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사람은 ‘미국식 집에서, 프랑스 요리를 먹으며, 일본인 아내와 사는 남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넓고 안락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절하고 상냥한 배우자와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이 말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스테레오타입은 원래 인쇄할 때 사용되는 연판을 뜻했다. 처음으로 고정관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평론가 월터 리프먼이다. 리프먼은 저서 《여론》에서 스테레오타입을 ‘머릿속의 이미지’로 정의했다. 사람들이 특정 대상을 개인의 주관이나 본인이 속한 집단이 정의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흑인들은 농구를 잘한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농구선수 중에 흑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흑인들이 농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에게서 관찰되는 현상을 확대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같이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민족이나 문화 등에 대해 단순하고 일반화된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사회 전체가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통용하는 것이 스테레오타입이다.

리프먼은 미디어와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정치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의해 특정 대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형성되고, 이것이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 국민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70)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 존재일까?

'경제적 인간'에 대한 의문


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한 미디어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은 경제학으로까지 번져간다. 경제학도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경제활동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기적인 모습은 철학에서 말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것으로, 체계적인 계획과 합리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경제적 인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경제적 인간은 주류경제학 이론의 기본전제다. 하지만 인간이 실제로 경제적 인간다운 판단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가 실제로 인간에게 주어지는지, 인간이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용할 능력은 있는지, 또 인간이 내린 의사결정이 정말로 만족을 최대화하는 것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비합리적인 모습의 인간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금연을 결심한 흡연자 가운데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담배 한 개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게 하고, 동료와 술잔을 기울일 때는 분위기에 취해 담배에 손이 간다. 담배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와 재정적인 손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최근 유로존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뱅크런 사태 역시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위기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 사회 전체의 신용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거래은행의 건전성에 확신이 없는 예금주들은 예금 인출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최선인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건전한 은행까지 도산하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는 막대한 손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경제학에서는 과거에 지출된 비용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매몰비용은 현재의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논리다. 하지만 매몰비용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란 인간으로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 지불한 비용에 미련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지난날 들인 시간과 노력을 헛되이 하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쏟아진 우유 앞에서 울지 마라(Don’t cry over spilt milk)’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결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꾸 되돌아보게 되고, 주워 담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 행동에 관한 연구 필요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70)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 존재일까?
이와 같이 인간은 때로는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이며, 과거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감정과 직감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인간이 수행하는 경제행위의 일부도 때로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의 산물인 셈이다.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는 주류경제학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류경제학의 이론으로는 인간의 모든 경제행위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새로운 방법으로 고찰하는 경제학계의 노력이 요구된다. 앞으로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며, 이러한 행동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좀 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 연구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 행동경제학 (behavioral economics)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견지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행동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합리적인 인간’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전히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이를 증명하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