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지난 7일부터 반(反)정부 시위가 2주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보다 민생 경제를 더 챙겨야 한다”는 게 시위대의 주장이다. 축구 사랑이 유별나기로 이름난 브라질 국민들이 “월드컵도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월드컵이 생계보다 중요하냐"
지난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은 떠들썩했다. 내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만 1년 앞두고 날짜를 카운트다운하는 시계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상파울루는 학생들의 시위로 시끄러웠다. “월드컵 준비를 할 돈으로 공공교통 요금을 내리라”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었다. 며칠 만에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17일엔 시위대가 20만명까지 불어났다. 20여년 만에 최대 규모다. 브라질의 축구 영웅인 ‘축구 황제’ 펠레도 이번 반정부 시위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펠레는 20일 현지 TV 인터뷰에서 “시위를 잊고 이제 우리의 조국이자 같은 핏줄인 국가대표팀을 기억하자”며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시위대와 네티즌은 펠레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일부에선 “경호원 없이 버스를 타본 후에도 그렇게 어리석은 말을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펠레의 무식함은 천재적인 축구 실력과 비례한다”는 말도 나왔다.
#어설픈 돈 풀기로 물가만 상승
브라질 반정부 시위의 계기는 7일 상파울루 시내버스 요금이 3헤알(약 1570원)에서 3.2헤알(약 1670원)로 인상된 것이었다. 가격 인상 폭은 크지 않지만 시민들은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 준비를 위해 쓰고 있는 막대한 예산에 분노했다.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건설과 교통 인프라 개선에 300억헤알(약 15조5000억원)을 책정하고 있다. 경기장 건설이 지연되면서 실제 지출액은 이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브라질 정부가 국민들의 빈곤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좌파정당인 노동자(PT)당 소속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2011년 취임 이후 3000억헤알(약 155조원)을 풀었다. 서민주택 건설을 비롯한 공공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풀린 돈은 물가만 끌어올렸다. 2010년 7.5%였던 브라질 성장률은 지난해 0.8%까지 떨어졌다. 반면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5.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6.1%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대선까지 겹쳐'산 넘어 산'
정부 주도의 투자 확대만으로 경제를 부양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은 브라질 정부는 뒤늦게 각종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다. 외국인 투자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지적돼온 채권 및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금리를 두 차례 인상한 데 이어 추가 금리 인상설이 나오는 것도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서다.
더 큰 문제는 월드컵 이후다. 우선 내년 대선을 앞둔 브라질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 돈을 풀 전망이다. 크리스 저먼 유로아시아그룹 연구원은 “호세프 대통령은 여전히 재정 지출을 통한 성장률 상승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작년 2.4%에서 올해 1.5%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흑자 비율은 내년 0.9%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GDP 대비 35.2% 규모인 국채 이자 상환 비용을 고려할 때 재정수지 흑자 비율이 1.5% 밑으로 떨어지면 사실상의 재정 적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해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브라질 국채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호세프 대통령, 국민투표 제안
연일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전국 26개 지역 주지사 및 시장을 소집해 회의를 연 뒤 정치 시스템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는 “브라질 국민이 바라는 정치 개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특별 제헌의회 설치에 관한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브라질 헌법은 1988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다.
호세프 대통령은 정치 개혁과 함께 △인플레이션 통제△보건△대중교통△교육 등 5가지 분야를 정책 우선 순위로 두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공립학교 교사 월급 인상, 외국인 의사 고용, 지하철 건설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500억레알(약 26조905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더 나은 국가를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시위대 규모는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다만 “소수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부 폭력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
#"월드컵이 생계보다 중요하냐"
지난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은 떠들썩했다. 내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을 만 1년 앞두고 날짜를 카운트다운하는 시계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시간,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상파울루는 학생들의 시위로 시끄러웠다. “월드컵 준비를 할 돈으로 공공교통 요금을 내리라”는 구호가 거리를 뒤덮었다. 며칠 만에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17일엔 시위대가 20만명까지 불어났다. 20여년 만에 최대 규모다. 브라질의 축구 영웅인 ‘축구 황제’ 펠레도 이번 반정부 시위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펠레는 20일 현지 TV 인터뷰에서 “시위를 잊고 이제 우리의 조국이자 같은 핏줄인 국가대표팀을 기억하자”며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시위대와 네티즌은 펠레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일부에선 “경호원 없이 버스를 타본 후에도 그렇게 어리석은 말을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펠레의 무식함은 천재적인 축구 실력과 비례한다”는 말도 나왔다.
#어설픈 돈 풀기로 물가만 상승
브라질 반정부 시위의 계기는 7일 상파울루 시내버스 요금이 3헤알(약 1570원)에서 3.2헤알(약 1670원)로 인상된 것이었다. 가격 인상 폭은 크지 않지만 시민들은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 준비를 위해 쓰고 있는 막대한 예산에 분노했다.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건설과 교통 인프라 개선에 300억헤알(약 15조5000억원)을 책정하고 있다. 경기장 건설이 지연되면서 실제 지출액은 이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브라질 정부가 국민들의 빈곤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좌파정당인 노동자(PT)당 소속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2011년 취임 이후 3000억헤알(약 155조원)을 풀었다. 서민주택 건설을 비롯한 공공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풀린 돈은 물가만 끌어올렸다. 2010년 7.5%였던 브라질 성장률은 지난해 0.8%까지 떨어졌다. 반면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5.4%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6.1%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대선까지 겹쳐'산 넘어 산'
정부 주도의 투자 확대만으로 경제를 부양하기 힘들다는 점을 깨달은 브라질 정부는 뒤늦게 각종 규제 완화책을 내놓고 있다. 외국인 투자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지적돼온 채권 및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금리를 두 차례 인상한 데 이어 추가 금리 인상설이 나오는 것도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서다.
더 큰 문제는 월드컵 이후다. 우선 내년 대선을 앞둔 브라질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 돈을 풀 전망이다. 크리스 저먼 유로아시아그룹 연구원은 “호세프 대통령은 여전히 재정 지출을 통한 성장률 상승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작년 2.4%에서 올해 1.5%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흑자 비율은 내년 0.9%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GDP 대비 35.2% 규모인 국채 이자 상환 비용을 고려할 때 재정수지 흑자 비율이 1.5% 밑으로 떨어지면 사실상의 재정 적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해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브라질 국채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호세프 대통령, 국민투표 제안
연일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전국 26개 지역 주지사 및 시장을 소집해 회의를 연 뒤 정치 시스템 개혁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는 “브라질 국민이 바라는 정치 개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특별 제헌의회 설치에 관한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브라질 헌법은 1988년 이후 개정된 적이 없다.
호세프 대통령은 정치 개혁과 함께 △인플레이션 통제△보건△대중교통△교육 등 5가지 분야를 정책 우선 순위로 두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공립학교 교사 월급 인상, 외국인 의사 고용, 지하철 건설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500억레알(약 26조905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더 나은 국가를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시위대 규모는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다만 “소수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부 폭력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