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반려동물 전성시대…유모차로 백화점가고 주치의 상담도
반려동물 전성시대다. 아파트는 물론이고 공원에도, 대형마트에도 주인과 산책하고 쇼핑(?)하는 애완견들이 즐비하다. 반려동물 시장은 올해 2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사료 7000억원, 관련 용품 5000억원, 의료·장례 7000억원, 여가활동 등 기타 1000억원 정도다.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관련 업계와 농협경제연구소 등이 조사한 자료를 합친 수치다. 사회화가 덜된 강아지를 훈련시키고 건강 관리까지 해주는 ‘애견유치원’까지 등장했다.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이웃과의 마찰도 불거진다. 이른바 반려동물을 키우는 에티켓이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애완 옷 디자이너' 직업도

[Focus] 반려동물 전성시대…유모차로 백화점가고 주치의 상담도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내놓은 한국직업사전에는 ‘애완동물 장의사’ ‘애견 옷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처음 등장했다.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대하면서 생긴 일자리다. 자신이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주고, 죽으면 장례식까지 치러주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 산업도 급팽창하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은 함께 사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한마디로 입히고 먹이고 병을 치료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강아지 두 마리가 먹을 한 달치 사료(4.5㎏)는 싼 것은 1만원 정도지만 보통은 5만원을 넘긴다. 고급 사료는 옥수수로 만든 일반 사료와 달리 고기 참치 등 영양소가 풍부한 재료로 만든다. 가격대는 ㎏당 9000원 이상으로 일반 사료보다 세 배가량 비싸다. 전체 사료에서 고급 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0%대에 불과했으나 올 상반기 62%로 치솟았다.

#내과·안과·치과 등 분류 치료도

반려동물 옷은 예복, 드레스, 구명조끼 등으로 종류가 늘어났다. 유기농 섬유로 만든 고급 제품도 인기다. 사람 옷에는 돈을 아껴도 애견 옷에는 돈을 펑펑쓰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겨난다. 한복, 트렌치코트 등 종류만도 8000가지에 이른다. 한 벌 평균 가격은 5만원대, 1인당 평균 구매금액은 10만원 정도다. 의류, 액세서리, 급식기, 영양제, 미용용품 등을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는 애완용품 종합 쇼핑몰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개가 보는 비디오 제품도 나왔다. 심지어 고양이 놀이터를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반려동물 장묘업은 동물보호법이 2007년 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전국에 270여개 애완동물 장묘서비스업체가 등록돼 있다. 반려동물이 죽으면 장묘업체에 연락해 전문적인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장례식, 화장, 납골, 제사 등 모든 과정은 동물 크기와 종에 따라 3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든다.

#한복, 트렌치코트,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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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동물병원에서는 치료하기 어려운 암이나 종양 같은 중증질환에 걸린 반려동물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상급’ 동물병원도 늘어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처럼 ‘대형 종합병원’에 해당하는 곳이다. 상급 동물병원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부터 디지털 엑스레이, 초음파기기, 복강경 수술장비 등 전용 의료기기가 갖춰져 있다. 대형 병원처럼 내과, 외과, 치과, 안과 등으로 분류해 전문 수의사가 진료와 치료를 맡고 있다.

반려동물 산업이 팽창하면서 이 분야에서 창업하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몰 제작업체 ‘카페24’가 자체 추산한 결과 지난해 반려동물용품 관련 분야에서 창업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전체의 2%로, 2009년에 비해 50%가량 늘었다.

#핵가족·소외된 사회도 한몫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무엇보다 핵가족을 반려동물 증가의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자식과 떨어져 사는 노년층이 늘어나면서 애완견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자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반려동물이 늘어나는 요인이다. 물질은 풍부해지지만 근본적으로 외로움이 깊어지는 현대사회의 특징도 반려동물 숫자를 늘리고 있다. 일부에선 이른바 ‘과시효과’도 반려동물 산업을 팽창시킨다고 말한다. 더 비싼 애완견을 이웃에 자랑하고 싶은 심리로 반려동물 산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기견 급증…1년에 10만마리

반려동물 산업의 급성장 이면에는 그늘도 있다. ‘키우는 사람’이 증가한 만큼 ‘버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1년에 버려지는 동물만 10만마리에 이른다. 유기견 급증과 100억원이 넘는 경비 지출, 질병 전파, 자연생태계 파괴 등 유기동물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반려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려면 사람의 책임도 함께 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 업계에서는 ‘의료보험 적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버림받는 동물’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대형마트에 밀려나는 ‘애견 1번지’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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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주변은 한때 ‘애완동물의 1번지’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충무로의 ‘애견 거리’는 비교적 한산하다. 영업을 하는 곳은 불과 10곳 정도다.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애견 거리가 조성된 것은 1960년대였다. 1950년대 서울 명동에 있던 국내 최초 애완동물센터 ‘애조원’이 명동 개발에 밀려 충무로로 옮겨가면서 관련 용품 점포가 하나둘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이 거리에 사람이 넘쳤다.

이곳이 위축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반려동물 시장이 성장하자 대형 유통업체들이 뛰어들었다. 이마트는 2010년 애견호텔, 카페, 유치원, 미용실 등의 시설을 갖춘 ‘몰리스펫샵’을 열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부터 반려동물 용품 전문 판매점에 동물병원 놀이터 등을 함께 입점시킨 ‘펫가든’을 운영하고 있다. 홈플러스도 올 들어 동물병원 전문기업인 쿨펫과 협력해 반려동물 서비스 전문관 ‘아이 러브 펫’을 개점했다. 영세상인이 주를 이루던 애견 거리는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인터넷 발달도 충무로 애견 거리에 직격탄이 됐다. 소비자는 인터넷 관련 카페에서 반려동물을 직접 거래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커뮤니티도 점점 활성화하고 있다. 충무로 ‘애견 1번지’의 위축된 모습은 유통 형태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김정은/강진규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