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이익집단에 포획된 정부, 그릇된 정책 내놔"…규제 폐단 지적
(7) 규제이론의 개척자 조지 스티글러


정부규제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연구로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는 아버지는 독일, 어머니는 헝가리 출신인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거시 분야의 밀턴 프리드먼과 나란히 미시 분야에서 시카고학파의 기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카고대에서 프랭크 나이트 교수에게 배우고 익혔던 진리탐구의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스티글러의 사상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흥미롭게도 자유가 아니라 효율성이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이유도 경제자유가 아니라 효율성 때문이다. 시장경제를 모든 사람의 행동이 이미 상호 간 조정돼 더 이상 변동이 필요 없는 정지 상태인 ‘균형’으로 이해한 것도 특이하다.

그는 시장경제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1930년대 이후 미시경제학적 지식세계를 지배한 에드워드 챔벌린 등의 좌파사상과 싸웠다. 이 좌파사상의 핵심내용은 시장경제의 경쟁 조건은 불완전하고 독점적이기 때문에 정부가 대기업의 독점적 성향을 막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글러 역시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집중도가 높은 사적 독점력을 분쇄하고 담합한 기업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기업철학을 바꾸었다. 대기업 예찬론자였던 슘페터와 법경제학을 창시한 시카고대의 아론 디렉터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티글러 스스로가 연구한 대기업에 대한 계량적 통계적 분석 결과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력이 집중됐다고 해도 독점적 행동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질 좋고 값싸게 상품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장지배적 기업이라고 해도 마치 ‘경쟁 상황에 처한’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독점금지 조치는 불필요하고 오히려 경제에 피해를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스티글러의 이런 경제관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수에 관계없이 시장은 늘 경쟁적이라고 주장하는 현대의 ‘실험경제학’이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업관에서 보면 대기업 때리기와 맥이 닿아 있는, 한국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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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러는 일반 규제이론으로 눈을 돌려 규제의 효과와 원인을 규명하는 데 진력했다. 계량분석을 통해 밝힌 것은 규제는 시장경제의 결과를 개선해 보편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할 뿐이라는 점이다. 부를 재분배하고 공동체에 ‘사중적 손실(死重的 損失·deadweight loss)’을 떠넘기는 것이 규제의 성격이다. 사중적 손실이란 경쟁 제한으로 인한 시장 실패로 발생하는 자원배분의 효율성 상실을 말한다. 규제는 부의 재분배적 성격 때문에 정부로부터 편익을 얻기 위한 이익단체 간 치열한 경쟁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이다.

규제가 이와 같은 성격을 지녔음에도 왜 항상 생겨나는가. 이 문제는 1970년 이전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시 지배했던 공익이론에 따라 정부의 규제담당자는 사익을 버리고 전적으로 공익에 헌신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찰력이 뛰어난 스티글러가 그 문제의 분석을 놓칠리 없었다. 그는 공익이론을 버리고 규제자가 피규제자들에게 사로잡혀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규제를 만들어낸다는 규제의 ‘포획이론’을 창안했다. 이는 규제 정치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난해 터진 한국의 저축은행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단속기관인 금융감독원이 피단속기관인 저축은행에 포획된 것, 입법부가 법조집단에 의해 포획돼 제정한 것으로 비판받는 준법지원제 등이 대표적인 포획이론 사례들이다.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다정하게 지내야 뇌물, 전관예우 등 서로에게 금전적 또는 비금전적 이익을 나눌 수 있다.

포획이론은 입법을 경제시스템의 외생적인 것이 아니라 내생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규제의 공급자를 수동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정치를 보는 시각이 편협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스티글러는 정보경제학을 개발해 시장경제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던 좌파에 도전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같은 제품이라 해도 다양한 값으로 팔리는 이유다. 이를 정보탐색 비용에서 찾고 있다. 보다 싼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는 탐색비용을 늘려야 한다. 정보 수집에서 얻는 이익이 크다면 더 많은 정보비용을 쓰겠지만 정보비용이 이익보다 더 커지면 정보탐색 중단을 결정한다. 그래서 같은 상품이 다양한 가격으로 팔릴 수밖에 없다. 이런 최적탐색 논리에서 스티글러는 다양한 값의 존재는 시장의 효율성과 전적으로 양립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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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결론은 그럴듯하지만 지식을 재화처럼 취급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다. 정보탐색을 계속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구하고자 하는 지식의 가치를 미리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영화의 가치를 알기가 불가능하듯, 지식을 갖기 전에 지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은 스티글러의 탐색논리와 정보경제학은 시장경제의 가격형성원리는 물론이고 지식산출과 지식의 사회적 이용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함에도 시장경제를 수호하고 자유주의 경제학의 개발에서 스티글러의 업적은 결코 작지 않다. 아쉬운 점은 그가 시장에서 기업가정신을 퇴출시킨 균형모델을 고수했고 시카고학파가 이를 수용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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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러 사상의 힘 - 레이거노믹스 기반 美항공산업 규제 철폐

스티글러가 살던 20세기는 시장에 의한 결과가 나쁠 때에는 언제나 국가가 나서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상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거기에는 두 개의 사상이 있었다. 하나는 거시경제학의 케인스 사상이었다. 시장경제는 고용과 성장에서 고질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시적 차원의 통화이론으로 그에 맞서 자유주의를 지킨 인물이 밀턴 프리드먼이다.

[경제사상사 여행] "이익집단에 포획된 정부, 그릇된 정책 내놔"…규제 폐단 지적
다른 하나는 미시경제학의 챔벌린이다. 이는 소비자는 비합리적이고 조작당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소비자의 후생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스티글러는 이런 좌파사상과 싸워 자유주의를 지켰다. 독점금지법을 자유기업의 마그나 카르타인 양 여기고 동시에 공익을 위한 법이라는 주장이 지배했다. 그러나 그는 전기요금과 신주 발행에 대한 규제, 최소임금제나 임대료 규제 등 그 어떤 것도 규제 목적을 달성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웠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규제의 치명적 위험성과 시장의 우월성을 갈파했다. 그런 노력으로 스티글러는 한때 강렬했던 규제에 대한 열광도 식힐 수 있었다.

그의 사상이 꽃을 피운 것은 특히 1981년 레이건 행정부 시기다. 시카고 스타일의 법률가와 경제학자 다수가 독점금지 관련 부서에 동원됐다. 그들은 가격차별, 독점화, 수직적 결합을 금지한 현행 독점법의 집행도 자제했다. 레이건 시기 탈규제의 노력으로 전년도에 비해 규제당국의 공무원 수나 규제예산도 대폭 줄었다. 레이건 행정부 제1기에 정부 지출은 1.6%, 고용은 연평균 4.4%나 줄었다. 집권2기에는 지출은 연평균 3.8%, 고용은 0.6% 증가했지만 그래도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의 증가다.

레이건 시기의 규제개혁에도 스티글러의 영향이 컸다. 항공산업의 규제를 없앴다. 그 결과 새로운 항공 회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경쟁도 촉진돼 항공료가 싸졌다. 항공 서비스 수요자들이 매년 100억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트럭운수 산업의 규제를 해제함으로써 운수 비용도 감소됐다. 규제가 철폐된 직후 2년 동안 1만개의 새로운 트럭운수 회사가 설립됐다. 규제 해제가 운송비용의 하락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트럭으로 운반되는 식품이나 그 밖의 상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