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혁신과 가격 경쟁으로 물가상승 막는 '파수꾼'
할인점 등 대형 유통점이 죄악시되는 세태다. 동네 상권을 잡아먹는 아귀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1960~1970년대에 머물러 있고, 냉장고조차 갖기 어려운 가난한 국민, 가난한 나라라면 동네 수퍼나 재래시장이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동네 상권만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싸고 좋은 물건을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까? 토종 대형마트를 없앴다면 그 자리는 아마도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 유통점이 차지했을 터다. 유통 혁신을 불러오는 대형마트 시장과 전통 재래시장을 별개 시장으로 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대형 유통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3회 시리즈를 싣는다.
#박리다매의 원리
‘장보러 가자’는 말이 요즘에는 ‘마트 가자’라는 말로 바뀔 만큼 대형 할인점은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할인점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다양한 먹거리와 문화공간, 편리한 주차, 깨끗한 공간, 야간 쇼핑, 친절한 안내, 품질 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싼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다는 점이 소비자에겐 가장 큰 매력이다.그렇다면 할인점에서 파는 물건은 왜 쌀까? 국내 최초의 할인점인 이마트를 포함해 대형마트들은 상시 저가 판매(Everyday Low Price)를 위해 대체로 다섯 가지 정책을 쓴다. ‘박리다매’, ‘유통구조 혁신’, ‘해외 직소싱’, ‘자체브랜드 상품 확대’, ‘농축수산물 계약재배’가 그것이다.
박리다매는 상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대량으로 판매해 이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개별 상품의 이익률을 낮게 정하는 대신 상품의 회전율과 판매량을 높여 이익을 보충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싸서 좋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판매량이 많아 좋고, 할인점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판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좋다.
‘이마트 드림뷰 TV’가 좋은 예다. 이 TV는 출시 3일 만에 5000대가 팔려 전자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가전시장에서 유통업체가 기획한 TV가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최대 LCD(액정표시장치) 생산업체인 TPV와 함께 동일한 모델을 대량 생산하고 중간 유통단계를 크게 줄여 품질은 대기업 제품과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49만9000원으로 무려 20~40% 저렴한 덕분이었다.
#유통단계 혁신
유통구조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최대 9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국내 신선식품 유통단계를 절반가량으로 줄이는 혁신을 통해 소비자물가를 낮추고 있다. 즉 한우유통 흐름인 ‘농가→산지 수집상→우시장→중도매상→도축·해체→가공업자→수집상→정육점→소비자’ 구조를 위탁영농을 통해 ‘농가→도축→이마트 직접 경매·해체(위탁 가공)→이마트 미트센터→소비자’로 축소했다. 이 같은 혁신 덕분에 소비자들은 한우고기를 시세보다 10~30% 싸게 살 수 있다.
또 구매처를 세계 각지로 다변화하는 해외 소싱으로 상품을 싼 가격으로 확보한다. 지난해 이마트는 구제역과 폭염, 장마 등으로 폭등한 신선식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해외 직소싱으로 국내산 삼겹살의 30% 정도 가격인 벨기에산 삼겹살과 국내 시세보다 20~30% 저렴한 캐나다산 자반고등어와 대만산 오징어 등을 판매했다. 또 지난해 이른 추석으로 자연산 송이가 국내에서 나오지 않아 중국 차마고도에서 자연산 송이를 매입, 국내산 대비 50~60% 수준 가격에 판매한 할인점도 있었다.
#가격경쟁 유도
자체브랜드(PL) 상품 개발로 인한 상품 가격 인하도 한몫한다. PL 상품은 유통업체가 품질이 검증된 제조업체 상품을 저렴하게 받아 유통업체 자체 상표를 붙여 팔기 때문에 일반 상품(NB 상품)보다 20~40% 싸게 공급한다. 일반 상품 업체가 요구하는 별도의 마케팅비용 등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체 상표는 일반 상품과의 가격 경쟁을 유도해 전체 상품 가격을 낮추는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도 발휘한다.
신선식품 계약재배는 산지 농가와의 직접 계약과 대금 지급을 통해 상품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농가 소득을 안정화, 상향화하는 효과를 낸다. 유통업체가 산지 농가로부터 직접 상품을 매입, 기존 7단계의 유통구조를 3단계로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산지 농가의 각종 판매 수수료 등의 비용이 사라져 농가와 소비자가 동시에 이익을 보는 구조로 혁신됐다는 평가다.
#냉정한 소비자
할인점은 단면만 보면 동네 상권에 위협이 된다. 하지만 크게 보면 유통구조를 혁신하고,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 1970년대에 머물고 있는 동네 상권도 나름 혁신을 통해 차별점을 찾는다. 업종 전환도 이뤄지고 새로운 업태가 창출되기도 한다. 재래시장에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어쩌면 할인점 덕분이다. 경제성장으로 소비 패턴이 선진화되고 있는 한 재래시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쟁은 피곤한 것이지만 경쟁 속에서 동네 빵가게도, 재래시장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높아진 소비자의 눈에 들지 않는 한 살아남기는 힘들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할인점 등 대형 유통점이 죄악시되는 세태다. 동네 상권을 잡아먹는 아귀로 그려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1960~1970년대에 머물러 있고, 냉장고조차 갖기 어려운 가난한 국민, 가난한 나라라면 동네 수퍼나 재래시장이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동네 상권만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싸고 좋은 물건을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까? 토종 대형마트를 없앴다면 그 자리는 아마도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 유통점이 차지했을 터다. 유통 혁신을 불러오는 대형마트 시장과 전통 재래시장을 별개 시장으로 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대형 유통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3회 시리즈를 싣는다.
#박리다매의 원리
‘장보러 가자’는 말이 요즘에는 ‘마트 가자’라는 말로 바뀔 만큼 대형 할인점은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할인점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다양한 먹거리와 문화공간, 편리한 주차, 깨끗한 공간, 야간 쇼핑, 친절한 안내, 품질 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싼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다는 점이 소비자에겐 가장 큰 매력이다.그렇다면 할인점에서 파는 물건은 왜 쌀까? 국내 최초의 할인점인 이마트를 포함해 대형마트들은 상시 저가 판매(Everyday Low Price)를 위해 대체로 다섯 가지 정책을 쓴다. ‘박리다매’, ‘유통구조 혁신’, ‘해외 직소싱’, ‘자체브랜드 상품 확대’, ‘농축수산물 계약재배’가 그것이다.
박리다매는 상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대량으로 판매해 이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개별 상품의 이익률을 낮게 정하는 대신 상품의 회전율과 판매량을 높여 이익을 보충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싸서 좋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판매량이 많아 좋고, 할인점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판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좋다.
‘이마트 드림뷰 TV’가 좋은 예다. 이 TV는 출시 3일 만에 5000대가 팔려 전자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가전시장에서 유통업체가 기획한 TV가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 최대 LCD(액정표시장치) 생산업체인 TPV와 함께 동일한 모델을 대량 생산하고 중간 유통단계를 크게 줄여 품질은 대기업 제품과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49만9000원으로 무려 20~40% 저렴한 덕분이었다.
#유통단계 혁신
유통구조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최대 9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국내 신선식품 유통단계를 절반가량으로 줄이는 혁신을 통해 소비자물가를 낮추고 있다. 즉 한우유통 흐름인 ‘농가→산지 수집상→우시장→중도매상→도축·해체→가공업자→수집상→정육점→소비자’ 구조를 위탁영농을 통해 ‘농가→도축→이마트 직접 경매·해체(위탁 가공)→이마트 미트센터→소비자’로 축소했다. 이 같은 혁신 덕분에 소비자들은 한우고기를 시세보다 10~30% 싸게 살 수 있다.
또 구매처를 세계 각지로 다변화하는 해외 소싱으로 상품을 싼 가격으로 확보한다. 지난해 이마트는 구제역과 폭염, 장마 등으로 폭등한 신선식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해외 직소싱으로 국내산 삼겹살의 30% 정도 가격인 벨기에산 삼겹살과 국내 시세보다 20~30% 저렴한 캐나다산 자반고등어와 대만산 오징어 등을 판매했다. 또 지난해 이른 추석으로 자연산 송이가 국내에서 나오지 않아 중국 차마고도에서 자연산 송이를 매입, 국내산 대비 50~60% 수준 가격에 판매한 할인점도 있었다.
#가격경쟁 유도
자체브랜드(PL) 상품 개발로 인한 상품 가격 인하도 한몫한다. PL 상품은 유통업체가 품질이 검증된 제조업체 상품을 저렴하게 받아 유통업체 자체 상표를 붙여 팔기 때문에 일반 상품(NB 상품)보다 20~40% 싸게 공급한다. 일반 상품 업체가 요구하는 별도의 마케팅비용 등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체 상표는 일반 상품과의 가격 경쟁을 유도해 전체 상품 가격을 낮추는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도 발휘한다.
신선식품 계약재배는 산지 농가와의 직접 계약과 대금 지급을 통해 상품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농가 소득을 안정화, 상향화하는 효과를 낸다. 유통업체가 산지 농가로부터 직접 상품을 매입, 기존 7단계의 유통구조를 3단계로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산지 농가의 각종 판매 수수료 등의 비용이 사라져 농가와 소비자가 동시에 이익을 보는 구조로 혁신됐다는 평가다.
#냉정한 소비자
할인점은 단면만 보면 동네 상권에 위협이 된다. 하지만 크게 보면 유통구조를 혁신하고,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 1970년대에 머물고 있는 동네 상권도 나름 혁신을 통해 차별점을 찾는다. 업종 전환도 이뤄지고 새로운 업태가 창출되기도 한다. 재래시장에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어쩌면 할인점 덕분이다. 경제성장으로 소비 패턴이 선진화되고 있는 한 재래시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쟁은 피곤한 것이지만 경쟁 속에서 동네 빵가게도, 재래시장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높아진 소비자의 눈에 들지 않는 한 살아남기는 힘들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