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강화의 비용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14일 회의를 열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9%에서 4%로 낮추고, 금융회사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엄격히 하는 내용의 금산분리 강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인 금산분리의 제2금융권 확대 적용은 반대 의견이 많아 더 논의하기로 했다. -8월15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대기업의 제2금융권 소유 막는 건 사회적 비용 초래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소유를 규제하는 금산분리(金産分離)는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은 논쟁 주제 중 하나다. 대기업에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지배권(경영권)을 허용할지 아니면 금지할지가 핵심이다. 논쟁은 금융회사가 개별 기업인지 아니면 사회적 공기(公器) 성격이 강한지, 금융회사의 경영권은 누가 행사해야 할지라는 문제와 관련이 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률은 보험 증권 캐피털 자산운용사 등 2금융권의 소유와 경영은 대기업에도 허용하고 있으나 1금융권인 은행에 대해선 지분 소유 한도를 9%로 제한하고 있다. 대기업의 은행 경영 참여는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금산분리 논쟁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 건 남경필 의원 등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대기업의 소유 제한을 2금융권으로까지 확대하자고 나서면서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금산분리 강화를 외치고 있는 건 금융회사는 사기업이 아니라 공기업 성격이 강하다는 철학을 깔고 있다. 특정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지배해 ‘돈줄’을 쥐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벌들은 더욱 공룡이 돼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의 병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제2금융권 금융사를 소유한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고 자금을 빼돌리는 사례가 과거 종종 발생했다는 사실을 규제 강화 근거로 꼽고 있다.

금산분리를 시행하는 데 따른 편익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방지라고 한다면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금융사의 경쟁력 저하다. 금산분리 정책이 적용되는 은행을 한번 생각해보자. 제조업에선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세계 1, 2위 업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은행에선 국내 최고의 은행이 세계 50위권 수준이다. 이는 정부가 금융회사 경영에 대해 각종 제한을 가하고 있는 데서도 연유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주인이 없어 민간기업의 혁신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하나 산업 등 주요 은행들의 경영권은 지금 누가 행사하고 있는가? 은행장들은 실제로 누가 선임하는가? 답은 정부다. 정부의 동의 없이 은행이나 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진이 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산분리를 2금융권까지 확대할 경우 치러야 하는 대가는 훨씬 커진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논의 중인 제2금융권 확대 적용의 핵심은 △대기업 집단이 계열사로 둔 보험, 증권, 카드사의 계열 분리 △보험사의 일반 계열사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전면 금지 △비은행 금융 지주회사의 일반 자회사 소유 금지 등이다.

만약 이런 내용이 입법화되면 예컨대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11개 보험·증권·카드 등 비은행 자회사를 떼어내야 한다. 한화생명(옛 대한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증권 등을 갖고 있는 한화그룹, 동부생명 동부화재 동부증권 등을 가진 동부그룹 등도 금융사를 분리해야 한다. 게다가 이들 금융사는 계열사 지분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율이 17.59%다. 현재는 보험사가 다른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때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안이 시행되면 금융사가 가진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은 전혀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외국의 기업사냥꾼이 삼성전자를 인수·합병(M&A)하겠다고 덤벼도 삼성생명 등이 가진 17.59% 지분은 의결권이 없어 휴지조각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돈을 써야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 한푼이 아쉬운 판에 말이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대기업의 제2금융권 소유 막는 건 사회적 비용 초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금산분리가 엄격한 미국에서도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5%까지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고 유럽과 일본은 이런 규제가 아예 없다”며 “일부 부실 저축은행 오너의 모럴 해저드 때문에 제2금융회사를 가진 대기업이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는 건 이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유럽 재정위기에 수출은 쪼그라들고 나라 빚과 가계부채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표를 모으기 위한 정치권의 급진주의는 자칫 나라를 진짜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1997년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가 부도나는 등 경제가 급전직하하는데도 해법을 찾진 않고 대선을 앞둔 표 싸움에 골몰했던 결과가 바로 외환위기였다. 경제위기의 출발점은 지도력의 위기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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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나쁜데 곡물값까지 치솟아 가계 '주름살'

애그플레이션과 체감경기

최악의 ‘애그플레이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15일 올해 말 밀가루는 2분기보다 27.5%, 옥수수가루는 13.9% 급등하고 식물성 유지와 사료도 각각 10.6%, 8.8% 뛸 것으로 내다봤다. -8월15일 연합뉴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대기업의 제2금융권 소유 막는 건 사회적 비용 초래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은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전반적인 물가 수준의 상승 현상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 일반 물가도 덩달아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세계 주요 곡물 생산국의 극심한 가뭄으로 밀 옥수수 콩 등 국제 곡물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콘 벨트(corn belt)’로 불리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곡창지대는 56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농사를 망쳤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도 가뭄으로 밀 수확과 수출량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옥수수와 콩 국제 가격은 부셸(25.4㎏)당 각각 8달러와 16달러를 넘겨 2007~2008년 식량위기 당시의 7달러와 15달러대를 넘어섰다.

곡물가격이 오른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세계적인 폭염과 이상기후로 작황이 좋지 않아서다.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식량 소비가 늘어나 곡물 수요가 증가했지만 작황이 나빠서 식량 공급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곡물가격 상승을 틈타 헤지펀드들이 공격적으로 투기에 나선 것도 한 이유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내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4000만t의 곡물 생산 부족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2007~2008년, 2010~2011년에도 곡물 파동이 벌어졌었다. 2007~2008년에는 투기, 주요 생산국의 수출 제한, 옥수수로 만드는 에탄올 생산 증가 등이 곡물가격을 끌어올렸다. 2010~2011년에는 러시아의 가뭄 등으로 세계 곡물 공급량이 3100만t가량 부족했다.

곡물가격 급등은 특히 개발도상국 경제에 타격을 준다. 생활물가를 급격히 올려 국민의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밀과 옥수수는 짜장면, 빵, 국수, 맥주 등 ‘식탁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음식 재료다. 사료 가격은 소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 가격과 우유 등 유제품 가격의 상승을 불러온다. 2007~2008년에 있었던 식량 위기는 방글라데시, 멕시코, 이집트, 아이티 등 30여개국에서 폭동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2010년 기준 26.7%에 불과하다. 쌀(104.6%)을 제외한 밀(0.8%), 옥수수(0.8%), 콩(8.7%) 등은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기후변화로 곡물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데 대비해 자급률을 높이는 정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