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원자력 관련법에 ‘안전보장 목적’을 추가, 핵의 군사적 이용을 위한 길을 터놓았다. 이번 법 개정으로 일본의 핵무장과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가 대내외적으로 높아졌다. 동아시아 각국도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34년만에 원자력기본법 수정

도쿄신문은 지난달 21일 “일본 의회가 여야 협의를 통해 원자력 기본법의 기본방침을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의회는 원자력 기본법 2조에 ‘원자력 이용의 안전확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 및 재산의 보호, 환경보전과 함께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원자력 기본방침 변경은 34년 만이다. 법안 수정을 주도한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자민당 의원은 “일본을 지키기 위해 원자력 기술을 안전보장의 관점에서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법안은 절차상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논란의 핵심인 원자력기본법은 일본의 원자력 관련법을 통틀어 최상위법에 해당해 흔히 ‘원자력 헌법’으로 부른다. 하지만 일본 국회는 원자력기본법은 그대로 둔 채 하위법인 원자력규제위원회설치법 부칙에서 원자력기본법의 개념을 변경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법률이나 조례로 헌법 조항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절차상 문제가 있고 위헌의 소지도 크다”고 말했다.

법 개정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 최초 노벨상(물리학상) 수상자인 고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이 창설한 지식인단체 ‘세계평화 호소 7인 위원회’는 “실질적인 군사 이용의 길이 열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국익을 해치고 재앙의 화근을 남겼다”는 내용의 긴급호소문을 발표했다. 일본은 ‘핵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세계 3위의 원전대국이다. 사용 후 핵연료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작년 9월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총 30t이다. 핵폭탄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플루토늄이 2~3㎏가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1만개 이상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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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 현실성 희박

이런 시도에도 불구, 일본의 핵무장이 현실화하기에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일본은 현재 평화헌법에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를 규정하고 있고 1968년 1월에는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을 발표했다. 일본이 핵무기 보유를 위해서는 관련 법을 모두 바꾸기 위한 국민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원자력의 군사 전용은 없으며 비핵화 3원칙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원전담당장관도 “‘안전보장’은 핵 확산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한국 외교부도 회의적이다. 외교부 한 당국자는 사태직후 “예의 주시하겠다. 일단 내부 진전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은 일본의 경우 원전 재가동을 놓고도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정부의 핵무장 추진이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당국자는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보면 지난해 한국이 개최한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안보 개념에서 설명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설명인 만큼 이를 존중하면서 향후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혜진 외교통상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국가안전 보장의 측면에서 원자력을 발전시킨다는 내용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를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일본은 최근 무기수출 3원칙을 공식적으로 완화하고, 자위대가 42년 만에 도쿄 시내에서 무장훈련을 하는 등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마자키 마사카쓰(山崎正勝) 도쿄공대 명예교수는 “원자력기본법은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한 최초의 법”이라며 “철저한 논의조차 없이 기본방침을 변경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시아 군비 경쟁 가속화 우려

일본의 핵무장 우려는 동아시아 각국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일본이 비대칭 무기인 핵을 보유할 경우 비핵(非核) 국가 입장에서는 군사 전력 면에서 불균형이 발생해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지역은 중국과 대만 간 갈등, 북한의 핵개발, 중국과 인도 간 분쟁, 남중국해의 영토분쟁 등 군사적 긴장을 촉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곳곳에 널려 있다. 때문에 일본의 핵무장은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더 가속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아시아의 군비 확장은 중국이 먼저 치고 나가면 일본과 인도ㆍ한국 등이 이를 뒤쫓는 모양새였지만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은 아시아의 순수 무기 구입 예산이 오는 2016년 1140억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핵무장은 특히 최근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미국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일본의 핵무장이 서방권의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필리핀ㆍ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를 비롯해 인도ㆍ일본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군사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4월 중국 전역의 대도시를 겨냥해 ‘중국 킬러’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아그니5호를 시험 발사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동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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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핵무기 얼마나 될까?…최다 보유국은 러시아


전 세계가 보유한 핵무기는 얼마나 될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6월초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서 “전 세계에서 지난 1월까지 실전 배치했거나 해체될 예정인 핵무기는 1만9000개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년보다 1500기 줄어든 숫자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핵무기 보유가 인정된 5개국 가운데 보유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현재 약 1만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약 8000기로 2위를, 프랑스와 중국, 영국이 약 300~225기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안보위협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SIPRI는 “이러한 핵무기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들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들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향후 10년 동안 핵무기 산업에 7000억 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러시아는 핵개발 시스템에 70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 기류에 편승한 중국, 인도, 이스라엘, 프랑스, 파키스탄 등도 전략 핵미사일 시스템 개발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SIPRI는 북한에 대해 “지난 2006년과 2009년 2차례 핵실험을 했지만 실제 실전에 투입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할 공공 정보가 없다”며 핵보유국에서 제외했다. 다만 북한이 플루토늄 30kg을 소유하고 있다는 정보는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