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정부 개입 최소화는  정당"…대처리즘의 이론적 토대
(16) 최소국가론의 창시자 로버트 노직


20세기는 정부가 재분배, 고용, 성장 등 국가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던 시대였다. 지식인들은 ‘정부 간섭’ 문제에 대해 철학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경제적 차원에서만 다루거나 공룡과 같은 거대정부를 정당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근원적으로 의심한 인물이 미국의 정치철학자 겸 정치경제학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다.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태계 사업가 아들로 태어난 그는 ‘최소국가론’을 제시, 잃어버린 개인 권리를 되찾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최소국가란 폭력과 사기, 기만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하는 과제만을 수행하는 자유방임 국가를 말한다. 이런 국가만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게 노직의 생각이다.

노직은 청년 시절 사회주의 학생단체를 결성하고 그 활동에 적극 가담한 사회주의자였다. 자유주의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친구와의 이념적 논쟁이었다. 자유주의에 심취했던 그 친구는 토론에서 항상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거론하면서 논리를 전개했다. 독서광이었던 노직이 그 석학들의 문헌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 이들 서적을 탐독하는 사이 어느 덧 학문적으로 성장해 자유주의 철학자로서 하버드대 교수까지 되었다.

노직의 자유주의 핵심은 권리이론이다. 이 이론은 크게 3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인간은 목적 그 자체이지 수단이 아니라는 의미의 칸트적 존엄이다. 투자할 사업 분야를 선택하거나 삶의 목적을 설정하고 꾸려나갈 자유에 대한 개인적 권리는 그런 존엄에서 나온다는 게 노직의 주장이다.

권리이론의 두 번째 요소는 자기 소유권이다. 누구나 자신이 지닌 능력과 재주, 노동 등 자연적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런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가 사유재산권과 소득 및 재산에 대한 권리이다. 이런 권리는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에서 나온다.

사유재산권이 없으면 개인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재산권은 자기소유의 권리와 자유권만큼 절대적이라는 게 노직의 입장이다. 자유와 생명,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그래서 자유주의의 삼위일체다.

흔히 사유재산제도와 자유경제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핵심 요소이기에 소중하다고 일컬어진다. 관료의 고질적인 비효율, 그리고 빈곤과 실업, 환경오염과 같은 특정 문제 해결에서 정부의 빈약한 성과 때문에 국가 과제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노직은 자유경제의 중요성을 권리이론에 입각해 보다 근원적인 옹호논리를 편다.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가 소중한 것은 효율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자유, 재산, 생명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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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직이 조세부담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경제활동 의욕의 위축 등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국가목적을 위해 억지로 부역하는 강제노동과 같고 그래서 자기소유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현대 복지국가가 부도덕한 것도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민들을 그 같은 국가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 국가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직의 반대 논리다.

노직에게 도덕적으로 정당한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키는 야경국가뿐이다. 그런 과제를 넘어서 교육, 사회보험, 복지 등 현대 정부가 수행하는 과제는 시민들의 자유권과 재산권의 침해만을 초래하기에 부도덕하고 그래서 교육과 사회보험은 자유 시장에, 복지는 종교자선단체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최소국가이념에 대한 비판자들은 분배정의를 위한 정부의 과제가 너무 적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소득과 재산의 분배를 정의롭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노직은 주장한다. 시장에는 분배하는 사령탑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사회정의의 명분으로 시장의 분배 결과를 인위적으로 시정한다면 이는 개인의 권리들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야기한다는 노직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소국가에 대한 노직의 비전도 흥미롭다. 자유주의라고 해서 오로지 자본주의의 도덕적 품성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로직은 설명한다. 사회주의나 평등원칙에 따라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이 공동체를 구성해 그들끼리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다. 자선단체 같은 집단을 결성, 이타적인 욕구도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국가는 경제적 번영은 물론이요, 다양한 가치도 마찰 없이 추구할 수 있기에 사회적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이 노직의 주장이다.

그러나 빈곤층 문제를 교회나 자선단체에만 의존해 해결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자유경쟁을 확보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호국가적 과제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직의 자유주의 사상은 많은 쟁점을 남겨놓기는 했지만 권리이론을 개발하고 최소국가론을 개척, 간섭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다양한 가치를 지닌 인간들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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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와 세기의 대결… 레이거노믹스에 영향

노직 사상의 힘

철학으로 훈련받은 노직은 하이에크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자유사회를 위해 똑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구체적인 사상적 내용에서는 차이가 많다

노직이 정립한 사상은 ‘권리이론’에 입각한 ‘합리주의적 자유주의’이다. 이는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관습에 대한 경외감에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계획한 선험적인 사회질서로 현실 세계를 개혁하려는 것이다. 이는 존 로크의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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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이론’에서 출발하는 하이에크는 그런 전통을 수용할 수 없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극도로 제한돼 있기에 사회를 계획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유익한 관행과 제도의 등장에 대한 인식에서 자생적 진화에 의존한다. 그래서 그의 이념은 ‘진화론적 자유주의’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 전통이다.

노직은 하버드대 동료 교수였던 롤스와의 ‘세기적인 대결’로 유명하다. 주지하다시피, 롤스는 사회민주주의 철학자였다. 개인이 몸에 지닌 모든 자연적 자원은 개인의 소유일 수 없으니까 공공자산이어야 하고 이게 ‘없는 자’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로 복지국가 모델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던 인물이다. ‘가진 자’의 논리라는 비판에도 노직은 엄정한 논리로 롤스의 그런 사상을 거부했다. 개인의 능력, 재주가 모든 사람의 공동소유라면 개인이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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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직은 미제스, 하이에크와 함께 20세기에 가장 큰 목소리로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자유, 사유재산, 제한된 정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었다.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좌경화된 분위기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개인적 권리의 중요성을 갈파한 노직의 사상이다.

자유주의가 전대미문의 번영을 가져온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꽃을 피우게 된 데에도 노직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