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축구에서 같은 지역이나 도시를 연고로 벌이는 라이벌 경기를 ‘더비’라고 한다. 영국의 작은 도시 더비의 축구팀 세인트피터스와 올세인트가 벌였던 치열한 축구경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날 세계 축구팬의 눈과 귀를 가장 사로잡는 더비는 영국이 아닌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El clasico)’다.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팀 색깔, 선수 구성, 구단 경영까지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엘 클라시코의 주인공들. 바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다.

지난 3월22일 프리메라리가 35번째 경기이자 219번째 엘 클라시코 경기가 열렸다. 레알 마드리드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결승골로 2-1 신승(辛勝)을 거두며 두 팀 간 균형추가 기울었다. 이날 승리로 레알 마드리드는 87승 46무 86패로 바르셀로나와의 상대전적에서 1승 차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축구 팬들이 이 두 팀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팽팽한 축구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세기의 라이벌] 87승 46무 86패…레알 vs 바르샤 '축구 100년 전쟁'

●국왕 타이틀 vs 카탈루냐의 정신

레알 마드리드는 지역 축구선수였던 훌리안 팔라시오스가 스페인에서 공부하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졸업생을 모아 1902년 3월18일 창단했다. 초창기엔 ‘FC마드리드’란 이름으로 창단과 동시에 스페인리그에 참가해 1905년 스페인컵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스페인 국왕 타이틀이 걸린 ‘킹스컵’에서 4연패를 거두며 1920년 스페인 국왕인 알폰소 13세로부터 왕립을 뜻하는 ‘REAL(스페인어로 헤알)’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바르셀로나는 이보다 3년 전인 1899년 11월29일 스위스인 한스 감퍼와 그의 지지자 10명이 모여 만든 팀이다. 감퍼는 아프리카에 설탕회사를 설립하러 가던 도중 바르셀로나에 들렀다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 정착했다. 스위스 축구팀 FC바젤의 선수이기도 했던 감퍼는 자신의 이름까지 카탈루냐 식인 ‘호안 감페르’로 바꾸고 FC바르셀로나를 만들었다.

두 팀이 앙숙이 된 계기는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두 팀을 기반으로 한 지역들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면서였다. 당시 FC바르셀로나의 회장은 카탈루냐 출신의 좌익 성향 정치인이었던 호셉 수뇰이었다. 좌파 정권에 맞서 가톨릭 세력과 상류층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정적이었다. 프랑코 독재정권은 1950~60년대 마드리드를 기반으로 한 카스티야 왕족의 지원을 받아 가혹하게 카탈루냐를 탄압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분리독립운동을 펼쳤지만 프랑코 정권의 박해는 더욱 거세졌다. 카탈루냐 언어인 카탈란을 쓰지 못하게 했고 카탈루냐 국기마저 없애버렸다. 바르셀로나의 팀 이름까지 FC바르셀로나에서 카스티야식인 CF바르셀로나로 바꿔버렸다.

프랑코는 라이벌 팀인 레알 마드리드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스페인에서 레알이란 칭호는 곧 왕정이 지원하는 팀을 의미했다. 이때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왕실 경호대란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다. 결국 양팀 간 경쟁은 왕정이 지원하는 부유층과 카탈루냐 서민층 간 대결구도로 흘러가게 됐다.

하지만 막강했던 프랑코 독재정권도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프 누에서만큼은 카탈란 사용을 막지 못했다. 카탈루냐 시민들은 캄프 누에서 그들의 언어로 노래하고 응원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선 ‘CATALONIA IS NOT SPAIN(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프랑코 정권에 대한 분노를 일시에 표출하기도 했다. 지금의 ‘엘 클라시코’는 100년 넘게 이어져온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지역 간 탄압과 저항의 역사가 어우러졌다고 볼 수 있다.

●구단 가치, 선수 연봉도'라이벌'

두 팀은 구단 가치에서도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20개 프로축구팀 시장가치’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보다 29% 상승한 레알 마드리드는 18억7700만달러(2조1400억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메인 스폰서인 아디다스와 에미레이트항공사, BWIN(베팅업체) 등의 후원으로 2억5000만달러(2834억원)를 벌어들였다. 특히 20개 팀 가운데 가장 많은 2억1400만달러의 순수익을 거뒀다. FC바르셀로나는 전년에 비해 34% 상승한 13억3070만달러(1조5000억원)의 가치를 평가받았다. 지난해 9600만달러(1094억원)의 수익을 냈다. 하지만 메인 스폰서인 카타르재단과 2016년까지 매년 440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향후 레알 마드리드의 구단 가치를 넘어설 것으로 축구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선수 연봉에서도 양팀은 라이벌이다. 미국의 ESPN 매거진은 최근 기사를 통해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평균 선수연봉이 각각 791만달러와 735만달러로 전 세계 프로 스포츠팀 중 1, 2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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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락티코 vs 칸데라

레알 마드리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실력이 검증된 유명 선수를 비싼 몸값을 주고 영입하는 ‘갈락티코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구단주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2000년 FC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루이스 피구(포르투갈)를 당시 최고 이적료인 3700만파운드에 영입, 바르셀로나 팬들의 분노를 샀다. 이후 2001년부터 축구황제 호나우두(브라질)와 지네딘 지단(프랑스)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호베르투 카를로스(브라질) 등 당시 최고의 선수들을 엄청난 몸값에 데려왔다. 이들이 거둔 성적은 예상보다 저조했지만 해외 중계권료와 유니폼 판매 등 세계 최고 선수들을 영입해 거둔 마케팅 수익은 엄청났다. 2009년에는 ‘갈락티코 2기’라고 불리는 호날두(포르투갈)를 비롯해 히카르도 카카(브라질), 카림 벤제마(프랑스), 메수트 외질(독일) 등이 페레스 회장의 러브콜로 팀에 합류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그해에만 2400만유로(35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매년 호날두 유니폼만 100만장 이상 팔려 나가는 등 2005~2009년 가장 많은 유니폼 판매 수입을 올린 축구클럽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유소년 때부터 선수를 체계적으로 키워 실력 있는 스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칸데라’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선수 가운데 상당수는 라 마시아(La Masia)라는 바르셀로나 축구학교 출신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리오넬 메시 역시 13살 때 스페인으로 건너와 라 마시아에서 성장했다. 라 마시아는 어린 선수들에게 개인기보다는 꾸준히 동료와 호흡을 맞추게 해 팀워크의 중요성과 자기희생을 배우도록 가르치고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한 패스와 유기적인 조직력으로 스페인 우승을 일군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푸욜 등도 FC바르셀로나 출신이자 라 마시아에서 함께 축구를 했던 동료들이다.

이런 칸데라시스템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시민들로 구성된 구단 지배구조다. 역사적으로 FC바르셀로나는 그들의 팬인 지역주민 17만명이 소유하고 있는 팀이다. 모든 결정은 팬이 내리고 이들 중 무작위로 선택된 사람들이 소시스(Sosis)라는 경영진을 구성, 구단을 운영한다. 시민이 돈을 모아 구단 운영자금을 대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전통적으로 유명 기업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 유니폼에 광고도 하지 않는다.

이 금기는 2006년 유엔아동긴급구호기금(UNICEF) 로고를 유니폼에 달면서 107년 만에 깨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FC바르셀로나가 매출의 0.7%를 UNICEF에 기부금으로 내겠다는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스포츠 클럽이 어떻게 지역사회와 상생하는지, 그리고 국제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정진 한국경제신문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