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소통의 어려움

[아는 만큼 쓰는 논술] (15) 의사 소통
의사소통은 매우 자주 출제되는 논술주제 중 하나이다. 학생들은 소통 내지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말이 뭐 그리 대수로울까라고 생각하지만 개인과 개인이 올바르게 소통하고 사회 전체에 ‘올바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고찰할 수 있는데 하나는 언어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나 태도 때문이다.

▧ 어떻게 출제될까

2010 서강대 수시1 : 그린버그와 세종의 문제해결방식
2010 숙명여대 수시2 : 인터넷 공론장에서의 문제점
2009 서강대 수시2-2 : 일물일어론적 언어관의 한계
2009 한국외대 모의 2차 : 의사소통의 구조
2008 한양대 수시2-2 : 의사결정 과정의 갈등
2007 연세대 정시 : 다른 존재의 생각을 이해하는 일

위 문제들은 전부 의사소통의 문제점을 다룬 것들이다. 의사소통 문제가 출제되면 수험생은 그 문제의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완벽한 언어는 가능할까

17세기에 로크는 각각의 사물, 돌, 새, 나뭇가지가 고유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불가능한 언어를 가정했다. 푸네스는 한때 그와 비슷한 유의 언어를 기획했다. …중략… 사실, 푸네스는 모든 숲의 모든 나무들의 모든 나뭇잎들뿐만 아니라 그가 그것들을 지각했거나 그것들을 다시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날들의 하나하나를 7천 개의 기억들로 축약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다음 기호들을 가지고 그 기억들을 정의해 보려고 했다. …중략… 그는 ‘개’라는 종목별 기호가 다양한 크기와 형상들을 가진 상이한 수많은 하나하나의 개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2009 서강대 기출문제의 제시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 푸네스는 자폐아이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 단위로 기억할 수 있는 세밀한 기억력을 가졌지만 그 단편들을 종합하여 개념화할 수 있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다. 수 천 마리의 개를 보았지만 그것들을 ‘개’라는 하나의 상위개념으로 포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생명체일 뿐. 자연히 그에게 언어는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언어만이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일물일어설이다. 철학적으로 일물일어가 가능하고 이러한 완전하고 정밀한 언어를 구사하여 의사소통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것이 가능할까.

프리즘을 통과해 나타나는 색을 몇 가지로 정의가 가능하겠는가. 수십 수백 가지로도 분류할 수 있고, 일곱 가지로 나눌 수도 있다. 사물과 언어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사물의 폭이 언어에 비해 훨씬 다채롭고 넓기 때문이다. 에스키모의 언어에는 눈(雪)에 해당하는 단어만 40여개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알아야 할 전제사실은 ‘올바른 의사소통’이 ‘완벽한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래 제시문을 읽어보자. 서강대 수시2-1 기출문제의 2번 문항에 나온다.

세존(世尊, 석가모니)께서 영산의 법상에 오르시니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꽃잎 하나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자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고 좌우를 둘러보는데 오직 한 사람, 가섭(迦葉)만이 혼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불교 고사

여기서 제시되는 것이 ‘완벽한 의사소통’이다. 석가모니의 마음 속 생각과 느낌을 한 명의 제자가 온전히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둘 사이의 소통에는 어떠한 언어적 수단도 없다. 마치 텔레파시와 같이. 하지만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은 어떨까. 위와 같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료 1>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이전의 대화 내용이나 공통의 경험 등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대화 참여자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는 총체적인 정보를 맥락이라 한다. 의사소통에서는 이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대화 참여자들이 상호 간의 조정 행위를 하고, 대화 중에서 산출되는 특정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추가해 나가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공통의 배경인 맥락과 이를 만들어가는 맥락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의사소통 행위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communicate가 어원상으로 ‘공동의 것으로 만들다(make common)’라는 의미의 라틴어 communicare와 연결되어 있음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소통 행위란 대화 참여자들이 공동의 지식 또는 공통의 배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일반인들의 의사소통은 <자료1>과 같이 이루어진다. 우리들은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제주도’라는 단어는 그곳을 직접 경험한 사람과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어른들이 ‘차’라고 말하면 그들의 공통경험상 승용차를 의미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아이들이 ‘차’라고 말하면 장난감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의미전달의 불일치는 개개의 화자들이 갖고 있는 경험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 경험들을 근접시키고 서로 공유하게끔 만드는 작업을 맥락화라고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아무리 올바른 언어를 구사한다 하더라도 저마다의 지식, 경험, 문화, 인식, 내면의 차이 때문에 의사소통은 매우 어색하고 불완전하게 시작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잦은 소통으로 인해 조금씩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의사소통 행위자의 악의

의사소통을 곤란하게 만드는 요인은 언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이해관계에 따라 뜻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언어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게끔 만들기도 한다. 이것을 다룬 2010 숙명여대의 제시문이다.

(…중략… ) 이렇듯 우리는 이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의 중론이 지향해야 하는 곳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중론의 방향성은 수사학의 임무이기도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야기한 중론이 선동적인 것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산파술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선동적인 중론에 대항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언어상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던 것이다. 언어상의 성공은 늘 그러하듯이 곧 중론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소피스트들의 언어는 중론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던 반면, 소크라테스의 언어는 중론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이것은 다만 아테네에서의 민주정치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시사해 주는 민주 정치의 유형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중론을 이끌어내지 못한 소크라테스의 언어를 살해한 소피스트들의 언어는, 바로 민주 정치가 가능케 하였던 중론을 이끌어냄으로써 비록 오류의 중론일지라도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으로 정착시켰다. 오류의 중론이 민주 정치를 지배함에 따라 아테네 민주정치는 서서히 중우 정치로 흘러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을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이렇듯 수사가 민주 정치 자체를 근간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민주 정치를 중우 정치로 흘러들게 하였던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정직하고 선동적인 언어가 실패하고 소피스트의 잘못된 언어가 대중을 사로잡고 중론, 즉 사회의 여론으로 굳어진 사건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현대의 여러 사회에서도 종종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정부의 정보 차단, 언론사의 악의적 보도, 그리고 대중들의 편향된 인식 등이 종합될 때 소통은 악의적으로 차단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 올바른 소통에 도달하는 길

언어는 완벽한 도구가 아니다. 이 불완전한 도구를 사용하여 최대한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근접시키는 작업은 보다 많은 소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소통에 참여하는 나와 타인 누구라도 고의적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