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금리와 은행의 도덕적 해이
영국 최대 은행 바클레이즈의 리보(LIBOR) 조작 사태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2일 마커스 에이지어스 바클레이즈 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데 이어 3일 아침 최고경영자(CEO) 봅 다이아몬드가 사임했다. - 7월3일 연합뉴스

☞ 리보(LIBOR)는 ‘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용어다. 직역하면 ‘런던 은행간 제공금리’다. 런던 금융가에 있는 일류 은행들이 자기들끼리의 자금 거래에 적용하는 대표적인 단기금리를 뜻한다. 명칭에 ‘Offered’란 말이 들어간 것은 20개 은행들이 은행간 대출에 대해 이 정도의 금리를 받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이를 평균해서 산출되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모임인 영국 은행연합회(BBA)가 메이저 회원들로부터 보고받은 금리 자료를 바탕으로 금융정보회사인 톰슨로이터가 계산해 배포한다. 리보는 2차 세계대전 후 내리막길을 걷던 런던이 세계 금융시장의 주역으로 다시 등장한 1986년부터 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리보 자체에 금리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지만 ‘리보’나 ‘리보 금리’ 용어가 둘 다 쓰인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조작 파문 일고 있는 세계금융의 기준 '리보'
리보는 미국 달러, 유로, 파운드, 엔 등 10개 통화별로 1일, 1주일, 1개월, 3개월, 6개월짜리 평균 금리가 공시된다. 예를 들어 1주일 달러리보, 1개월 유로리보, 3개월 엔리보 등의 식이다. 3개월 달러리보가 0.4606%라면 런던 은행간 거래에서 달러를 3개월동안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가 연 0.4606%라는 뜻이다.

리보 금리는 세계 각국의 국제간 금융거래에 기준금리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런던이 아니라 뉴욕의 은행간 거래금리, 즉 뉴욕 리보 금리가 대부분 금융거래의 기준금리로 사용된다. 뉴욕시장의 글로벌 영향력이 훨씬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은행이 신용도가 낮을 경우 리보 금리에 추가 금리를 붙여 자금을 빌릴 수 있는데 이를 스프레드(가산금리)라고 한다. 가령 삼성전자가 국제 금융시장서 달러화를 빌리는 데 리보+100bp에 자금을 조달키로 했다고 하자. 100bp가 바로 스프레드다. bp는 베이이스 포인트의 약자로 1bp=0.01%다. 따라서 리보+100bp에 달러 자금을 빌렸다면 차입금리는 리보에 연 1%를 더한 조건이 되는 셈이다.

리보 금리의 추세를 살펴보면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리보 금리가 치솟으면 은행들의 자금 사정에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경제가 위기 상황일 때, 또는 통화당국이 돈줄을 조일 때 나타난다. 반대로 리보 금리가 낮은 상태를 유지하면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거나 통화당국이 돈줄을 풀고 있다는 뜻이 된다.

300년의 역사를 가진 영국 유수의 금융그룹인 바클레이즈 회장과 CEO가 동시에 물러나기로 한 것은 부당 이익을 얻기 위해 리보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리보는 근본적으로 은행들이 ‘제시하는’ 금리라는 점에서 그동안 조작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리보 금리는 BBA 회원 은행이 오전 11시쯤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회원이 정직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직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2007년 8월 은행간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BBA 일부 회원 은행들은 자금을 조달하며 약속한 금리를 낮춰 연합회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당시 누구도 믿지 못할 만큼 금융시장이 혼란스런 가운데 높은 금리는 해당 금융사의 신뢰도가 낮다는 걸 의미했으며 이는 곧 파산 임박이나 다름없었다. 자연스럽게 은행연합회 제출용 금리에 대한 ‘마사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 선물, 옵션 등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은 이렇게 조작된 리보 금리를 이용해 돈을 베팅했다. 바클레이스 트레이더들은 리보를 이용한 금융상품을 계약한 뒤 금리 제출 담당자에게 리보를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신용경색 와중에 치솟던 리보가 어느 순간 낮게 고시되면서 상승 쪽에 베팅한 트레이더들이 손해를 봤다. 반면 바클레이즈 트레이더 수익은 불어났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바클레이즈 트레이더들이 리보 조작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하지만 에이지어스 회장과 다이아몬드 CEO가 거액의 보너스를 받는 데 조작으로 얻은 수익이 일조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조작 파문 일고 있는 세계금융의 기준 '리보'
각국 정부나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금리는 보통 ‘리보+α’식으로 결정된다. 또 각종 파생상품의 가격도 리보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이런 파생상품이 무려 350조달러(약 39경9000조원)에 이른다. 리보가 조작되면 이들 상품의 가격질서도 엉망이 된다.

바클레이즈는 리보 금리 조작으로 2억9000만파운드(약 5192억원)의 벌금과 함께 최고 경영진이 물러나는 불명예를 안았다. 씨티, HSBC, UBS등 리보 금리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20여개의 대형 금융사들도 지금 노심초사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는 대형 은행들이 또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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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은행 자기자본' 규제

BIS비율과 금융감독


국내 주요 은행들은 2019년부터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을 현행 8.0%에서 최고 15.5%까지 높여야 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2일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최근 정한 ‘국내 시스템적 중요은행(D-SIB) 규제체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 7월3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조작 파문 일고 있는 세계금융의 기준 '리보'
☞ BIS비율은 은행이 가진 위험자산(부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에 대한 자기자본 비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이 100억원인 은행이 위험자산(가중치를 적용해 계산)을 1000억원 갖고 있다면 이 은행의 BIS비율은 10%가 된다. BIS비율은 금융회사가 보유 자본 측면에서 얼마나 건전하고 안전한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한다.

국제적 금융감독기관인 BCBS는 그동안 BIS 8%를 금융회사 건전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해왔다. 이에 따라 8%가 넘으면 우량 은행, 8%에 못 미치면 비우량은행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 BIS 8% 기준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보완할 필요가 생겼다. 자기자본을 위험자산 대비 8% 정도 갖고 있다고 해서 은행이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바젤Ⅲ다. 바젤Ⅲ는 자기자본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구체적으론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보통주만을 발행해 확보한 자본이 위험가중자산 대비 7%, 총자본 기준으론 10.5% 이상을 충족하도록 했다.

BCBS는 이와 함께 경영이 부실해질 경우 세계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대형 금융사를 선정해 이들에 대해선 보다 까다로운 자기자본 규정을 적용키로 했다. 이렇게 정해진 대형 금융사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은행’(G-SIB, Global Systemically Important Banks)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국내 중요은행(D-SIB)’이다. G-SIB에는 이미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바클레이즈 중국은행 등 29개가 지정된 상태다. 또 이들에 대해선 BIS 8%를 뛰어넘는 추가적 자기자본을 갖추도록 규제 기준안이 이미 마련됐다.

국내 중요 은행(D-SIB)도 추가로 자본을 늘려야 한다. 2016년 1월부터 BIS비율을 단계적으로 올려 2019년부터는 보통주자본 기준 최고 9.5%, 총자본 기준으로 최고 13.0%까지 높여야 한다.

여기에 위기시 감독당국이 임의로 은행에 추가 자본 확보를 지시할 수 있는 ‘경기대응 완충자본’까지 포함하면 주요 은행은 BIS비율을 보통주자본 기준 12%, 총자본 기준으로 최고 15.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