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 속에 왕이나 귀족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진귀한 물품들을 소유하였다. 고대에는 책이, 중세에는 종교적 유물들이 주요 대상품들이었다. 하지만 시기를 막론하고 진귀한 물품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바로 예술품이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가(家)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과시하기 위해 진귀한 물품들을 수집하는 데 있어 독보적인 가문이었다.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조반니 비치 메디치는 예술품들을 몇 대에 걸쳐 수집할 뿐만 아니라 당대의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킬 정도로 예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런 수집에 대한 관심은 17세기 전후로 유럽 전역에 성행하여 왕가와 귀족뿐만 아니라 부유한 상인 계층까지 폭넓게 확대되었다. 18세기의 이르러서는 유럽 각국 왕가의 소장품을 보관하던 공간이 공공 미술관으로 변했고 소장품을 분류하여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별도의 인력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직업으로서 큐레이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연구와 보존, 전시기획 등 작품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소장품을 조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소장품과 관련해 다방면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미술계의 엘리트 집단인 것이다.
무엇보다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감각으로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흩어진 주제의 작품들을 큐레이터 자신만의 시각으로 엮어 전시라는 형태로 재구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만의 시각으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가려져 있던 작품들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큐레이터 옌스 호프만은 ‘창조자로서의 큐레이터(The Curator as Creator)’라는 표현으로 큐레이터의 작업이 작품을 만드는 창작의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비가격요소로 작품 경쟁력 높여
이러한 큐레이터의 활동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수요자의 선호를 변화시켜 해당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 즉 비가격경쟁요소를 통해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비가격경쟁이란 품질이나 AS정책, 광고 등 가격 이외의 요소를 활용하여 소비자의 수요를 높이는 전략을 의미한다. 현실의 기업들은 같은 상품일지라도 품질이나 용도가 조금씩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경우 상품 간에 가격차이가 크게 나게 되면 소비자들은 다른 상품을 선택하려 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설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비슷한 상품인 경우 가격경쟁으로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다. 비가격경쟁은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선호를 유인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전략이다. 비가격경쟁에 성공할 경우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미술시장에서 비가격경쟁은 큐레이터를 통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술작품도 미술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하나의 상품이다. 사실 미술작품의 가격은 다른 상품들과는 달리 특별한 기준 없이 작가의 요구에 맞춰 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상 모든 미술작품의 가격책정과정이 시장경제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에 따라 미술작품은 물감, 액자와 같은 재료값과 작품전시에 소요되는 일부 비용에 더해 작품성과 작가의 인지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10호 작품 한 점의 가격은 75만원 내외로 책정된다. 작가가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길 원하더라도 비슷한 인지도를 가진 작가의 작품가격이 이보다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될 경우 소비자들은 다른 작품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생산되는 미술시장에서 유사한 수준의 작품가격은 비슷하기 때문에 가격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자극하기 어렵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안목으로 유망한 작가의 작품들을 선정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기획·전시하여 작품의 가치가 가격 외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해 컬렉터의 수요를 유인해 내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외국을 중심으로 ‘독립 큐레이터(Freelancer Art Director)’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술시장 수요·공급의 조정자
이들은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의 경우 일부 독립 큐레이터는 자신의 미적 가치관에 맞는 특정 작가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작가의 창작활동과 큐레이터의 전시기획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큐레이터는 수요를 유도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작품의 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술시장 내에서 큐레이터는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수요와 공급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큐레이터의 역할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세계 경매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하나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발굴하여 컬렉터들에게 소개한 것도 미국의 큐레이터다.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1988년 사망할 때까지 무명 낙서화가였던 바스키아는 70년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인 헨리 겔트찰러에 의해 소개된 이후 현재는 미술시장에서 피카소, 샤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컬렉터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큐레이터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재구성하여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작품의 가치를 알려 컬렉터들의 엄청난 수요를 유인해 낸 것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미술현장에서는 큐레이터 역할이 단지 작품을 소개하여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는 매개자에 한정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러한 인식은 세련된 전시장과는 대비되는 비좁은 사무실과 추석과 설을 제외하면 1년에 두 번 이상 휴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열악한 근무환경, 그리고 화려한 드라마 속 큐레이터와는 달리 최저생계비 수준의 낮은 금전적인 처우를 받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분명 비관적이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관운영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993년 이래 지속적으로 미술관의 수가 증가하고, 특히 2010년을 기점으로 공립 및 사립 미술관의 증가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큐레이터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으며 미술관 및 대형 갤러리들도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어 미술계 전반에서 큐레이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보다 더 명료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컬렉터의 소망을 작품으로 소통
무엇보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고급인력들이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망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큐레이터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컬렉터의 소망을 작품을 매개로 소통시켜주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현대 사회에서 작품 한 점에 뒤엉켜 있는 소망과 소통의 욕구를 풀어헤치는 역할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는 열악한 처우의 현재 상황에도 불구하고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김동영 KDI 연구원 kimdy@kdi.re.kr
오늘날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연구와 보존, 전시기획 등 작품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소장품을 조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소장품과 관련해 다방면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미술계의 엘리트 집단인 것이다.
무엇보다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감각으로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흩어진 주제의 작품들을 큐레이터 자신만의 시각으로 엮어 전시라는 형태로 재구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만의 시각으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가려져 있던 작품들에 숨을 불어넣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큐레이터 옌스 호프만은 ‘창조자로서의 큐레이터(The Curator as Creator)’라는 표현으로 큐레이터의 작업이 작품을 만드는 창작의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비가격요소로 작품 경쟁력 높여
이러한 큐레이터의 활동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수요자의 선호를 변화시켜 해당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 즉 비가격경쟁요소를 통해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비가격경쟁이란 품질이나 AS정책, 광고 등 가격 이외의 요소를 활용하여 소비자의 수요를 높이는 전략을 의미한다. 현실의 기업들은 같은 상품일지라도 품질이나 용도가 조금씩 다른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경우 상품 간에 가격차이가 크게 나게 되면 소비자들은 다른 상품을 선택하려 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설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비슷한 상품인 경우 가격경쟁으로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다. 비가격경쟁은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선호를 유인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전략이다. 비가격경쟁에 성공할 경우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수요의 증가로 이어져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미술시장에서 비가격경쟁은 큐레이터를 통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술작품도 미술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하나의 상품이다. 사실 미술작품의 가격은 다른 상품들과는 달리 특별한 기준 없이 작가의 요구에 맞춰 정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상 모든 미술작품의 가격책정과정이 시장경제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에 따라 미술작품은 물감, 액자와 같은 재료값과 작품전시에 소요되는 일부 비용에 더해 작품성과 작가의 인지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10호 작품 한 점의 가격은 75만원 내외로 책정된다. 작가가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길 원하더라도 비슷한 인지도를 가진 작가의 작품가격이 이보다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될 경우 소비자들은 다른 작품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생산되는 미술시장에서 유사한 수준의 작품가격은 비슷하기 때문에 가격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자극하기 어렵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전시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안목으로 유망한 작가의 작품들을 선정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기획·전시하여 작품의 가치가 가격 외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해 컬렉터의 수요를 유인해 내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외국을 중심으로 ‘독립 큐레이터(Freelancer Art Director)’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술시장 수요·공급의 조정자
이들은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의 경우 일부 독립 큐레이터는 자신의 미적 가치관에 맞는 특정 작가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작가의 창작활동과 큐레이터의 전시기획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큐레이터는 수요를 유도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작품의 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술시장 내에서 큐레이터는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수요와 공급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큐레이터의 역할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세계 경매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하나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발굴하여 컬렉터들에게 소개한 것도 미국의 큐레이터다.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1988년 사망할 때까지 무명 낙서화가였던 바스키아는 70년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인 헨리 겔트찰러에 의해 소개된 이후 현재는 미술시장에서 피카소, 샤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컬렉터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큐레이터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재구성하여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던 작품의 가치를 알려 컬렉터들의 엄청난 수요를 유인해 낸 것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미술현장에서는 큐레이터 역할이 단지 작품을 소개하여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는 매개자에 한정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러한 인식은 세련된 전시장과는 대비되는 비좁은 사무실과 추석과 설을 제외하면 1년에 두 번 이상 휴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열악한 근무환경, 그리고 화려한 드라마 속 큐레이터와는 달리 최저생계비 수준의 낮은 금전적인 처우를 받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분명 비관적이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관운영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993년 이래 지속적으로 미술관의 수가 증가하고, 특히 2010년을 기점으로 공립 및 사립 미술관의 증가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큐레이터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으며 미술관 및 대형 갤러리들도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어 미술계 전반에서 큐레이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보다 더 명료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컬렉터의 소망을 작품으로 소통
무엇보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고급인력들이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망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큐레이터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컬렉터의 소망을 작품을 매개로 소통시켜주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현대 사회에서 작품 한 점에 뒤엉켜 있는 소망과 소통의 욕구를 풀어헤치는 역할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는 열악한 처우의 현재 상황에도 불구하고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김동영 KDI 연구원 kimdy@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