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스토리

하이에크 사상의 힘
자유주의자들 모아 1947년 이념전쟁 결의…베를린 장벽 무너지자 "거봐, 내가 뭐랬어!"
하이에크 사상이 나온 시대는 칼 포퍼가 말한 대로 열린사회의 적들이 가득한 절망의 시기였다. 20세기 전반 이후 동유럽과 소련을 점령한 공산주의와 서구를 지배한 케인스주의로 자유와 시장경제는 세상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하이에크는 인류가 ‘노예의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1947년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몽 펠르랭으로 자유주의 학자들을 불러 이념 전쟁의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외톨이 경제학자들의 모임’이라는 슘페터의 조롱만 들어야 했다. 더욱이 1970년대엔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개인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 이념이 ‘케인스 망령’과 함께 인류를 빈곤으로 몰아갔다.

이때쯤엔 하이에크도 이념 전쟁에 지쳐 있었고 나이도 들었다. 세상은 그가 말한 것을 진지하게 들어주지도 않았다. 고향 빈에 돌아온 그는 우울증에 빠졌다. 세상이 야속했다. 그 무렵 놀라운 행운이 따랐다. 1974년 하이에크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우울증은 사라지고 생기를 되찾았다.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었다. 케인스주의가 엉망으로 만든 세상을 구할 자가 필요했다. 세계의 눈은 하이에크에게 쏠렸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그를 등에 업고 ‘경제혁명’에 나셨다. 규제를 혁파하고 조세 부담을 줄였다. 정부 돈줄도 묶었다. 결과는 전대미문의 번영으로 나타났다. 물가가 잡히고 고용과 소득도 급증했다. 하이에크가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혁명의 물결은 호주를 거쳐 동유럽으로 향했다. 하이에크가 공산주의는 필연코 망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던 지역이다. 1990년 결국 망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프라이부르크대 병원 병상에 누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하이에크가 한 말이다.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할 방도를 찾던 중국의 덩샤오핑은 이미 그를 불러 한수 배웠다. 중국은 농산물에 자유시장을 도입한 지 3년도 안 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는 죽었지만 그의 이념은 살아 있다. 장기불황으로 신음하는 일본,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세계적 불황, 유럽 문명의 기적을 깨버린 유럽 재정위기…. ‘거봐, 내가 뭐랬어!’ 인류가 하이에크를 만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