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리는 총가구수 89가구 중 가임부부가 83쌍에 이르고, 이들의 출산율은 100%에 육박하는 가족계획의 최대 걸림돌 마을이다. 정부는 용두리 마을의 출산율 하락을 위해 가족계획요원을 파견하지만, 농사 중에 자식농사를 최고로 생각하는 마을사람들의 출산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인 마을 이장은 지방 순시 중인 대통령을 만나 주민들의 부채를 탕감해주면 출산율 0%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후 이장과 가족계획요원은 목표 달성을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잠자리를 관리해 나간다.

이상은 이범수, 김정은 주연의 영화 ‘잘 살아보세’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가족계획사업이 한창이던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가족계획사업’이란 가족의 건강과 가정복지의 증진을 위하여 수태조절에 관한 전문적 의료봉사와 계몽 또는 교육을 하는 사업을 말한다. 어머니와 자녀의 건강을 유지하고 가정경제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출산 시기와 자녀 수를 조절하자는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68) 잘 살기 위해서 인구를 줄여라?

가족계획과 경제개발사업 병행


우리나라에서는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라는 표어 아래 1962년부터 가족계획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수용 의지에 힘입어 1960년대 초 3%에 달했던 인구증가율은 1990년에 이르러 1% 미만으로 하락하였다. 합계출산율 역시 가족계획사업의 영향으로 1970년 4.5명에서 1990년 1.5명으로 감소하였다.

가족계획사업은 매 5년 단위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주목할 점은 사업 기간이 당시 정부 주도의 산업화 계획인 경제개발계획의 기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가족계획사업은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가족계획사업과 경제개발계획을 병행하여 추진했던 것일까? 왜 경제성장을 위해 인구증가를 억제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속한 인구증가가 일어나면 노동공급의 초과현상이 발생한다. 그로 인한 실업의 증가는 성장을 가로막기 일쑤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 통치를 피해 해외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귀국하고 북한 주민들이 대거 남한으로 이주하면서 갑작스러운 인구증가를 경험했다. 게다가 의료기술 발달로 사망률이 감소했다. 1960년대 한국 경제는 노동 공급에 비해 수요가 부족해 실업자가 꾸준히 증가했다. 결국 실업 문제의 장기화를 막기 위하여 인구 억제를 추진했던 것이다.

실업자 줄이려 인구증가 억제

정부가 적극적으로 인구 증가 억제에 나선 데에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원 마련을 위한 것도 있다. 인구가 증가하면 할수록 부양을 위해 자원이 소모된다. 만약 인구성장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그만큼 남는 자원을 경제성장에 투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철강과 중화학공업 등에 적극 투자하였던 1960~70년대에는 다양한 자원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던 시기였다.

마찬가지 논리로 인구증가율 억제는 투자 자본 마련에도 도움을 준다. 자본은 노동력, 자원과 더불어 경제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하지만 경제성장 초기에 가장 커다란 문제점 중의 하나가 바로 자본을 조달하는 일이다. 후진국이 확보할 수 있는 자본이라봤자 보잘것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자본을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만약 당시 가족계획이 실시되지 않았다면 경제성장에 투입돼야 할 자본이 늘어난 인구의 부양에 쓰였을 것이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대외채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사업은 경제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인구증가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그 결과 인구증가율은 현격히 감소하였고, 이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인구 억제가 필요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해야 하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자명하다. 같은 양의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할 때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원과 자본이 한정적일 때 인구가 작으면 그만큼 부양비가 줄어 산업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과 자본의 양이 늘어나게 된다.

오히려 저출산·고령화'걱정'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68) 잘 살기 위해서 인구를 줄여라?
물론 인구 증가가 경제에 악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인구가 많을수록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고 노동의 질이 향상되어, 전문성과 효율성이 높아지고 기술개발이나 기술혁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소비의 측면에서도 인구증가는 긍정적일 수 있다. 인구의 수가 시장의 크기로 이어져 기업 활동을 활발히 하고 외국기업이나 대규모 자본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오히려 인구 과소(過少) 현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인구는 경제와의 관계는 양면적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 인구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거나 인구 감소가 반드시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점은 우리 경제의 몸집과 체력에 맞는 적정인구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는 각계각층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해줄 적정인구를 찾아야 할 때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경제개발계획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196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단위로 추진되었던 경제계획이다. 경제개발계획 기간에는 국내의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외국 자본과 자원을 도입하여 정부 주도로 수출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1962년 87달러에서 1996년 1만2587달러로 크게 증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