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토리 - 프리드먼 사상의 힘

프리드먼은 지칠 줄 모르는 토론과 다수의 통념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빈틈 없는 논리와 분명한 태도로 집단주의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실로 ‘싸우는 경제학자’였다. 그의 화두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작은 정부를 내세워 정부간섭과 정부지출은 줄이고 시장에 최대한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도 프리드먼은 케인스와는 달리 유효 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통화정책, 구체적으로 말해 통화 축소 때문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이론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학계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작은 정부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시카고학파를 형성, 이념전쟁의 전선을 다져나갔다. 프리드먼의 사상은 197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한 케인스주의가 버림받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 들어 그의 자유시장론은 ‘작은 정부와 감세’로 요약되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의 사상적 영향은 미국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제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총리가 자국의 개혁과 개방에 확신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조언과 격려 덕분이었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의 단일 소득세율 도입, 스웨덴이 공적연금을 사적연금으로 개혁한 것도 그의 사상적 힘이었다. 그의 자유시장 비전은 빈곤과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던 칠레를 구출했다. ‘시카고 보이(Chicago Boys)’라는 그의 칠레 추종자들의 도움이 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