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대선에서 맞붙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경쟁적으로 법인세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행 최고세율 35%인 법인세율을 28%로 낮추겠다고 했고 롬니는 이보다 더 낮은 25%까지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대선주자들이 법인세 인하를 들고 나온 것은 자국 기업의 해외 이탈을 막아야 성장잠재력과 고용 여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의 법인세 인하 노력이 번번이 국회의 반대에 부딪혀 무위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야권은 법인세 인상까지 주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 "성장잠재력 ·고용능력 높이자"

법인세 인하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물론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법인세 인하에 동참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30%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각각 29.0%, 28.0%로 낮췄다. 캐나다는 22.1%에서 15.0%로, 영국도 28%였던 법인세를 24%로 낮췄다.

선진국들에 비해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법인세 인하에 나선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만은 최고세율 25%를 17%로 낮췄고 홍콩은 17.5%에서 16.5%로, 싱가포르는 20%에서 17%로 각각 인하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요 국가가 재정문제를 걱정하면서도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고 있는 것은 국가경제 전체의 활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납세 문제는 단순히 국가에 얼마의 돈을 내느냐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 자유시장경제 등 현대사회에서 국가와 국민의 핵심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다. 세금이 국가 재정의 근간일 뿐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 경제활동의 자유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장 잘 수용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 52개국 납세 관련 시민단체들의 연합인 ‘세계납세자연합회(WTA)’다. WTA는 ‘낮은 세금, 낭비 축소, 책임있는 정부, 납세자 권리’를 모토로 1988년 출범했다.

이들의 활동은 조세 제도와 관련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시행착오를 겪은 선진국들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WTA가 추구하는 제한된 정부, 납세자의 권리 향상, 조세 경쟁 등 세 가지 실천목표도 서구사회에서 지나치게 높은 세금이 가져온 부작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다. WTA는 세금 부담을 낮추는 대신 정부는 낭비를 줄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Focus] 세계는 법인세 인하중…한국만 정치논리에 '역주행'

#글로벌 추세 역행하는 한국

한국의 현실은 이 같은 국제적 흐름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당초 올해부터 법인세 최고구간 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던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치권이 내세운 반대 논리는 한국의 법인세율이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것. 여기에 무상 복지 확대를 위한 추가 재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세수 감소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가세했다. 절대적인 수준으로 보면 한국의 법인세율은 결코 높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4개국 가운데 캐나다 칠레 헝가리 스위스 폴란드 등 13개국이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낮고 미국 일본 호주 벨기에 덴마크 등 나머지 국가들은 법인세율이 높다.

하지만 법인세를 다른 나라들과 수평적으로 단순 비교하면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황정훈 기획재정부 법인세제과장은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국가 간 경쟁 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 세제는 싱가포르 대만 등과 비교해야 한다”며 “한국 법인세는 이들 국가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세청 관계자도 “법인세 인상은 해외 기업 유치, 투자 활성화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오히려 세수를 감소시킬 수 있는 만큼 불필요한 비과세 감면을 줄이는 게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GDP 대비 법인세 비중 높아

이런 현실을 감안해 법인세율 수준을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유용한 척도는 GDP(국내총생산)에서 법인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OECD가 지난해 발표한 ‘2009년 국가별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을 보면 한국의 법인세 비중은 3.7%로 노르웨이 호주 룩셈부르크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또 대부분 나라들이 최근 10년 새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인 데 반해 한국은 계속 오름세를 보였다.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2000년 3.2%에서 2006년 3.6%로 올랐고 2009년 3.7%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본은 2000년 3.7%이던 이 비중이 2009년 2.6%로 낮아졌고 미국도 2.6%에서 1.7%로 줄었다. 프랑스도 3.1%에서 1.5%로 급감했다.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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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상위 1% 기업이 법인세 78% 부담

[Focus] 세계는 법인세 인하중…한국만 정치논리에 '역주행'
과세당국뿐 아니라 조세법 학자 등 전문가들이 한국의 조세 제도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것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규정이 너무 많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에 규정된 조세 지출이다.

국가재정법은 조세 지출을 ‘조세 감면·비과세·소득공제·세액공제·우대세율 적용 또는 과세이연 등 조세 특례에 따른 재정 지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조세 원칙에 예외조항을 많이 두면 조세 지출 확대로 국가 세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조특법상 조세 지출 항목은 올해 201개나 된다. 2011년에는 177개였다. 1년 만에 24개 항목이 늘어난 것이다. 항목만 늘어난 게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6~2011년 국세 수입은 연평균 6.9%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각종 비과세·감면을 통한 조세 지출은 연평균 7.5% 늘었다. 유한욱 KDI 연구위원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조세 지출 규모는 총 41%나 확대돼 같은 기간의 국세 수입 확대율인 29%를 크게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재정에 부담을 주는 정도와 속도가 모두 빨라진다는 뜻이다. 비과세·감면 혜택이 상대적으로 많은 데 비해 특정 계층에 대한 과세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0년 소득세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의 45%를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의 40%는 소득세를 한푼도 안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인세의 경우는 더 심하다. 2010년 법인세액에서 세수금액 상위 1% 법인이 부담한 법인세는 전체의 77.8%에 달했다. 광범위한 비과세·감면에 음성적인 세금 탈루까지 횡행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같은 쏠림 현상을 바로잡지 않는 것은 과세 형평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