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양면의 칼' 집단소송… 소비자보호 좋지만 기업은 어쩌라구!
2010년 월마트 ‘성차별 150만명 집단소송’. 이 소송은 2001년 6명의 월마트 여성 종업원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월마트의 여성 종업원 임금이 남성에 비해 낮은 것은 물론 승진 기회도 평등하지 않음을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소송으로 1998년 이래 월마트에서 일한 여 종업원 150만명이 대상이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라면업체 4개사(농심·삼양식품·오뚜기·한국야구르트)가 미국에서 수천억대 집단소송을 당해 집단소송제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집단소송은 과거에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많은 권리가 소송을 통해 인정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소송 남발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라고 해서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억지로 소송을 만드는 변호사들도 있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이른바 소송꾼들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요소에 대비하는 적절한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소액·다수·개인 피해자 구제

집단소송제는 말 그대로 개인이 아닌 집단의 자격으로 소송을 낸다. 영어로 ‘Class Action’이라고 하는데 이해관계가 밀접한 다수의 피해자 중에서 그 집단을 대표하는 당사자가 소송을 하고 그 판결 효력이 피해자 전체에 미치게 하는 집단구제(일괄구제)제도다. 보통 손해배상 소송은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참여의 뜻을 밝힌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집단소송은 불참여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으면 법원 판결의 효력이 같은 조건의 피해자에게 공통적으로 미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집단소송의 원조는 400년 전 영국에서 집단소송과 비슷한 형태의 재판이 시행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집단소송이 가장 활성화된 나라인 미국은 1938년 도입했다.

특히 1996년 미국 대법원이 집단소송에 대한 규칙을 만들었고 집단 소송의 까다로운 요건이 완화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은 가해자에게 피해금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집단소송제는 미국 제도와 다르다. 미국에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을 경우 모든 사건에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집단소송이 가능한 사건 종류를 엄격히 제한해 증권 관련 사건에만 인정하고 있다. 주가조작·분식회계 등으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 50명 이상 모이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 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집단소송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32억弗 물어준 글로벌기업 파산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집단소송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담배 집단소송이다.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담배가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충분히 알리지 않은 담배회사의 잘못이 크다는 주장을 펴며 소송을 제기했다. 1999년 플로리다주 1심 법원은 담배회사가 흡연자들에게 1450억달러를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손해배상액이 워낙 커 이대로 배상한다면 담배회사가 모두 파산할 지경이었다. 담배회사들은 상급 법원에 상고했고, 플로리다주 대법은 집단소송이 아닌 개별적 소송을 다시 제기하라고 판결했다.

다우코닝이란 회사를 상대로 한 여성들의 집단소송도 유명한 사건이다. 성형수술에 사용되는 실리콘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을 회사가 알고도 숨겼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었다. 다우코닝은 미 법원으로부터 피해자들에게 32억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한국인 660명도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받았다. 이 소송으로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된 다우코닝은 결국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는 집단소송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세계적 대기업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눈덩이처럼 커진 기업 부담

집단소송제도는 소비자의 권익을 대폭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에는 패소시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부담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약속했으나 당선 후 새 정부의 국정과제집에서는 집단소송 대상을 ‘담합 및 재판매 가격유지행위’로 제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불공정을 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소송이 남발되고 기업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또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의 리니언시(자신신고자 감면제도) 활용도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보완책이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리니언시는 담합 가담 기업이 담합 사실을 자백하면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로 1순위 신고자는 과징금 100%를, 2순위 신고자는 50%를 감면받는 제도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집단소송제와 담합 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 손해배상소송이 활발해지면 사업자들의 자진 신고 유인이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손해배상소송이 늘면 리니언시 신청 자료에 대한 비밀 보호 문제도 지금보다 민감해져 이에 대한 점검도 요구된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 @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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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나간 국내기업들, '집단소송 리스크'
[Focus] '양면의 칼' 집단소송… 소비자보호 좋지만 기업은 어쩌라구!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집단소송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다. 최근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구르트 등 라면 4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결정은 엉뚱하게 해외 소비자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하는 빌미가 됐다.

공정위는 4개 회사가 지난 10년간 출고가격을 담합해 부당하게 가격을 인상했다며 1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에 로스앤젤레스(LA)의 한인 마트 측은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규모가 28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액의 3배를 물리는 징벌적 배상제를 감안할 때 라면 4사가 미국에서 불리한 재판을 받으면 최대 8400억원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또한 기업들은 이번 소송으로 현지에서 기업 이미지가 나빠져 영업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에서 소송의 위협에 시달리는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연비 과장으로 집단소송 위기에 처한 현대자동차는 자발적인 보상계획을 발표하고 합의를 시도 중이다. 액정표시장치(LCD) 가격 담합 혐의로 집단소송을 당한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30일에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첫 심리를 받았다.

법조계는 “한국의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현지 경쟁업체들이 한국 기업의 의도치 않은 실수도 부풀려 소송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 집단소송을 대리해온 미국계 로펌인 폴 헤이스팅스의 김종한 대표 변호사는 “미국의 기업 관련 소송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모두 소송에 쏟아붓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소송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특히 영업직원들의 준법 교육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