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치원을 운영하는 싱글맘 연희의 유일한 걱정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린 딸 예은이다. 신장처럼 2개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것이라도 떼어주겠지만, 심장은 하나밖에 없으니 그럴 수도 없다. 그런데 고민하던 연희에게 희망이 보였다. 브로커를 통해 심장을 기증할 사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였다. 외국인 노동자는 자신의 심장을 기증하고 연희에게 받은 사례금을 가족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목숨 값으로 가족을 부양하려는 가장의 슬픈 책임감이었다. 물론 현행법상 장기 기증에는 어떠한 대가도 오가면 안 된다. 당연히 불법이었고, 연희는 이 거래를 외면한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73) 장기(臟器)의 공급곡선
2010년 개봉한 영화 ‘심장이 뛴다’의 내용이다.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심장을 사려고 하는 연희의 수요나, 가족을 생각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공급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는 장기 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엄격하게 처벌한다. 지난 7월23일에는 간경화에 걸린 동생을 살리기 위해 오모씨가 윤모씨의 간을 5000만원에 매매하려다 적발돼 법원이 징역 8월을 선고한 판결도 있었다.

인간 존엄성 해치는 장기 매매

아픈 사람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장기 거래를 허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장기는 인간의 일부다. 장기를 따로 떼어 거래한다는 것은 인간을 조립식 로봇처럼 따로 떼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가 모여서 만들어진 하나의 인간을 사고파는 노예 제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노예 제도는 안 되고 장기 매매는 가능한가? 장기 매매를 허용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에 중대한 도전이 시작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기의 금전 거래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신체가 재산권으로 인정된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순간 상속세를 내야 하는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려는 행위가 진정한 자유 의지에 따른 자발적인 경제적 거래인가?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고 나서 돌아오는 후유증이나 이후 상황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인가?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이들을 살리는 데 생명을 바치는 것을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나?

그럼에도 장기 매매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기증만으로 장기 수요를 충분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매년 100만명의 환자가 신장이식을, 약 30만명의 환자가 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나 실제 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 수는 1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1990년 미국에서 신장 기증은 1만개가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고, 15년이 지난 2005년에도 1만5000개가 되지 않았다. 반면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1990년 1만6000명 내외였지만, 2005년에는 6만5000명이 넘었다. 2009년에는 약 3500명이 신장이식 번호표를 손에 든 채 황천행 열차에 올라야만 했다.

장기 기증에 보상 따른다면

만약 장기 기증에 대해 보상이 주어졌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어느 정도의 보상이면 만성적인 장기의 초과 수요를 없앨 수 있을까? 미국 경제학자 개리 베커와 훌리오 엘리아스의 연구에 따르면 신장 기증자에게 1만5200달러의 돈을 제공한다면 초과 수요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2000만원이 되지 않는 정도의 보상이면 충분히 장기를 공급한다는 말이다.

공급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려면 그 재화를 시장에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다른 곳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액보다 최소한 같거나 커야만 한다. 공급자의 기회비용 정도는 보상이 이뤄져야 공급이 발생하는 것이다. 신장의 공급도 이와 같다. 신장 기증의 기회비용은 수술 위험에 대한 보상, 수술 후 회복 기간 중 잃어버리는 근로 기회, 수술 후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에 대한 위험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장 기증의 대가가 약 2000만원이었다.

장기 기증 보상의 긍정적 효과는 단순히 대기표를 없애는, 초과 수요를 없애는 수준이 아니다. 악화된 건강 상태로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며 삶을 연명하는 사람과 신속하게 이식 수술을 받고 남은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다. 몸이 아파서 경제적 기여가 없었던 사람이 이식 수술을 받고 사회·경제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한다면 장기 공급의 사회적 가치는 매우 클 수 있다. 필요한 장기가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기 때문에 적기에 수술이 이뤄져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 암시장에서 이뤄지는 불법 장기 적출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 장기 오염 문제 등도 해결할 수 있다.

장기만은 안되는 이유는 뭘까?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73) 장기(臟器)의 공급곡선
2004년 미국에서 장기를 주고받은 사람의 80%는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타심만으로 장기의 부족한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기 매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기 기증에 대한 적절한 보상 제도를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이미 정자와 난자를 시장에서 거래하고 있는데, 장기만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시장논리에 앞서 인간의 존엄성 훼손과 장기 공급자가 주로 가난한 계층이 될 것이라는 걱정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장기 기증에 대한 보상이 시행되면 순전히 이타심에 의한 기증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들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가도록 사회가 격려해야 한다.

차성훈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공급 곡선

공급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려면 그 재화를 시장에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다른 곳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액보다 최소한 같거나 커야만 한다. 즉, 공급자의 판매수입이 기회비용을 초과할 때 공급할 의사가 발생한다. 이것은 기업의 이윤 극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초과 수요

주어진 가격 수준에서 수요량이 공급량을 초과한 경우를 말한다. 이때 가격이 오름에 따라 생산자는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자는 더 조금 소비하려는 과정에서 균형으로 수렴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