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진료 줄이고 병의원간 경쟁도 높여"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가 불 보듯 뻔하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포괄수가제 도입해야 하나요
오는 7월부터 포괄수가제가 실시된다. 백내장, 편도, 맹장, 탈장, 치질, 자궁수술, 제왕절개 등 7개 질병의 진료비에 정찰제가 시행되는 것이다. 환자는 질병별로 미리 정해진 진료비만 내면된다. 대상 병원은 30병상 이상 100병상 미만인 병원급과 30병상 미만인 의원급이다. 현재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할지를 병원이나 의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것이 의무로 바뀌는 것이다. 7월부터는 종합병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그런데 시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 도입에 반발해 집단 수술 거부에 나서면서 의료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외과 산부인과의사회 등 4개과 개원 의사회 회장들은 지난 12일 긴급 모임을 갖고 맹장과 제왕절개 수술 등 7개 대상 질환에 대해 수술 거부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의사협회가 이런 강경책을 내세운 이유는 복지부가 포괄수가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대해 국민 건강을 담보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집단 수술 거부 사태까지 발생한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제 대상인 7개 질병은 치료기법이 비슷하게 표준화돼 있어 서비스 차이가 크지 않고 재료비 차이도 별로 없어 과잉 진료를 없애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의료서비스 질 저하 문제는 2002년부터 포괄수가제를 자율적으로 실시해 본 결과를 분석해 보면 환자가 부실 진료로 재입원한 비율이나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미 71.5%의 의료기관이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전면 시행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포괄수가제가 아닌 행위별 수가제하에서는 과잉 진료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의사들은 병원 수입을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그럴 경우 각종 ‘검사 늘리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포괄수가제로 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현재 포괄수가가 행위별 수가보다 높게 설정돼 있는 만큼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지 않아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 포괄수가제에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다수의 개원의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의견도 개진했다.

신현호 변호사는 “포괄수가가 시행되면 같은 금액이라고 서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며 “집중치료를 하게되면서 양쪽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대

의사협회는 수술 재료 중 하나는 비싸고 하나는 이의 절반도 안 할 경우 포괄수가제가 적용되면 의사가 이 중 어떤 재료를 선택할지 뻔하다며 결과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입장이다. 노 회장은 “포괄수가제는 한꺼번에 미리 묶어서 정해진 가격만 지급하기 때문에 병원은 당연히 원가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싼 재료를 쓰려 할 것이고 의료비를 많이 쓸 것으로 예상되는 고위험 환자는 회피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캐나다 스페인 등에서 고위험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떠넘기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윤용선 대한의원협회 회장은 “포괄수가제로 수가가 묶여 버리면 의사들은 끊임 없이 양심진료와 경제적 진료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의료계에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포괄수가제는 최선의 진료를 방해하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 불안하게 만든다”는 입장이다. 그는 “포괄수가제는 한마디로 전국의 자장면 값을 3000원만 받으라는 것”이라며 “990원짜리 먹고 싶은 사람도 있고, 좀 더 돈을 내더라도 좋은 재료를 사용한 5000원짜리를 먹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7월1일부터는 무조건 3000원짜리 먹으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들의 포괄수가제 참여율은 39.9%에 불과하다. 더 큰 상급 종합병원 중에는 포괄수가제에 참여한 병원이 한 곳도 없다”며 대형병원은 고가 장비를 사용하는데 포괄수가제가 강제되면 진료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생각하기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보험의 낮은 의료수가에 있다고 봐야 한다. 낮은 의료수가는 온갖 과잉 검사와 편법 진료를 낳고, 이는 다시 건보 재정 악화로 이어져 온 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 현장의 실상이다. 정부가 진료비 정가제나 다름없는 포괄수가제를 들고 나온 것도 바로 그런 배경에서다. 포괄수가제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 의사협회의 주장이 일리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 같은 질병이라고 해도 환자의 상태나 연령 등등에 따라 주사 검사 등의 추가 여부나 치료 기간, 재료, 치료 기술 등에 따라 진료원가가 달라질 수 있는데 정액 진료비만 받으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의사들이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고민은커녕 어떻게 하면 진료 원가를 아낄지에만 골몰할 게 뻔하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포괄수가제 도입해야 하나요
문제는 의료 수가를 현실화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선택권, 건강권을 종종 말하지만 정보 비대칭성이 높은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의사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과잉 검사, 편법 진료 등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판을 쳐도 환자들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는 그런 문제점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이는 의사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일정한 재량권을 갖겠다면 그에 앞서 높은 직업윤리를 담보할 장치부터 갖추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의협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의료 수가 현실화와 함께 의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내지 않는 한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