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파레토 효율'

동이 틀 무렵의 새벽 거리.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을 위한 최고의 찬사를 준비했소. 당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나 하나뿐일 것이요.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아는 것도 나 혼자일 수 있소. 당신의 모든 생각과 무엇이든 당신이 하는 말은 항상 솔직하고 올바르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이런 점을 모르고 있는 것 같소. 사람들은 식당 종업원인 당신이 음식을 가져오고 탁자를 치우는 것만 볼 뿐, 가장 훌륭한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듯하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내 스스로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다오. 이런 나를 당신의 곁에 있도록 허락해 주겠소?” 남자의 고백에 여자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이윽고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네, 제 곁에 머물러 주세요.” 둘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깜깜한 새벽의 거리를 걸어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이상은 잭 니컬슨(멜빈役)과 헬렌 헌트(캐롤役)가 주연한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의 마지막 장면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노신사와 가난하지만 바르고 열심히 사는 중년의 여인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미래를 함께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화의 제목이 멜빈과 캐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과 거리가 먼 사랑영화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의 결말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멜빈 혹은 캐롤이라면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을 수학문제 풀듯 따지고 재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은 순수한 사랑을 믿는 우리이기에 멜빈과 캐롤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멜빈이 배배 꼬인 성격의 소유자이고 다른 사람에게 경멸하듯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또 편집증 증세까지 있어 보도블록의 금을 절대 밟지 않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며, 매일 같은 식당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음식을 집에서 가지고 온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다면 이런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캐롤은 또 어떠한가. 그녀에게는 홀로된 어머니와 몸이 아픈 아들이 있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수입이 적어 아들의 치료는커녕 살림을 꾸리기도 벅차다. 캐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본인은 괜찮다고 해도 주변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할 만한 상황이다. 그렇다. 현실이라면 이들은 애초에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멜빈과 캐롤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느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은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학에도 이와 같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파레토 효율(Pareto efficiency)’이 바로 그것이다. 파레토 효율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정립한 개념으로, 자원배분 상태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된다. 파레토 효율은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파레토 효율적인 자원배분 상태가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의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계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시장

그렇다면 파레토 효율이 도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한 경제가 A와 B 두 명의 소비자와 쌀과 밀가루 두 개의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쌀과 밀가루는 각각 10㎏씩 있고, 소비자 A와 B가 똑같이 5㎏씩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A는 빵보다는 밥을 선호하는 반면 B는 빵이든 밥이든 곡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B는 빵과 밥에 대해 무차별한 것이다. 이때 빵보다는 밥을 더 먹고 싶은 A가 B에게 거래를 제의한다. “밀가루 5㎏을 줄 테니 나에게 쌀 5㎏을 주겠소?” B가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손해될 것이 없다. 쌀이 주는 만큼 밀가루가 늘어 끼니를 때우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두 소비자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소비자 A는 쌀 10㎏, B는 밀가루 10㎏을 보유하게 된다. 이제 A는 좋아하는 밥을 전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즉, 교환을 통해 소비자 A의 후생은 증가한 것이다. 반면 B의 후생에는 변함이 없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그 배분 상태는 전에 비해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되었다고 한다. 한편 빵이 지겨워진 B가 이제 A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밀가루 1㎏과 쌀 1㎏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어떻겠소.” A가 생각해보니 거래에 응하면 자신의 후생이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당신의 제안은 나에게 손해를 가져다주므로 응할 수 없소.” 이처럼 빵보다 쌀을 선호하는 A가 모든 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거래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B의 후생을 증가시키려면 A의 후생을 감소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자원의 배분상태를 가리켜 ‘파레토 효율(Pareto efficiency)’이라고 한다.

위의 예에서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지고 파레토 효율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쌀과 밀가루에 대해 소비자 A와 B가 느끼는 효용, 더 정확히는 한계효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한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느끼는 소비자들의 한계효용의 크기가 동일할 때 파레토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소비자의 한계효용의 크기가 동일하다고 해서 자원배분이 효율적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파레토 효율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인 인간이 완전경쟁상태의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이룩한 균형은 파레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대부분 불완전경쟁상태에 놓여 있다. 또한 우리는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를 무수히 목격해 왔고 지금도 시장 어디에선가는 실패가 일어나고 있다.

이상에 치우친 파레토 효율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파레토 효율'
한편 위의 예처럼 한 사람이 특정 자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도 파레토 효율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양이 감소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파레토 효율은 자원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공평성, 특히 부의 공정한 분배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로 파레토 효율을 현실에서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찾는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선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파레토 효율 역시 멜빈과 캐롤의 사랑이 그러하듯 경제학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파레토 효율(Pareto efficiency)

어떤 자원배분 상태가 실현가능하고 다른 배분 상태와 비교했을 때 이보다 효율적인 배분이 불가능하면 이 배분 상태를 파레토 효율이라고 한다. 파레토 효율은 한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켜야만 하는 상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