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2>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
사람들로 붐비는 세일기간에 자가용으로 백화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주차가 골칫거리다. 백화점에 들어서려는 차들로 주변도로가 정체되기 일쑤고, 백화점에 진입해서도 주차공간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안내요원이 있어 차례를 기다리면 되지만 오랜 시간 차에 있다 보면 쇼핑을 하기 전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수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에 진입만 하면 주차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닌 사람도 존재한다. ‘VIP’로 불리는 우수고객이 바로 그들이다.

대부분의 백화점은 우수고객에게 주차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백화점에 들어서서 주차요원에게 차키를 넘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주차를 하려고 순서를 기다리는 수고는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백화점들은 얼마간의 주차공간을 비워두고 다른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다른 고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우면서도 때론 약이 오르고 화가 나기까지 한다. 돈을 쓰러 온 것은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손님이고 누구는 손님이 아니란 말인가.

백화점들이 이와 같은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매출 때문이다. 한 백화점의 2011년 매출을 분석한 결과, 상위 1%에 속하는 우수고객의 구매대금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1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수고객의 범위를 상위 20%로 늘리면 이들의 매출 비중은 60%까지 증가한다. 소수 고객에 의해 매출 상당 부분이 창출되는 ‘파레토법칙’이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파레토법칙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어떤 결과의 80%가 20%의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혹자들은 이 비율에 빗대어 파레토법칙을 ‘8 대 2 법칙’으로 부르기도 한다. 저명한 후생경제학자인 파레토는 생전에 자원 배분에 대해 깊이 연구했는데, 영국의 부(富)의 분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파레토법칙은 루마니아 태생의 미국 경영컨설턴트인 조셉 주란에 의해 일반화됐고, 경영학 분야에 도입돼 다양한 산업에서 주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되고 있다.


8 대 2 법칙… 마케팅의 정석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백화점의 사례다. 백화점들은 매출 대부분을 창출해내는 우수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주차대행은 물론 그들만의 전용라운지를 운영하고 각종 공연이나 론칭 행사에 초대하는 등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PB(Private Banking) 센터가 고액자산가가 많은 강남권에 집중돼 있고, 패션업체가 주력상품을 쇼윈도나 진열대에 전시하는 것도 파레토법칙이 적용된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파레토법칙은 세상에 소개된 이후 줄곧 마케팅론의 정석이자 핵심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 왔다.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힘없는 불특정 다수보다 힘 있고 실체가 분명한 소수를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파레토법칙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힘없는 평범한 다수의 고객이 힘 있는 소수의 우수한 고객에 버금가는 가치를 창출하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써니’는 2011년 744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15위에 올랐다. 1980년대를 무대로 7명의 여고생이 펼치는 우정을 유쾌하게 그린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3’(778만명)에 버금가는 성적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작비 면에서 50분의 1에 불과한 써니(40억)가 ‘트랜스포머3’(2154억원)에 불과 34만명 모자란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이라는 찬사가 잇따랐을 정도다.

영화'써니'흥행 …다수의 힘

‘써니’의 성공은 ‘7080세대’의 감성을 자극해 복고열풍을 일으킨 것이 주요한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코드로 주 관객층인 20~30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극장을 찾으면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것이다. ‘써니’는 흥행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계에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 또한 상당하다.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유명 배우가 출현하지 않아도 작품만 좋다면 관객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써니’는 문화소비에서 그동안 소외받아 온 중장년층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중장년층은 대중문화계로부터 그동안 찬밥신세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소수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홍보 부족과 배급 문제로 금방 간판을 내리기 일쑤였다. 가요계와 방송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문화시장은 젊은이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결과 문화시장에도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파레토법칙’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써니’를 계기로 중장년층의 구매력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고 이들을 위한 마케팅 활동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사소한 다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써니’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티클 모아 태산… 롱테일 법칙

이처럼 비주류로 평가받는 다수가 주류인 소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가리켜 ‘롱테일법칙’이라고 한다. 롱테일법칙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온라인시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마케팅 기법의 일종이다. IT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온라인서점 ‘아마존’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한 해에 몇 권 팔리지 않는 비인기 서적의 매출 총액이 베스트셀러를 웃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간이 한정된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창고에 처박혀 있던 책들이 온라인에 소개되면서 소량이지만 팔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서적의 판매 총합이 베스트셀러를 능가하는 뜻밖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앤더슨은 이러한 현상을 공룡의 긴 꼬리에 비유하여 롱테일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상품을 매출액과 판매량의 막대그래프로 나타낼 때, 공룡의 머리에 해당하는 인기상품의 막대는 그렇지 않은 상품에 비해 월등히 높지만 꼬리부분 상품의 판매금액과 수량을 모두 합하면 인기상품을 능가한다는 것이 롱테일법칙이다. 즉,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는 것이 롱테일법칙인 셈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2>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
다수의 인해전술이 그 힘을 발휘하면서 기업들이 롱테일법칙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파레토법칙의 효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파레토법칙은 여전히 주요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고 지금도 시장 어디에선가 파레토법칙에 입각한 마케팅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고객을 소수와 다수로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은 더 이상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없다. 파레토법칙과 롱테일법칙이 시장에 공존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물론 매출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고객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고객 한명 한명이 중요하고 이들 모두를 우대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마케팅의 평범한 진리를 기업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케팅이 좀 더 다양하고 세밀해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파레토 법칙(Pareto’s law)


어떤 결과의 80%가 20%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파레토법칙의 예로는 ‘회사 이익의 80%는 20%의 우수사원에 의해 창출된다’ ‘전체 상금의 80%는 20%의 운동선수가 차지한다’ 등을 들 수 있다.

▨ 롱테일 법칙(long tail theory)

주목받지 못하는 다수가 핵심적인 소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파레토법칙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인터넷 검색 업체 구글이 소수의 대기업이 아닌 다수의 소규모 업체에서 광고수익의 대부분을 거두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