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열린 EU 정상회의 중 가장 성공적이다.”(월스트리트저널)

지난달 28, 29일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일단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독일은 예상을 깨고 유럽기금으로 재정위기국 국채를 직접 매입하라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요구사항을 전격 수용했다. 하지만 합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정치적·법적 장애물이 만만치 않아 효과가 단기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독일 내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예상외의 결과…시장은 화답

EU 정상들은 유로안정화기구(ESM)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 위기대응 기금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위기 국가의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또 ESM이 국가를 통하지 않고 은행권을 직접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국가 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은행권 통합의 첫 단계로 단일감독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아울러 조만간 집행될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에서 ESM의 최우선순위 채권자 자격도 없애 일반 채권자와 동일한 변제권을 갖도록 했다. 정상들은 성명에서 “EU 집행위원회가 곧 단일 (은행)감독구조 방안을 정상회의에 제안할 것”이라며 “정상회의가 이 제안을 올 연말까지 긴급 사안으로 고려해 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효율적인 단일 감독 메커니즘이 확립될 때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역내 은행들에 직접 자본을 확충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정은 정상회의 시작 직전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유로존 3, 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한 전면적 구제금융설이 확산되자 독일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가장 큰 아군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잃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입장만을 고수하기 힘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듭된 긴축정책으로 자국에서 인기가 떨어진 몬티 총리가 10차례 이상 메르켈 총리와 개별 회동을 갖는 등 공을 들인 것도 협상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조달금리 상승에 힘들어 하던 국가들은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당장 사정이 여의치 않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의 은행들이 혜택 대상이 될 예정이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의장은 정상회담 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은행과 국채 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번째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유로존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명확한 결정”이라고 반겼다.

[Global Issue] EU 정상회의  '해피엔딩'…유로존 위기 급한불 꺼지나

#단기 효과에 그칠 수도

예상 밖의 성과를 얻었음에도 정상회의 ‘약발’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 조건을 확정하기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U 정상들은 ECB가 중심이 된 은행권 단일감독기구의 관리 아래서만 ESM이 위기 국가의 국채를 매입하거나 은행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단일감독기구의 성격에 따라 지원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CB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독일이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원하는 대로 국채 직매입이 단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없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09년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뒤 1조유로가 넘는 돈을 지원했는데도 유로존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오히려 늘었다. ESM이 최대 5000억유로를 추가 지원해도 재정위기를 끝내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우리는 가라앉는 배를 끌어올렸다고 안도하고 있다”며 “문제는 배에 난 구멍(재정적자)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유로존의 위기 대책 합의로 부담이 늘게 된 독일 내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우베 프뢸리히 독일협동조합은행연합회(BVR) 회장은 “독일 은행 관계자들은 이번 위기 대책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29일 독일 하원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EU의 신재정협약과 ESM의 설립 비준안을 통과시키긴 했지만 이번 정상회담 결정에 대해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불평은 여당 내에서도 터져나왔다. 메르켈 소속 정당인 기독민주당의 볼프강 보스바흐 의원은 “이번 EU 정상들의 결정 내용은 결국 다른 나라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며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도 귀국 직후 “엄격한 긴축 없이 스페인 은행들이 독일 납세자의 돈을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독일 Ifo경제연구소도 “이번 조치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은행들은 한숨 돌릴지 몰라도 독일은 지원 부담이 커지면서 남유럽 재정위기에 더욱 깊이 휘말리게 됐다”며 “독일 경제의 안정성이 크게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남윤선/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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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국가들, 긴급대책 놓고 치열한 공방전

[Global Issue] EU 정상회의  '해피엔딩'…유로존 위기 급한불 꺼지나
유럽연합(EU) 정상회의 긴급대책을 둘러싸고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핀란드 등 일부 국가가 유로존 구제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해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르키 카타이넨 핀란드 총리는 전날 의회에 낸 보고서에서 “ESM으로 2차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회원국 전체의 만장일치가 필요하지만 핀란드는 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재무부 대변인도 같은 날 “우리는 구제기금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ESM으로 국채를 매입하면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며 “국채매입 건에 대해 사안별로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덴마크 경제장관도 “유럽 차원의 금융감독시스템이 도입되면 부동산 거품 등을 방지, 해소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할 우리의 거시경제적 정책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면서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핀란드 등 일부국가가 국채 매입을 반대하자 스페인 등 다른 나라들과 유럽의회는 “정상회의에서 이미 합의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루이스 드 귄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은 “지난주 정상회의에서 분명히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면서 “어떤 나라도 이 결정을 저지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핀란드 측은 “정상회의 때 일부 국가가 유보 의사를 밝혔으며, 당초 발표문 최종 시안에 ESM 국채매입이 언급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