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90조원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첨단 산업기술인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일명 아몰레드)’ 패널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일당이 적발됐다. 검찰은 지난달 말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와 LG디스플레이(LGD)의 TV용 AMO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이스라엘 광학기기검사 업체 ‘오보텍’ 한국지사 직원 3명을 구속 기소하고 또 다른 3명은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SMD와 LGD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55인치 TV용 AMOLED 패널 설계도를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기업들은 핵심기술 유출에 비상이 걸렸다.

[Focus] 줄줄 새는 첨단 기술…기업들, 유출 방지 '초비상'


#도난맞은 세계 1등 기술

AMOLED는 현재 주를 이루는 LCD의 뒤를 잇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기술이다. 현재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위주로 쓰이고 있지만 삼성과 LG 등 국내 기업은 고급형 대형 TV까지 쓰임새를 넓힌다는 목표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색 재현력과 화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전력소모가 적다는 장점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LGD) 공장의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점검을 위해 공장을 출입하던 오보텍 한국지사의 김모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2~3회에 걸쳐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55인치 TV용 AMOLED 패널의 레이어별 실물 회로도 등을 촬영, USB에 담은 뒤 이를 자신의 신발, 허리띠, 지갑에 숨기고 나와 이스라엘의 오보텍 본사에 보냈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안모씨도 이 기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를 출입하면서 비슷한 수법으로 AMOLED 패널의 회로도 등을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첨단기술을 빼내는 과정에서 삼성과 LG 측의 보안 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보텍은 자사가 SMD와 LCD에 검사장비를 납품하고 운용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을 이용, 아몰레드 패널 설계도 등을 촬영해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보텍은 이를 주요 고객사인 중국 BOE, CSOT와 대만 AUO, CMI 등을 관리하는 해당 담당 직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회사들의 경쟁 업체들로 관련 기술이 넘어갔다는 얘기다. 오보텍은 이를 통해 검사장비 매출을 늘려왔다. 업계는 이번 사건으로 한국 업체들이 최대 30조원 가까운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기술유출

외국 기업들이 국내 산업기술을 빼돌리는 사고는 지난 몇년 새 크게 늘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오보텍 사건과 유사한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사건(유출 시도 포함)은 2006년 31건, 2007년 32건, 2008년 42건, 2009년 43건, 2010년 41건에 달한다. 이들 기술이 모두 해외로 빼돌려졌다고 가정했을 경우 피해액은 연간 50조원 규모다. 검찰은 200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1355건의 산업기술 유출 관련 수사를 벌였다. 사법처리된 건수를 기준으로 한 나라별 순위는 중국(37건), 일본(4건), 미국(4건), 러시아(3건) 순이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41.2%), 정밀기계(19.6%), 정보통신(18%) 순이다. 업계와 관계당국은 산업기술 유출 사고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6년 국내 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기밀 유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상 기업의 20.5%가 회사 기밀이 유출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20~30년 전만해도 이렇다할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다. 선진 해외 업체에 파견간 직원들이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워왔다는 일화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역사에서 빠지지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입장은 ‘추격자’에서 ‘추격당하는 자’로 바뀌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 여러 부문에서 세계 일류 기술을 보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외국 경쟁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종합적 대책 마련 시급

이러한 기술 유출 문제로 몸살을 앓는 것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1994년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엘러리시스템즈에 근무하던 중국 국적의 엔드루 왕은 회사의 신기술 개발 자료를 빼돌려 이를 기반으로 DC테크놀로지라는 별도 회사를 창업했다. 엘러리시스템스는 미 항공우주국(NASA), 통신업체 AT&T, 컴퓨터 업체 IBM이 공동출자한 업체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를 적발했으나 법에 처벌 근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었다. 결국 엘러리시스템스는 문을 닫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한 미국은 1996년 산업기술 유출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는 내용의 ‘경제스파이법’을 제정했다. 다른 나라도 산업기술 유출 방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 경제가 점점 발전할수록 기술 유출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다각도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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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때 골칫거리도 '기술 빼내기'

[Focus] 줄줄 새는 첨단 기술…기업들, 유출 방지 '초비상'
현재 드러난 기술 유출 사건 가운데 대다수는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전·현직 직원이 공모해 빼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들이 전체 유출 사건의 77%를 차지한다. 특히 전직 직원에 의한 기술 유출이 60%를 차지하고 있다. 경쟁 업체 등에서 거액을 받거나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되면서 기술을 빼내 넘겨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로는 협력업체 직원(14%)이었다. 해커나 최첨단 장비를 갖고 있는 전문 스파이가 아니라 해당 업무에 관련돼 있던 사람들이 기술을 빼돌린다는 의미다.

지난달 초 경찰이 적발한 오토바이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기술 유출 혐의로 구속된 이모씨(59)는 H사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핵심 엔지니어였다. 기술연구소에서만 대부분을 근무하며 거의 모든 오토바이 개발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이 회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상용화한 250㏄, 660㏄ 오토바이 엔진도 이씨와 이 회사 기술연구소 직원들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이런 실적을 인정받아 공장장과 이사, 부사장을 거쳐 2007년에는 대표이사 사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7년 말부터 2010년 초까지 엔진 제작 도면과 제조 기술을 중국 회사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산업혁명 당시에도 이런 방식은 비슷했다. 1799년 영국 랭커셔 출신 목수 코커릴은 아들과 함께 몰래 프랑스령 벨기에로 빠져나가 면방적 장비를 만들고 영국의 장인들을 빼돌려 공장을 세웠다. 독일 등 다른 나라들도 영국 장인들을 빼가기 위해 혈안이었다. 영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1825년까지 숙련기술자의 출국을 법으로 금했고, 1834년까지 직조기계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