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0>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정부의 공공부조
예수 그리스도의 교시와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중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누가복음을 일컬어 4대 복음서라 한다. 이들 복음서는 예수의 말씀과 업적을 누가 기록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내용에는 유사한 면이 많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경우 나머지 복음서들과 구분되는 한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사마리아인(samaritan)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거나 있더라도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영생에 대해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객관적인 필체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반해 누가복음은 사마리아인과 관련된 비유가 세 편으로 상대적으로 많고, 그들을 향한 시선도 다분히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복음서들과 대비된다. 대표적인 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사마리아인의 참된 이웃사랑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봐 주고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봐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이야기는 강도를 만나 죽을 위험에 처한 유대인을 당시 유대인과 적대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이 구조해 주었다는 내용으로, 예수는 이를 통해 어떤 사람이 진정한 이웃인지를 가르쳐주는 동시에 참된 이웃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라는 것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명칭은 누가복음 속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타인이 위험에 빠졌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구조에 나서게 하고 또 구조에 나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 법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자신에게 위험하지 않음에도 구조에 나서지 않을 경우 이를 처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자가 구조 과정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에게 손해를 줄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사람은 처벌하고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은 보호함으로써 서로 돕고 사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인간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법적 장치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취지를 반영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처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상의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하도록 하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신체적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움으로써 그들의 생존권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경제적인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그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소득을 올린다. 물론 때에 따라 우연한 기회에 소득은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한다. 여하튼 사회구성원 간의 소득 격차는 피할 수 없고 또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계층 간 소득격차가 너무 크거나 부의 축적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소득격차로 인해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 전체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현상을 예방하고 헌법에 나와 있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빈곤층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가 빈곤층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의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실시하는 제도를 ‘공공부조(public assistance)’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대표적인 예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존중하는 헌법 정신에 합당하고, 이타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같은 각박한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두 법과 관련하여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면서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빈곤 초래하는'공공부조'

우선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경우 신체적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결정할 사안으로, 도덕적 문제인 만큼 법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구조자의 책임을 면하는 조항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선의에 의한 구조일지라도 그로 인한 피해자의 손해가 위중하다면 이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관련해서는 과연 이 법이 목표하는 바를 달성하고 있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공공부조의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하는데, 이는 소득이 기준을 넘어서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즉, 공공부조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빈곤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공공부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정부가 전액 부담하다 보니 재정 부담도 막대하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0> '선한 사마리아인 법'과 정부의 공공부조
특히 복지예산은 만들기는 쉽지만 없앨 때는 적지 않은 저항에 직면하기 쉽다. 따라서 법 집행의 효율을 높이고 재정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빈곤층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다.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당근과 채찍을 함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경우 수급자의 자활을 위한 취업알선 정보와 근로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원이 실질적인 근로로까지 이어지도록 강제하는 것도 법의 취지를 살리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 공공부조 (public assistance)

국가가 생활이 어렵거나 생활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최저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자립을 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수급자로 지정되면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 등이 지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