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제도는 인도인들을 계급으로 나누어 그 지위를 세대를 넘어 세습하도록 하는 인도의 신분제도이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카스트제도에 따라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분류된다. 계급별로 종사할 수 있는 직업도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브라만은 교육이나 종교적인 업무를 담당하며, 크샤트리아는 국가를 경영하는 일을 수행한다. 바이샤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을 도맡아 하거나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리고 수드라는 주로 육체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계층이다. 카스트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파리아로 불리며 세탁이나 청소, 시체 처리 등 어렵고, 힘들고, 남들이 꺼리는 일들을 처리한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65) 경제학 속의 '차별'은 자연스러운 현상?
이처럼 카스트제도의 근본 취지는 계급별로 직업을 분업화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 하지만 계급 간의 이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도록 되어 있어 인간을 차별하는 제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대한 차별적 대우나 취급은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오고 사회적인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사회적 소외계층이나 약자를 형성하여 경제적 탄압과 착취의 대상을 양산해낸다. 사회구성원의 역동성을 상실시켜 해당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도 차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카스트제도는 1947년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물론 인도 사회에 그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는 하층 계급에 대한 교육 및 취업 부문에서의 사회적 배려가 법률로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많이 축소되었다.

경제학도 차별이 존재하나?

그렇다면 합리적인 학문이라고 자부하는 경제학에도 차별이 존재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차별은 카스트제도와 같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까?

경제학에서의 차별은 주로 노동시장에서 목격할 수 있다. 노동 공급의 주체인 근로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임금은 직업의 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고 같은 직업 내에서도 사람에 따라 종종 다르게 책정된다. 이는 직업의 성격과 근로자의 능력, 그리고 사회가 보여주는 직업별 수요에 기인한다.

직업의 성격에 따른 차별은 임금의 격차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한 건물의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사람이 두 명이 있고 이들 중 한 명은 건물의 외벽을, 다른 사람은 건물 내부를 청소해야 한다고 하자. 만약 어느 곳을 청소하든 똑같은 임금이 주어진다면 두 명 모두 건물 내부 청소를 선호할 것이다. 이때 건물주가 외벽을 청소하는 대가로 임금을 인상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외벽 청소의 어려움과 신체적인 위험보다 임금 인상분이 더 큰 효용과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단하고 위험하며 유쾌하지 못한 직업에 대해서는 이를 상쇄해 줄 임금의 보상이 이루어진다. 즉, 직업의 특징이나 성격에서 비롯된 차이를 임금으로 보상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보상적 임금격차’라고 한다.

임금 격차를 만드는 요인

노동시장에서 임금의 격차를 발생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학력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자의 임금을 100으로 보았을 때 중학교 졸업 이하 근로자의 임금은 86, 전문대 졸업자는 106.3, 대학교 졸업 이상자는 154.4로 나타났다.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7년 현재 국가별 중학교 졸업 근로자의 임금은 독일 91, 미국 65, 영국 70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대졸 이상자의 임금은 독일 162, 미국 172, 영국 157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시장의 수요자인 기업이 고학력자의 생산성을 저학력자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고학력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금전적인 지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력 차이에 따른 임금의 격차는 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들어간 금전적, 비금전적 비용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소비자의 수요도 임금의 차별을 발생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다. 대중매체에서 기업들의 제품을 광고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현재 인기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다. 인기스타들의 광고출연료는 많게는 평균임금 근로자 연봉의 수십 배에 달한다. 높은 출연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이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비자들이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65) 경제학 속의 '차별'은 자연스러운 현상?
그리고 이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대중의 선호가 회사와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높은 수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모델로 나올 경우 소비자는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제품의 품질과 연결시키고, 이로 인해 수익이 악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서 어쩔수 없는 차별

노동시장에서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차별된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아 왔는지에 따라 임금은 영향을 받는다. 또한 사회와 소비자들이 보여주는 선호에 의해서도 직종별, 근로자별 임금은 달라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편견으로 발생하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은 인간적, 도덕적 차원에서 근절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경제학에서의 차별, 특히 임금 차별은 경쟁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거미집 이론

직업에 따라서는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노동의 강도가 다른 일에 비해 센 경우가 있다. 또한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쾌적하지 않고, 요구되는 기술이나 지식이 높아 재교육을 받거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직업 특성상의 차이는 임금의 보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이때 발생하는 임금의 차이를 보상적 임금격차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