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학년도 대학입학을 결정짓는 대부분의 시험이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시의 서울대 논술 시험뿐이네요. 인문계열에서만 보는 시험이라 그 인원이 더 적기도 하지만, 서울대의 시험은 오전-오후로 나누어 5000자에 육박하는 분량의 시험을 본다는 점에서 꽤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면면이 살펴보면 기존의 논술 시험과 다른 내용과 형식을 갖고 있는 것이 많지요. 즉, 일반적으로 훈련된 논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깊이있는 학교 교육’의 성과가 드러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게 좋다 나쁘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단순히 스킬만 익혀서 답을 할 수 있는 분량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답이 이렇게 정해져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내년 논술시험의 형태들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올해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정책을 살펴본 후에야 나올 것입니다. 서울대의 경우 그동안 논술 시험의 최전선에서 공교육 친화적인 논술 문제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훈련식의 논술로는 쉽게 돌파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물론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마냥 쉽게 치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울대 시험을 보고자 준비한 학생들은 대개 정시만을 노리고 ‘논술 준비 없이’ 공부만 주구장창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5000자 글쓰기에 누구보다 겁을 많이 먹으니까요.
그럼 가장 편안한 3번 문항부터 보겠습니다. 서울대의 경우 1교시 2200자 문제를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오후 교시에 2~3번 문항을 풉니다. 문제유형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매년 다양한 방식으로 출제합니다.
▨ 2012학년도 서울대 정시 기출문제 중 3번
한국 입시의 논술을 잘 모르시는 선생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대개는 논술 문제를 직접 풀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주어야 할 때 말이죠.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보고, 많이 써보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정답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없을 뿐더러, 생각을 요할 만큼 입시가 깊이가 있지도 않으며, 글을 써보고 무언가를 피드백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실제의 시험이란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 지문(그것도 지독히 철학적이거나 경제적인!)을 던져주고, 이에 대해 정해진 조건대로 풀어주길 바라지요.
애초에 읽기가 제대로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논술 기출 문제를 통해서 배경지식을 쌓는 방식으로 본인의 독해력을 키워갑니다. 생각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평소에 이런 저런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만큼 창의적인 교육 공간이 없는 관계로 대개의 경우 ‘답은 뭐지요?’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을 묻는 형태의 문제들이 한국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더라도, 합격생을 정확하게 걸러내기 위해,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대학교 측에서도 이왕이면 ‘답이 정해진 문제’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내가 불합격이냐?’라고 묻는다면 주관식 시험의 특성상 대답해주기가 쉽지 않거든요.하지만, 서울대는 충분히 그럴 여유가 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서울대도 ‘답 없는 마구잡이식의 논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력은 구분해야 하니까요.
3번 문제는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개되는 수험생의 논리적인 사유 능력을 평가하고자 시도되었다고 출제본부 측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략 이런 것입니다. 우선, 제시문 (가)에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보여줍니다. 짧게 몇 개만 보여드리면 이렇습니다.
ㆍ1789년 바스티유 감옥 함락 소식을 듣고 프랑스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됨.
ㆍ1792년 코르시카로 귀향하여 국민위병대의 중령이 되지만, 프랑스 왕당파와 가까웠던 ‘파스콸레 파울리’와 균열이 생겨 일가족과 마르세유로 도피함. 마르세유에서 유복한 상인 집안의 딸 ‘데지레 클라리’와 약혼함.
ㆍ1794년 공안위원장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여 처형된 후 감옥에 갇힘. 이후 석방되어 혁명 정부의 총재 ‘파울 바라스’에게 등용됨.
ㆍ1795년 파리에서 왕당파의 봉기가 일어나자 수도 시가지에서 대포를 쏘는 대담한 전법으로 진압함으로써 사단장이 됨.
ㆍ1796년 ‘데지레 클라리’와 파혼하고, 귀족의 미망인으로 ‘파울 바라스’의 애인이기도 한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결혼함. ‘파울 바라스’에 의해 이탈리아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발탁됨.
ㆍ1799년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의 왕정복고를 명분으로 내세워 프랑스를 위협하자, 혁명 정부의 명령도 받지 않고 귀국함. 의사당에서 자신의 정부를 승인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오백인회가 이를 거부하자 쿠데타를 일으켜 오백인회를 해산함. 3명의 통령들을 두는 새 헌법을 만들어 국민 투표에 부쳐 원로원으로부터 10년 임기의 제1통령으로 임명됨.
ㆍ1800년 연합국에 강화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하자, 실패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알프스를 직접 넘어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굴복시킴. 이때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함.
ㆍ1802년 종신통령이 되어, 자신의 독재권을 더욱 강화함.
ㆍ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이 이끈 영국 해군에게 완패함.
ㆍ1810년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 ‘마리 루이즈’와 혼인함.
ㆍ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공격하여 모스크바를 점령함.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도시와 곡식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겨울을 넘기기 어려워 퇴각하다가 뒤쫓아 온 러시아군에게 대패함. 대프랑스 동맹이 새로이 결성됨.
ㆍ1814년 대프랑스 연합군에 포위되어 3월에 파리가 함락됨. 나폴레옹은 퇴위를 강요당하여 지중해의 작은 섬인 엘바 섬으로 추방됨.
ㆍ1815년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와 복위하나,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군에 완패하여 백일천하가 끝남.
ㆍ1821년 5월 5일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함.
그 굴곡이란 것이 웬만한 한국 근현대사 못지 않지요? 자, 그리고 이런 나폴레옹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어져 있던 손금의 선을 칼로 그어 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손금을 이었을까요? 제시문 (나)에는 손금의 종류를 보여줍니다. 그것에는 감정선, 결혼선, 권력선, 두뇌선, 생명선, 운명선, 재운선, 태양선이 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라는 정치적 인물을 대략이라도 알고 있다면, 머리를 좋게 하는 두뇌선이라든지, 애정운을 높이기 위한 결혼선에 관심을 둘 것 같진 않지요? (그가 결혼을 3번 했다고 해서, 그 결혼이 운명을 건 결혼은 아닐 테니까요.) 건강해지기 위해 생명선이나 돈을 더 벌기 위해 재운선에 손을 대지도 않겠지요. 이미 그런 것들은 권력과 함께 뒤따라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나폴레옹이 꿈꿔왔던 것이 아니니까요. 대략 나머지 것들만 추려도 권력선, 운명선입니다. 권력선이란 이것이 길게 이어져 있다면 ‘권력, 명예, 욕망을 이룰 수 있다’는 선이고, 운명선이란 ‘일신의 운세의 강약이나 사회생활에 있어 운을 불어넣어준다’는 선입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이 두 선 중 하나에 손을 대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아마 운명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종신통령의 위치까지 가보았기 때문에 권력으로는 거의 ‘끝판’을 깼다고 봐야 할 테니까요.
문제는 이겁니다. ① 언제 손금을 바꾸었을까? ② 어떤 선을 바꾸었을까? 어떤 선을 바꾸었을까에 대해서는 대략 나오지만, 언제 바꾸었을까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이디어가 필요하지요. 사람들은 언제 점쟁이를 찾아갈까요? 사업이 매우 잘 되고 있을 때? 취업이 너무나도 잘 될 때? 그렇지 않겠지요. 무언가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찾아가겠지요. 나폴레옹도 그랬겠지요. 인생에 있어 무엇인지 잘 된다고 믿고 있다가 갑자기 ‘실패’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겠지요. (아참, 문제조건에 나온 ‘손금 이야기’. 즉 스스로의 손금을 칼로 그었다는 이야기는 정사(正史)가 아닙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대프랑스 동맹군과 대전을 벌이기 전이나, 혹은 이미 패하고 엘바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즉 이번엔 분명 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때 그렇게 선을 긋지 않았을까요. 그 이전엔 너무나 평이하게 얻고 싶은 것들을 얻었으니까요.
또 다른 논제는 이렇습니다. 손금을 보는 것과 같은 행위, 즉 스스로의 운명을 외부적 조건에 의존하려고 하는 행위에 대한 예를 들고,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 스스로의 입장에서 이것은 ‘바보 같은 일’이겠지요. (의견을 쓴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우리의 일상을 보더라도, 이런 류의 사고방식은 꽤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징크스’라고 부르는 것들도 그런 것의 일종이며, 묫자리를 쓸 때도 풍수를 봐야 한다고 하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여전히 유약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운명을 결정짓는 것에 있어, 스스로의 힘 말고도 다른 요소들에 계속 의존하게 되니까요. 과연, 형이상학적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점에서, 이 문제는 꽤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문제입니다. 서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이 시기에 이런 문제들을 다양하게 고민하면서, 스스로의 사유의 깊이를 늘려나가야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용준 S·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
아마 내년 논술시험의 형태들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올해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정책을 살펴본 후에야 나올 것입니다. 서울대의 경우 그동안 논술 시험의 최전선에서 공교육 친화적인 논술 문제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훈련식의 논술로는 쉽게 돌파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물론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마냥 쉽게 치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울대 시험을 보고자 준비한 학생들은 대개 정시만을 노리고 ‘논술 준비 없이’ 공부만 주구장창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5000자 글쓰기에 누구보다 겁을 많이 먹으니까요.
그럼 가장 편안한 3번 문항부터 보겠습니다. 서울대의 경우 1교시 2200자 문제를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오후 교시에 2~3번 문항을 풉니다. 문제유형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매년 다양한 방식으로 출제합니다.
▨ 2012학년도 서울대 정시 기출문제 중 3번
한국 입시의 논술을 잘 모르시는 선생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대개는 논술 문제를 직접 풀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주어야 할 때 말이죠.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보고, 많이 써보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이 정답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없을 뿐더러, 생각을 요할 만큼 입시가 깊이가 있지도 않으며, 글을 써보고 무언가를 피드백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실제의 시험이란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 지문(그것도 지독히 철학적이거나 경제적인!)을 던져주고, 이에 대해 정해진 조건대로 풀어주길 바라지요.
애초에 읽기가 제대로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논술 기출 문제를 통해서 배경지식을 쌓는 방식으로 본인의 독해력을 키워갑니다. 생각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평소에 이런 저런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만큼 창의적인 교육 공간이 없는 관계로 대개의 경우 ‘답은 뭐지요?’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을 묻는 형태의 문제들이 한국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더라도, 합격생을 정확하게 걸러내기 위해,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대학교 측에서도 이왕이면 ‘답이 정해진 문제’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내가 불합격이냐?’라고 묻는다면 주관식 시험의 특성상 대답해주기가 쉽지 않거든요.하지만, 서울대는 충분히 그럴 여유가 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서울대도 ‘답 없는 마구잡이식의 논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력은 구분해야 하니까요.
3번 문제는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개되는 수험생의 논리적인 사유 능력을 평가하고자 시도되었다고 출제본부 측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략 이런 것입니다. 우선, 제시문 (가)에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보여줍니다. 짧게 몇 개만 보여드리면 이렇습니다.
ㆍ1789년 바스티유 감옥 함락 소식을 듣고 프랑스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됨.
ㆍ1792년 코르시카로 귀향하여 국민위병대의 중령이 되지만, 프랑스 왕당파와 가까웠던 ‘파스콸레 파울리’와 균열이 생겨 일가족과 마르세유로 도피함. 마르세유에서 유복한 상인 집안의 딸 ‘데지레 클라리’와 약혼함.
ㆍ1794년 공안위원장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여 처형된 후 감옥에 갇힘. 이후 석방되어 혁명 정부의 총재 ‘파울 바라스’에게 등용됨.
ㆍ1795년 파리에서 왕당파의 봉기가 일어나자 수도 시가지에서 대포를 쏘는 대담한 전법으로 진압함으로써 사단장이 됨.
ㆍ1796년 ‘데지레 클라리’와 파혼하고, 귀족의 미망인으로 ‘파울 바라스’의 애인이기도 한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결혼함. ‘파울 바라스’에 의해 이탈리아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발탁됨.
ㆍ1799년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의 왕정복고를 명분으로 내세워 프랑스를 위협하자, 혁명 정부의 명령도 받지 않고 귀국함. 의사당에서 자신의 정부를 승인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오백인회가 이를 거부하자 쿠데타를 일으켜 오백인회를 해산함. 3명의 통령들을 두는 새 헌법을 만들어 국민 투표에 부쳐 원로원으로부터 10년 임기의 제1통령으로 임명됨.
ㆍ1800년 연합국에 강화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하자, 실패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알프스를 직접 넘어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굴복시킴. 이때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함.
ㆍ1802년 종신통령이 되어, 자신의 독재권을 더욱 강화함.
ㆍ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이 이끈 영국 해군에게 완패함.
ㆍ1810년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 ‘마리 루이즈’와 혼인함.
ㆍ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공격하여 모스크바를 점령함.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도시와 곡식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겨울을 넘기기 어려워 퇴각하다가 뒤쫓아 온 러시아군에게 대패함. 대프랑스 동맹이 새로이 결성됨.
ㆍ1814년 대프랑스 연합군에 포위되어 3월에 파리가 함락됨. 나폴레옹은 퇴위를 강요당하여 지중해의 작은 섬인 엘바 섬으로 추방됨.
ㆍ1815년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와 복위하나,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군에 완패하여 백일천하가 끝남.
ㆍ1821년 5월 5일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함.
그 굴곡이란 것이 웬만한 한국 근현대사 못지 않지요? 자, 그리고 이런 나폴레옹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어져 있던 손금의 선을 칼로 그어 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손금을 이었을까요? 제시문 (나)에는 손금의 종류를 보여줍니다. 그것에는 감정선, 결혼선, 권력선, 두뇌선, 생명선, 운명선, 재운선, 태양선이 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라는 정치적 인물을 대략이라도 알고 있다면, 머리를 좋게 하는 두뇌선이라든지, 애정운을 높이기 위한 결혼선에 관심을 둘 것 같진 않지요? (그가 결혼을 3번 했다고 해서, 그 결혼이 운명을 건 결혼은 아닐 테니까요.) 건강해지기 위해 생명선이나 돈을 더 벌기 위해 재운선에 손을 대지도 않겠지요. 이미 그런 것들은 권력과 함께 뒤따라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나폴레옹이 꿈꿔왔던 것이 아니니까요. 대략 나머지 것들만 추려도 권력선, 운명선입니다. 권력선이란 이것이 길게 이어져 있다면 ‘권력, 명예, 욕망을 이룰 수 있다’는 선이고, 운명선이란 ‘일신의 운세의 강약이나 사회생활에 있어 운을 불어넣어준다’는 선입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이 두 선 중 하나에 손을 대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아마 운명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종신통령의 위치까지 가보았기 때문에 권력으로는 거의 ‘끝판’을 깼다고 봐야 할 테니까요.
문제는 이겁니다. ① 언제 손금을 바꾸었을까? ② 어떤 선을 바꾸었을까? 어떤 선을 바꾸었을까에 대해서는 대략 나오지만, 언제 바꾸었을까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이디어가 필요하지요. 사람들은 언제 점쟁이를 찾아갈까요? 사업이 매우 잘 되고 있을 때? 취업이 너무나도 잘 될 때? 그렇지 않겠지요. 무언가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찾아가겠지요. 나폴레옹도 그랬겠지요. 인생에 있어 무엇인지 잘 된다고 믿고 있다가 갑자기 ‘실패’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겠지요. (아참, 문제조건에 나온 ‘손금 이야기’. 즉 스스로의 손금을 칼로 그었다는 이야기는 정사(正史)가 아닙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대프랑스 동맹군과 대전을 벌이기 전이나, 혹은 이미 패하고 엘바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즉 이번엔 분명 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때 그렇게 선을 긋지 않았을까요. 그 이전엔 너무나 평이하게 얻고 싶은 것들을 얻었으니까요.
또 다른 논제는 이렇습니다. 손금을 보는 것과 같은 행위, 즉 스스로의 운명을 외부적 조건에 의존하려고 하는 행위에 대한 예를 들고,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 스스로의 입장에서 이것은 ‘바보 같은 일’이겠지요. (의견을 쓴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우리의 일상을 보더라도, 이런 류의 사고방식은 꽤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징크스’라고 부르는 것들도 그런 것의 일종이며, 묫자리를 쓸 때도 풍수를 봐야 한다고 하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여전히 유약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운명을 결정짓는 것에 있어, 스스로의 힘 말고도 다른 요소들에 계속 의존하게 되니까요. 과연, 형이상학적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점에서, 이 문제는 꽤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문제입니다. 서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이 시기에 이런 문제들을 다양하게 고민하면서, 스스로의 사유의 깊이를 늘려나가야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용준 S·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