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허덕이던 칠레에 구세주로…스웨덴 연금 개혁, 이론적 토대 마련
프리드먼 사상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정부의 시장개입과 정부지출이 번영을 위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빚을 내서라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사상이 지배하던 시기의 산물이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경제 자유는 제한해도 된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프리드먼은 지칠 줄 모르는 토론과 다수의 통념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빈틈 없는 논리와 분명한 태도로 집단주의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실로 ‘싸우는 경제학자’였다. 그의 화두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작은 정부를 내세워 정부간섭과 정부지출은 줄이고 시장에 최대한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도 프리드먼은 케인스와는 달리 유효 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통화정책, 구체적으로 말해 통화 축소 때문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그의 사상과 이론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학계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작은 정부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시카고학파를 형성, 이념전쟁의 전선을 다져나갔다. 프리드먼의 사상은 197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한 케인스주의가 버림받는 순간이었다. 1980년대 들어 그의 자유시장론은 ‘작은 정부와 감세’로 요약되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의 사상적 영향은 미국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제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총리가 자국의 개혁과 개방에 확신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조언과 격려 덕분이었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의 단일 소득세율 도입, 스웨덴이 공적연금을 사적연금으로 개혁한 것도 그의 사상적 힘이었다. 그의 자유시장 비전은 빈곤과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던 칠레를 구출했다. ‘시카고 보이(Chicago Boys)’라는 그의 칠레 추종자들의 도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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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의 자유주의 비전은 세계를 변화시켰다. 사상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 증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프리드먼이 없었으면 지금의 세계는 훨씬 암울했을 것”이라고 기사화했다. 프리드먼은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 사상의 정신적 지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