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4>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중국?
기원전 8세기께 작은 도시국가로 왕의 지배를 받던 로마는 왕정체제를 청산하고 귀족과 평민계급으로 구성된 공화정을 출범시켰다. 이후 내부적인 계급투쟁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는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을 차례로 점령해 나갔다. 그 결과 기원전 1세기께는 갈리아, 카르타고와 같은 대국들까지 복속시켜 지중해 전역을 차지하는 대국으로 성장하여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완성된 로마제국은 그 크기가 오늘날 미국 전체 면적의 약 3분의 2에 해당할 정도로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넓은 영토는 강력한 국력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고대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을 포괄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로마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융합된 다양한 문화들은 건축, 예술, 문학 등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향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유럽 문화 전반에 걸쳐 로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로마제국은 고대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국가였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 로마의 멸망은 갑작스러웠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래로 로마의 군사 정책기조는 군 병력을 내부 치안에 필요한 최소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후 패배를 모르던 로마제국의 군대는 크고 작은 전쟁에서 번번이 패배하게 된다. 제국 형성의 기반이 되었던 팽창주의가 중단되자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제국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로마는 동서의 두 제국으로 갈라지게 된다. 분열된 로마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어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고대역사상 최강제국인 로마의 패망은 표면적으로는 팽창주의의 중단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인 듯 보이지만, 경제학적 시각에서 이는 중국과의 무역수지 적자로 인한 화폐경제의 몰락이 야기한 사건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은본위제 무너뜨린 중국무역

화폐경제란 화폐를 매개로 상품이 교환되고 유통되는 경제이다. 오늘날 종이로 만든 지폐가 화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대 로마경제에서 사용되는 화폐는 주로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다. 즉 귀금속이 화폐로 사용되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금화 또는 은화를 제조할 때 실질적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량의 금과 은이 사용되기 때문에, 그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실제 귀금속인 금과 은이 필요하였다는 점이다. 당시로서도 희소한 귀금속이 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화폐발행권을 가진 왕이라고 할지라도 화폐발행을 자유자재로 늘리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고대 로마제국의 화폐경제를 무너뜨린 건 바로 중국과의 무역이었다.

공화국 시절부터 강해진 국력으로 인해 로마의 귀족들은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이는 사치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를 잘 표현해주는 현상이 로마인들의 비단에 대한 높은 수요였다. 로마인이 비단을 처음 목격하게 된 계기는 파르티아와의 전투였다. 생사를 오가는 전투 속에서도 파르티아인들이 입고 있던 비단이 로마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로마는 비단을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그중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비단은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다. 중국은 이미 기원전 약 3500년 전부터 비단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단의 품질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월등하였다. 로마인들의 증국 비단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사막을 가로질러 중국에서 로마에 이르는 교역로의 이름이 ‘실크로드’인 점을 보더라도 당시 중국 비단에 대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문제는 비단에 대한 인기가 높아질수록 로마제국 내의 은이 줄어든다는 데에 있었다. 중국은 은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에 로마는 비단 수입의 대가로 은을 제공했다. 따라서 비단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출되는 은의 양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비단에 대한 로마인들의 관심이 하루아침에 줄어들리 없었다. 오히려 베리우스 황제 시절 비단이 퇴폐 문화를 조장한다고 하여 비단옷 자체를 공식적으로 금하자 비단 무역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비단 선호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세기께는 비단 자체가 화폐처럼 거래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고대판 평가절하…인플레 초래
결국 로마의 재정은 이를 감당해내지 못하였다. 서기 64년 네로 황제는 일주일간이나 지속되었던 대화재로 인해 도시재건을 위한 재원확보가 시급해지자 화폐개혁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은 함량을 줄이고 값싸고 풍부한 구리를 섞은 은화를 대량으로 유통시켰다. 처음에는 구리의 함량이 적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구리의 함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은의 함량이 감소하여 원래 4.55g이었던 은화가 2.3g까지 줄어들었다. 고대판 평가절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은 1㎏으로 은화 100개를 만들던 것을 110개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은으로 더 많은 화폐를 만들다 보니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로마경제의 악화는 이후 100년간 급격히 진행되었다. 약 3세기 중반에는 은의 함유량이 초기 은화의 5000분의 1까지 떨어져 고철에 불과한 수준까지 추락하였다. 이러한 은화를 그 누구도 거래에 사용하지 않았다. 화폐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 것이다. 화폐가치의 하락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조세를 현물로 받기 시작하였다. 이는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시장에서 거래를 위한 생산은 사라지게 되었고, 경제 전체가 자급자족 형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무역적자 따른 화폐경제 몰락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현물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금화나 은화와 같은 화폐는 거의 유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의 급료도 생필품이나 곡물, 가축 등 현물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렵게 되자 이국땅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을 국내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 전역에 걸쳐 있던 로마제국의 쇠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심지어 4세기 중반 이후부터 외부의 압력이 갑자기 거세지자 로마제국은 화려했던 역사를 이어가지 못하고 마침내 패망하고 말았다. 결국 로마의 번영과 패망을 동시에 야기한 팽창주의 정책이 점차 힘을 잃은 것은 비단수입으로 인한 중국과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야기한 화폐경제의 몰락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시장경제의 파탄이 한 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4>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중국?
오늘날에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이래 금의 보유량과 무관하게 화폐를 발행할 수 있어 어렵지 않게 화폐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국가는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해 무분별한 화폐발행을 지속하고 있어 화폐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교해진 경제시스템 덕분에 로마와 같이 자급자족 경제로 전락할 가능성은 낮지만, 무분별한 화폐발행은 자국 화폐의 상대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락시키고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이 목격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항상 안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기 이전의 시기가 현대 역사의 손에 꼽히는 호황기였음을 떠올려 볼 때, 고대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국가인 로마가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한순간 붕괴되었음은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김동영 KDI 연구원 kimdy@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 화폐 경제

화폐란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사회적 발명품을 의미하고, 화폐경제는 화폐를 매개로 재화가 교환되고 유통되는 경제를 의미한다.


▨ 본위화폐와 본위제도

상품의 가격은 화폐의 가치를 기준으로 표시되는데, 가치척도의 기능을 하여 한 국가 화폐제도의 기초가 되는 화폐를 의미한다. 또한 본위화폐는 그 자체가 실체적인 가치를 가지며 액면가치와 실제가치가 같다. 한편 본위제도는 본위화폐를 기초로 하여 화폐의 가치를 정하는 제도로서, 본위화폐가 금이면 금본위제도, 은이면 은본위제도, 금과 은을 함께 사용하면 복본위제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