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L - 페덱스

‘옐로(yellow) 또는 화이트(white).’

물품을 가장 빠르게 외국으로 보내고 싶다면 노란색과 흰색 비행기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하늘길을 놓고 쟁투를 하는 영원한 맞수 DHL과 페덱스다. DHL은 물류 전체 부문 세계 1위 기업이다. 물동량을 기준으로 다른 기업을 압도한다. 페덱스는 ‘항공 특송’의 대명사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3위지만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단연 1위다. DHL과 페덱스의 세계 항공특송 시장 점유율은 각각 29%와 26%다. 두 회사가 처리하는 화물은 연간 200억개, 1400만에 달한다. 한 대에 1.4인 현대 쏘나타 승용차 1만대가 공중으로 배달되는 셈이다.

● DHL의 하늘길 혁명

DHL은 세관 통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1969년 아드리안 달시와 래리 힐브룸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작은 물류 회사 MPA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54세였던 달시는 영업관리직이었고 힐브룸은 26세의 발송담당 직원이었다. 어느날 힐브룸은 주식으로 번 3000달러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달시와 얘기를 나누게 됐다. 달시는 그에게 “우리가 직접 창업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전체 배달 시간에 비해 세관에서 통관을 거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에 착안, 물품 신고서를 항공기로 미리 세관에 보내놓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류작업을 끝내 놓으니 화물은 일사천리로 세관을 통과했고 배달에 걸리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얼마 뒤 부동산업자 로버트 린이 자금을 보태며 사업에 참여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따 DHL이라는 사명을 정하고 최초의 문서 특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달시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힐브룸은 전략 기획을 담당했다. 린은 창업 초기 재무관리와 투자를 담당하다가 사업이 궤도에 오른 이듬해 회사를 떠났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1970년대는 미국 대기업들이 앞다퉈 해외로 진출하던 시기였다. 송장, 계약서, 임명장, 채권 등의 중요한 문서를 외국으로 보내기 위해 DHL의 항공 특송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두 사람은 곧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72년에는 일본 홍콩 호주를 비롯한 태평양권 주요 거점에 진출했고 영국 런던에도 사무소를 열어 유럽 시장을 두드렸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도 발을 넓혔다.

[세기의 라이벌] '빠르고 안전한'  DHL… ', 세계를 누비는 물류 거인' 페덱스

● 페덱스의 허브시스템

페덱스 창업 아이디어는 자전거에서 시작됐다. 1965년 예일대 경제학부에 다니던 프레드릭 스미스는 화물수송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바퀴 중심(허브·hub)과 바퀴살(스포크·spoke) 원리를 이용한 익일 배송 시스템’이었다.

원리는 이랬다. ‘각 도시의 화물을 허브(중심지)로 모아서 보낼 지역별로 분류한다. 바퀴살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지듯 화물을 항공기로 밤새 목적지로 보낸다. 다음날 배달을 완료한다.’ 당시엔 두 지점을 최단 거리로 잇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방식이 대세였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화물을 보내려면 차로 160㎞만 옮기면 됐다. 스미스의 방식을 따르면 뉴욕에서 3200㎞ 떨어진 멤피스 허브를 거쳐야 물건을 배달할 수 있었다. 보고서를 받은 교수는 “개념은 잘 구성했지만 실행 가능성이 없다”는 평과 함께 C학점을 줬다.

하지만 스미스는 굴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1973년 자신이 쓴 보고서를 기반으로 페덱스(FedEx·Federal Express)를 설립하고 화물 특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미스는 전국 어디라도 다음날이 되면 고객과 약속한 시간에 물건을 배달해 주는 ‘익일 특급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객들은 배송이 빠르고 정확하다면 돈을 더 낼 의사가 있었다. 스미스는 이 점을 간파한 최초의 사업가였다. 점차 ‘하늘의 페덱스’라는 평판이 퍼져나갔다. 페덱스라는 기업 명칭은 물건을 특송으로 보냈다는 뜻인 ‘페덱스했다(fedexed)’는 말로 통하기 시작했다.

● 미국에서 독일 기업으로

DHL을 성장시킨 비결은 과감한 확장 전략이었다. 힐브룸은 전략 기획 담당자로 DHL의 해외 확장과 신사업 진출을 이끌었다. 1977년엔 소화물 배송 사업에 진출했다. 화물 특송 사업에선 후발 주자였지만 기존의 문서 특송 네트워크를 활용해 발빠르게 사업을 넓혀 나갔다. 1980년대 들어 물동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DHL은 신시내티와 브뤼셀 허브를 차례로 열었다. 중동 허브, 말레이시아 항공 물류 관제 센터 등도 차례로 건설했다.

그 사이 DHL은 공동 창업자 두 사람을 잃었다. 1994년 달시가 노환으로 사망했고 1995년 힐브룸이 자신이 소유한 수상비행기를 타고 가던 도중 추락사고를 당했다.

그 틈새를 도이치 포스트(독일 우정국)가 파고들었다. 1995년 민영화 작업을 완료한 이 회사는 1999년부터 DHL 지분을 본격적으로 매입, 2001년에는 지분율을 49%까지 늘렸고 2002년에는 나머지 51%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미국 기업 DHL이 글로벌 기업 DP-DHL(도이치 포스트 DHL)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2008년부터 새롭게 DHL을 이끌게 된 프랑크 아펠 회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결정은 미국 내 특송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었다. 전임 CEO 클라우드 줌빈켈이 미국 내 특송시장에서 페덱스를 무너뜨리고자 투자를 늘렸던 것이 수익 악화로 이어진 탓이었다.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DHL은 2009년 1분기에만 10억유로의 흑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시장의 영원한 1위는 DHL이 아닌 페덱스였다. 페덱스의 승부수는 독특한 마케팅과 이벤트성 배달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에 출연한 4m짜리 뱀상어를 운송한 일화는 TV로 널리 알려졌다. 곰 호랑이 고릴라 등처럼 다루기 힘든 동물들과 미식축구 우승컵 등 화제성 있는 물품의 배달을 도맡았다. 헐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페덱스의 흰색 봉투를 들고 다녔고 배달 트럭을 탔다. 2000년 개봉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는 무인도에서 홀로 생활하는 페덱스의 간부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무인도에서 탈출한 주인공이 배달하지 못한 물건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변하지 않는 아날로그의 가치


두 회사는 이제 우편·발송(포워딩)·3자물류(위탁물류)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DHL의 매출은 697억달러, 페덱스는 420억달러에 달했다. 항공 특송 서비스는 두 회사가 사업을 시작한 40여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화물에는 전자태그(RFID)가 부착돼 모든 정보가 중앙 컴퓨터에 입력되기 때문에 송장을 확인하거나 바코드를 찍는 과정 없이도 세관을 통과한다. 양사가 주문·수주·발주 등 물류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물류정보시스템(MPS)을 발달시켜 온 덕분이다.

그러나 물류 사업이 아무리 전자화된다 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아날로그적 요소는 ‘배달’ 그 자체다. 물품이 배송되는 모든 과정이 컴퓨터를 통해 이뤄지더라도 누군가는 물건을 소비자의 손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미스 회장은 “우리의 기술은 날로 진보하고 있지만 단지 더 빨리 배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