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망 중립성'은 지켜져야 할까
"공공성이 생명인 인터넷 망은 중립성이 필수"


"트래픽 폭증으로 모든 네트워크 마비될 수도"

유선 인터넷은 물론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가 일반화하면서 이른바 ‘망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사업자가 유·무선 인터넷망을 이용해 전달되는 인터넷 트래픽에 대해 데이터의 내용이나 유형을 따지지 않고 이를 만들거나 소비하는 주체에게 차별없이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비차별, 상호 접속, 접근성 등 3가지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들 한다.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통신사들은 데이터 트래픽 급증으로 망 투자관리비가 증가한 만큼 콘텐츠를 만들거나 소비하는 사업자와 사람들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스마트 TV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전자업체나 콘텐츠 생산기업들은 망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카카오톡 서비스가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여기에 통신 3사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스마트 TV 제조사에 공문을 보내 망 사용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일시적으로 인터넷 공급까지 중단하면서 논쟁은 더욱 가열되는 상황이다. 망 중립성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인터넷 업체들이나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은 차별 없는 네트워크 접속이라는 망 중립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인터넷의 개방성을 강조한다. 통신망은 마치 전력이나 철도 등과 같이 공공성을 갖는 사회 인프라로 봐야 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의 이익보다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와 같은 망 사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선별적으로 내보내는 등 인터넷 콘텐츠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인터넷 산업 전반은 물론 사용자들에게도 직접적인 피해가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 VD사업부 이경식 상무는 “네트워크 이용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도 어긋나고 글로벌 동향에도 역행한다. 스마트 TV 시장을 한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KT 등이 주장하는 사용료 부과 등 일방적 주장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영국 CJ헬로비전 상무는 “15년 동안 인터넷업계에서 일하며 트래픽 과부하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많았지만 그로 인해 망한 인터넷 사업자는 한번도 못봤다”며 인터넷망 사업자들의 엄살이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다음의 이병선 이사도 “다음TV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계속해서 나오기 위해서는 망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의 강정수 전문연구원은 “기술 발달로 이제 망사업자들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오가는 데이터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져 어디로 가는지 모두 알 수 있는데 망 중립성이 훼손될 경우 망사업자의 간섭과 차별을 통해 이들은 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은 그만큼 희생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대

통신업계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의 동영상·전화·메신저 서비스들이 대용량의 트래픽을 유발해 네트워크망의 품질을 떨어뜨린다며 망 투자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신업체들은 네트워크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트래픽도 순식간에 늘어 여유 용량이 모두 채워진다며 통신사 혼자 해결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인터넷망 투자 및 유지 비용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을 넘는 엄청난 규모인데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이런 투자에는 전혀 돈을 쓰지 않으면서 망에 무임승차 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통신사들은 네트워크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망 중립성만 강조될 경우 전국 네트워크 망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KT의 김효실 상무는 “이통사들의 영업이익이 계속해서 하락하는 가운데 통신망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통신망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보기술(IT) 생태계 자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태철 SK텔레콤 전무 또한 “인터넷 트래픽은 과도하게 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비용은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며 망 중립성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필요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안형택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신 3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줄어든 반면 투자비는 52.8%나 늘어났다”며 “이는 통신사의 투자 여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따라서 과도한 다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서비스와 소수의 초다량 이용자에 대해서는 네트워크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통신사업자가 합리적으로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생각하기

망 중립성 문제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원칙적인 망 중립성 원칙을 확립했지만 유선 인터넷에는 이를 엄격히 적용하는 반면 무선인터넷에서는 일정 범위에서 통신사의 망 관리를 인정했다. 영국은 트래픽 폭증을 막기 위한 콘텐츠 차별은 금지하면서도 통신사의 일정한 망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 문제는 옳고 그름보다는 입법이나 정책 결정으로 해결할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망 중립성'은 지켜져야 할까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망 중립성과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고 사업자 간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한 것으로 통신사업자들이 합법적인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서비스나 망에 위해가 되지 않는 기기를 차단하거나 불합리한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망의 보안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거나 일시적 과부하에 따른 망 혼잡을 해소하기 위한 경우 등에 한해 통신사업자가 제한과 차단 등 합리적인 수준의 트래픽 관리는 인정해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가이드라인은 망 중립성을 내세우는 듯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차별도 할 수 있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 통신사와 망 사용자 간 갈등의 소지만 더 키운 셈이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은 없느니만 못하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 수렴은 하되, 분명한 원칙을 담은 망 중립성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다시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과 소모적 논쟁을 막을 수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