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 공약이 부른 필연?… 日 정계 회오리바람 부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기간에 이룩한 경제성장, 그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삼류정치….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 공통점이다. ‘경제는 일류, 정치는 3류’로 풍자되듯 일본의 정치는 파벌이 심하다. 당이나 정치인의 이익에 따른 이합집산도 비일비재하다.

[피플 & 뉴스] 4번째 탈당한' 정치 9단' 오자와 이치로 前 민주당 대표
파벌과 이합집산의 중심에 선 인물 중 하나가 일본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다. 그는 한마디로 당을 깨고 만드는 데 ‘선수’다. 그래서 별명도 ‘파괴자’다. 신당 창당 경력만 이미 세 번째다. 그는 다시 몸담은 민주당을 나와 네 번째 당을 만든다. 그가 이달 초 민주당을 탈당한 명분은 ‘반증세’다.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달 26일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안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반발이다. 그를 따라 민주당을 탈당한 소위 ‘오자와파’ 의원도 49명에 달한다. 민주당은 가까스로 과반수를 유지했지만 몇 명만 추가 탈당하면 의석 절반이 무너진다. 이 경우 일본 정계의 회오리가 예상된다. 민주당의 절반 의석이 붕괴되면 오자와 그룹이 자민당 등 야당과 손잡고 내각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집권당은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시 총선거를 실시하는 게 관행이다.

오자와가 정계에 발을 들인 건 27세 때인 1969년. 중의원이던 부친의 급사로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정계입문 후 타고난 정치감각으로 승승장구했다. 49세 때 자민당을 좌지우지하는 간사장 자리까지 오르며 ‘황태자’로 불렸다. 하지만 1993년 선거구제로 자민당 지도부와 충돌하자 44명의 계파의원을 이끌고 신생당이라는 정당을 꾸렸다. 일본의 정치가 ‘보수 대 진보’에서 ‘오자와 대 반오자와’로 틀이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1994년에는 9개 계파의 214명을 묶어 신진당을 결성했고, 1997년에는 다시 자유당이라는 새 간판을 걸었다. 2004년엔 민주당과 손잡고 자민당 55년 체제를 무너뜨리는 기반을 닦았다.

오자와의 탈당은 선심공약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서도 복지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민주당의 장밋빛 선거공약 자체가 무리였다. 일본의 재정상황으론 선거공약 파기는 시간문제였고, 민주당 지지율이 정권붕괴의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20%에 바짝 다가서자 ‘정권수호’ 차원에서 증세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치 9단’ 오자와는 “(세금을 안 올리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키라”며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고 결국 당은 두 조각이 났다.

이유야 어찌됐든 오자와의 탈당과 신당 창당은 한국의 정치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일본인들의 여론도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 당분간 오자와는 뉴스를 탈 것이다. 그의 행보와 여론의 향방이 한국정치에 ‘타산지적’이 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