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자들의 유쾌한 농담

여기 두 명의 콜럼버스가 있다.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한 사람이라면, 여자라는 미지의 땅에 발견의 깃발을 꽂은 해부학자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가 다른 한 사람이다. 르네상스라는 ‘발견’의 시대에, 하나는 새 땅을 발견함으로써 지구의 크기를 두 배로 넓혔고 다른 하나는 여자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의 영역을 두 배로 넓혔다. 그로써 둘은 근대를 열어젖혔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51> 페데리코 안다아시 '해부학자'
『해부학자』는 실존인물인 16세기 해부학자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여자의 클리토리스(그는 여기에 ‘비너스의 사랑’이란 이름을 붙였다)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롬보의 발견을 안팎에서 추동한 두 명의 여성이 있다. 하나는 제노바 제일의 창녀 모나 소피아. 그녀는 해부학자의 사랑을 거절한 미의 화신이었다. 콜롬보는 쓰디쓴 상처를 안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한 탐험을 시작한다. 또 하나는 피렌체 제일의 열녀로 알려진 미망인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 그녀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저 기관을 발견한다. 그곳을 문지르자 그녀의 병이 나았고 그녀는 사랑의 정념으로 불타올랐다.

이를 과장된 음란함이라 불러야 할까? 우스꽝스럽게도 바로 그 이유로 이 소설은 문학상 시상을 거부당했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이 발견을 전하는 소설의 어조는 우화적인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비너스의 사랑’을 애무한다고 해서 여자를 정복할 수 있다는 해부학자의 결론은 유머지 과학이 아니다. 모든 여자를 악마의 자식, 유혹의 대리인이라 부른 중세의 세계관이야말로 터무니없는 것이다. 본래 유머는 권위, 맹신, 억압,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유일하고도 유력한 무기다. 여자를 사람으로 치지도 않던 시대에 이렇게 하면 여자를 접수할 수 있다고 건네는 농담은 최소한 여자를 남자인 당신과 동일한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의 발견과 실험을 악마의 소행이라 단정한 소속대학의 학장에 의해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의 증언과 콜롬보가 제출한 변론 진술서는 이 소설의 백미다. 그의 변론에 따라 그가 소환했던 악마, 괴물, 환상이 근대적인 과학 실험의 산물임이 밝혀진다. 물론 그의 과학이 근대의 과학은 아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여자에게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에게 영혼이 있다면 여자에게는 ‘비너스의 사랑’이 있다. 남자가 영혼 곧 자유의지로 성욕을 조절한다면 여자는 저 기관에 종속된 살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징그러운 농담이지만 우리는 이 농담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 중세는 육체가 죄악의 덩어리일 뿐이어서 영혼이 그것을 철저히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여기 육체의 열망만으로 움직이는 인간, 여자 사람이 있다! 영혼은 여자에게서 쫓겨나 유혹과 욕망에 겁먹은 불쌍한 남자에 빌붙어 사는 조그만 세입자가 되었다! 이 농담을 뒤집으면 우리는 육체의 복권을 주장하는 근대의 유물론적 믿음을 만날 수 있다. 해부학자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과학의 시각으로 보면 엉터리인 복잡한 동역학 유체이론을 설명한다. 동역학 유체란 영혼=욕망=육체의 흥분을 말한다. 남자에게도 영혼의 고결함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장작불 위의 운명을 간신히 피한 해부학자는 마지막으로 첫사랑을 찾아 나선다. 소설의 끝에 이르러 두 여성의 운명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미의 화신이었던 창녀 소피아는 지독한 매독에 걸려 흉측한 괴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끝내 그의 사랑을 거절하면서 숨을 거둔다. ‘비너스의 사랑’을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육체의 막장 반전극이다. 자신의 사랑이 그 조그만 기관의 소행임을 깨달은 이네스는 자기 손으로 자신과 세 딸의 기관을 잘라내 버렸다. 육체의 황홀에서 자유로워진 그녀는 성녀의 삶을 살았을까? 천만에. 그녀는 지중해를 주름잡은 창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끝내 세 딸과 함께 화형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성녀에서 창녀로. 또 다른 막장 반전극이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조직한 조직 내에서 창녀들은 “각자 존재에 대한 진정한 자유의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마침내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었다.” 이것이 소설의 진정한 결론이다. 육체에서 벗어나는 게 자유로운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욕망이 육체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인정해야 진정한 자유의 길이 열린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51> 페데리코 안다아시 '해부학자'
마녀의 특징을 열거한 목록을 읽으면 중세의 마녀가 근대의 자유여성임을 알게 된다. 이네스는 ‘비너스의 사랑’을 잘라버림으로써 남자의 손길에 종속되지 않고 진정한 사랑과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것은 해부학자의 불행한 죽음과도 대비된다. 해부학자는 끝내 기르던 까마귀에게 자신을 마지막 식사거리로 내놓는다.

그는 세상 모든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하고 소유했으나 단 하나의 사랑을 갖지 못했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롬보도 자신이 인도를 찾았다고 믿으며 죽었다. 해부학자 역시 여자라는 신대륙을 찾았으나 진정한 여자라는 발견에는 이르지 못했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여자는 여자 자신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었을 테니.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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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권력 조롱하고 인간의 무지 비판

♣'해부학자'줄거리
『해부학자』는 기발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아르헨티나 작가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대표작으로, 실존 인물인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의 독특하면서도 위험한 ‘발견’을 그린 소설이다.

마테오 콜롬보는 혈액의 폐순환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낸 해부학자이자 여성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신체기관인 클리토리스를 발견한 인물이다.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마테오 콜롬보가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콜럼버스)와 성(姓)이 같고, 두 사람 모두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발견’을 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향신료와 황금을 찾아 항해를 떠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는 과정과 흡사하게 마테오 콜롬보의 클리토리스 발견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해부학, 종교,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 재생산해내고, 해부학자의 발견을 ‘이단’으로 규정한 종교 권력을 조롱함으로써 중세의 음울하고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종교적 금기, 인간의 무지를 비판한다. 이 작품은 1997년 스페인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51> 페데리코 안다아시 '해부학자'
원제: El anatomista

저자: Federico Andahazi(1963~ )

발표: 1997년

분야: 아르헨티나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해부학자

옮긴이: 조구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67(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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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세기의 발견은_____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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