업이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대신해 줄 또 다른 직업이 있는지 여부가 해당 직업의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대체재는 원래 한 재화의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다른 한 재화의 수요가 감소하는 경우를 말한다. 콜라와 사이다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콜라와 사이다는 맛이나 마시는 이유, 파는 곳이 비슷한 재화다. 콜라 가격을 올리면 사이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는 데 이런 관계에 놓인 두 재화를 우리는 대체재라 하는 것이다. 두 재화의 대체 정도는 수요의 교차 탄력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요의 교차 탄력성이란 한 재화의 가격이 변할 때, 다른 재화의 수요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측정하는 척도이다. 이러한 수요의 교차 탄력성을 통해 우리는 두 재화 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한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였을 때 다른 재화의 수요량이 증가했다면, 두 재화는 서로 비슷한 성격을 가진 재화로써 서로 대체 관계에 놓여 있다. 소비자들은 두 재화에 비슷한 효용을 느끼며 서로 대체해서 소비하기 때문에 한 재화의 가격이 오르면 이를 피해 다른 재화의 소비량을 늘린다. 이처럼 두 재화가 대체관계에 놓여 있을 경우 수요의 교차 탄력성은 양수로 나타난다.

반대로 한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였을 때, 다른 재화의 수요량이 줄어들 경우, 두 재화는 서로 보완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여 해당 재화의 소비가 줄어들면, 이 재화와 함께 이용해 왔던 보완관계에 놓인 또 다른 재화의 수요량도 함께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두 재화가 서로 보완재인 경우 수요의 교차 탄력성은 음수가 된다.

2020년 자동통역기 보편화?

이제 수요의 교차 탄력성과 대체재의 개념을 통해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을 살펴보자. 동시통역사는 그동안 전 세계 교역량의 증가와 인적 교류의 활성화로 인해 그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온 직업이었다. 외국 기업이나 정부와 교류할 일은 지속적으로 늘어났지만 이에 반해 동시통역사 공급은 제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미래학자들은 통역사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것은 통역사의 대체재라 할 수 있는 자동 통역기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자동통역기가 원활히 제 기능을 수행하는 시기를 2020년 즈음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의 IT 분야 전문 리서치 회사인 가트너는 2006년을 자동통역의 태동기로 보고, 당시로부터 길게는 10년 후인 2016년에는 자동통역 기술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빌 할랄 교수 또한 2017년에는 실시간으로 통역이 가능한 기술이 구현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일본의 UFJ종합연구소는 2020년 전 세계 자동통역 시장규모를 약 10조원으로 예측하기도 하였다.

자동통역기의 대두는 통역사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자동 통역기가 발달한 시기가 되면 통역사의 역할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30만명 수준의 통역사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며 2020년 들어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표현력과 순발력 동시 필요

하지만 통역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자동통역기가 통역사를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통역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외국어 구사능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훌륭한 통역사는 표현력과 순발력이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사들도 사람인지라 항상 적절한 방식과 표현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통역사는 연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체적인 맥락 속에 파악하고 이를 보다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통역사는 연사의 말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많은 통역사들이 외국어 구사 능력 못지않게 유창한 모국어 구사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자동 통역기는 연사가 한 말을 있는 그대로 통역하지만, 통역사는 연사가 전달하고자 한 내용을 연사보다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최근 통역사는 각자가 전문 통역 분야를 갖고 있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연사들이 제시하는 일련의 내용들은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전문적 내용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를 비롯해서 법정, 통상 문제, 의료 및 과학기술 분야까지 다양한 전문 분야가 통역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런 전문 분야의 용어들은 일반적인 자동통역기로는 통역되지 않는 범주의 단어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다. 통역사들에게 요구하는 통역 내용이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다분히 전문적이고, 특수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인하우스(in-house) 통역사를 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하우스 통역사는 일반 기업이나 국가기관 등에 취업하여 통역 업무를 수행하는 통역사를 말한다. 기업 내지 기관들이 인하우스 통역사를 둘 경우 자신들의 업무에 필요한 통번역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여 통역사로 하여금 해당 분야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통역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제 3외국어 전문가도 늘어

자동통역기가 통역사를 완벽히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통역사들의 역할이 부분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자동통역기가 아니라 외국어 구사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현장에서는 해외 업무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해외 유학파 내지 외국어 구사 능력이 출중한 직원도 그만큼 늘어나면서 통역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회사도 많다. 이로 인해 최근 많은 통역사들은 영어 이외의 희소성이 높은 제3외국어의 통역 전문가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랍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은 영어에 비해 수요가 많진 않지만, 공급도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역사들의 의견이다.

[직업과 경제의 만남] (8) 통역사의 대체재는 통역기?
통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통역사로 활동하기 위해서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원 학위를 마치 자격증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부산대학교 등에서 동시통역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입학이 결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졸업도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질적인 수준을 담보하고자 하는 통역사와 통역대학원의 자체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에는 통역 대학원을 마치고 MBA 내지 로스쿨로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통역사들이 제공하는 수준 높은 통역 내용이 더욱 기대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용어 풀이

▨ 통역사

통역사는 특정 언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통역의 종류로는 순차통역, 수행통역, 동시통역의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순차통역은 한 사람이 말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 뜻을 전해주는 식으로 수행된다. 반면 수행통역은 한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의사소통을 돕는 통역 업무를 말하며, 동시통역은 국제회의나 워크숍 등에서 연사가 즉각적으로 통역해 주는 업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