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기다린 노벨상 소감…"버마는 잊혀지지 않았다"

[피플 & 뉴스] 미얀마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치
“저녁 라디오 뉴스를 듣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외부로부터 고립돼 있던 저는 실제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은 인간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이끌어 낸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21년 만의 수상식이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67)가 지난 16일 해마다 노벨평화상을 주는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중앙홀 연단에 섰다.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을 비롯한 600여명의 참석자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수치 여사는 보라색 전통 의상과 옅은 보라색 스카프를 두르고 연단에 서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 경험을 술회했다.

미얀마 민주화는 수치 여사를 빼놓고 말을 할 수 없다.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1988년 영국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해 8월 군부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규모로 발생한 대규모 시위 ‘8888항쟁’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섰다. 이후 야당인 국민민주연맹(NLD) 총재로 취임한 뒤 1990년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군부 정권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그를 자택에 연금했다. 수치 여사는 최근까지 사실상 억류 상태에 있었다.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영국에 있던 남편과 두 아들이 대신 상을 받아야 했다.

그는 “더 중요한 것은 노벨 평화상으로 전 세계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의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버마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뜻이다. 이날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평화상위원회 위원장은 “세계를 변화시킨 역대 평화상 수상자를 대표하는 존재”라고 수치 여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수치 여사는 연설 내내 미얀마 대신 버마라는 독립 당시 나라 이름을 썼다. 군부 정권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버마에서 미얀마로 나라 이름을 바꿨다. 이런 군부 독재의 유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얀마는 지난 4월 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하고 군부 독재를 종식했다. 대통령 등 정부와 의회의 요직을 여전히 군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등 완전한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 이행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얀마의 현재 상황에 대해선 ‘조심스런 낙관주의’를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심수 문제나 자국 내 소수민족 탄압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아울러 그는 “잊혀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라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큰 나라들의 ‘동정 불감증(compassion fatigue)’은 “이중의 고통”이 될 것이라고 관심을 호소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