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96> 여성의 경제적 역할과 GDP
1975년 여성 가구주 비율은 12.8%에 불과했다. 여기서 가구주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에 따라 가구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성 가구주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고, 2020년에는 23%를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가구의 여성 대표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실 만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나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성의 평균수명(84세)은 남성의 그것(77세)에 비해 길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가주주 수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0세 이상의 여성 가구주 비율을 보면 2000년 33.9%였고, 이 값은 꾸준히 증가해 2020년 41.2%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른 연령대의 여성 가구주 비중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해보기 위해 경제적 역할 강화라는 더 구체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가사노동의 공적영역 편입


과거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가사노동의 ‘공적인 영역으로 편입’이라는 관점에서 여성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자. 샬럿 퍼킨스 길먼(1903)은 《가정》에서 가사는 교육을 통해 전문화돼야 하며 서비스의 수행에는 임금이 지불돼야 하고, 여성은 공적인 세계에 통합돼야 하며,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통합은 남성지배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했다. 남성지배라는 헤게모니의 변화 중심에 가사노동 임금화와 시장화(市場化)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으로, 이는 경제적 기반이 사회의 권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모멘텀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서정자 초당대 교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 여성소설에는 ‘어멈’이라 불리는 가사노동 담당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근대 신여성의 효시라고 알려진 나혜석의 소설 《경희》(1918)에도 시월이라는 ‘어멈’이 등장한다. 그런데 소설에서 가사노동은 ‘어멈’만의 몫은 아니다. 경희의 오라범댁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중 일시 귀국했던 주인공 경희도 가사노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소설 전반에 걸쳐 가사노동은 당연히 여성의 몫처럼 받아들여진다. 소위 학문을 배운 사람들로 대표되는 여학생들은 집안일을 잘 못하는 되먹지 못한 계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여학생들의 부족한 가사능력을 비난하는 주체는 남성과 구세대로 대표되는 경희의 윗세대 여성들이다.

GDP 편입 안되는 가사노동

그렇다면 여성의 경제적 역할이 현저히 증가하고, 부엌에 들어가는 남성이 많아진 지금 가사노동의 임금화가 이뤄졌을까? 답을 먼저 이야기하면 길먼의 바람과 달리 “NO”다. 가사노동에 임금이 지불되고 시장가치로 취급된다면 한 나라에서 새롭게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모두 더한 국내총생산(GDP)에 가사노동이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제시하는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사 서비스의 생산이 타 경제 부문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적인 활동이며 둘째, 시장 판매를 위한 생산이 아니므로 가치를 평가하는 데 적절한 가격이 존재하지 않으며, 셋째 가사 서비스는 보수를 받고 다른 가계를 위해 생산한 경우와는 경제적 가치가 동일하지 않고 생산에 포함할 경우 거의 모든 성인인구가 경제활동인구 및 취업자로 되어 고용통계가 왜곡되기 때문이라고 하다. 이에 따라 현재 전업주부 등이 생산한 가사 서비스를 국민소득통계에 반영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한국은행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소설 《경희》에서 일본 유학파 경희가 오라범의 양복 속적삼을 만들고 김치를 담가도, 시월이가 두루마기 고름을 만들어 달아도 GDP에 포함되지 않기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가사노동의 시장화

그렇다고 가사노동의 시장화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만 GDP에 반영하지 못할 뿐이지 “생업”으로 가사도우미를 하는 분들의 서비스 가치는 GDP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경제적 진출도 활발해졌다. 2009년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넘어 섰으며, 2008년 행정고시 합격자 비율도 여성이 남성에 앞섰다. 전국 교사의 약 65%가 여성이며, 약사는 64%다. 남녀의 경제활동참가율 차이는 1968년 39.9%포인트에서 2009년 23.9%포인트로 크게 줄어들었다. 여성들이 시장에서 임금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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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일을 하는 대신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자신의 역할을 해결하기 때문에 가사노동이 간접적으로 시장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성이 직업을 갖고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두 가지 경로로 GDP 증대에 기여한다. 우선 여성 자신의 직업을 갖고 노동을 제공하는 그 자체가 GDP를 증가시키는 활동이며, 이들이 자신의 가사노동을 대체해줄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다시 GDP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63년 37%에서 2011년 49%까지 높아졌고 두 가지 경로로 GDP에 기여했을 것이다. 길먼의 주장처럼 가사노동 그 자체의 임금화나 시장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경제라는 거대한 무형의 힘이 필요에 의해 그 스스로 가사노동이라는 시장을 만듦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차성훈 KDI 전문연구원 econcha@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경제활동 참가율

만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와 실업자를 더한 인구를 경제활동인구라고 하며, 이들을 만 15세 이상 인구인 노동가능인구로 나눈 비율을 경제활동참가율이라고 함

▨ 국내 총생산(GDP)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새롭게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