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해법을 놓고 벌인 신경전에서 대다수 국가 지도자들이 성장을 외친 올랑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재정긴축 정책을 해법으로 고집해왔다. 반면 최근 집권한 올랑드는 재정자금을 풀어 경제를 우선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리의 추는 주요 8개국(G8) 정상들이 “유럽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성장정책의 병행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 올랑드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구체적 위기 해결책을 내놓는 데에는 실패해 다음달 그리스 총선거가 유로존 재정위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G8정상, '긴축 일변' 메르켈 압박

G8 정상들은 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대통령 별장(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를 가진 뒤 내놓은 성명을 통해 “위기 해법이 모든 국가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또 “우리의 시급한 임무는 성장과 일자리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메르켈의 긴축 일변도 해법 대신 성장의 중요성을 역설한 올랑드의 주장이 보다 넓은 공감대를 얻은 것이다. 정상회의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메르켈 총리, 올랑드 대통령,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참석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에 빠진 캐머런 영국 총리 등 독일을 제외한 다른 G8 정상들은 긴축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메르켈 총리를 압박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는 19일 오전 양자 회동을 갖고 “침체된 유로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르켈을 가장 강하게 압박한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오바마는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수습책으로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다고 설득했다. 오는 11월6일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로선 유로존 위기로 미국의 경기 회복이 타격을 받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기업이 투자를 줄인다면 미국 피츠버그와 밀워키에 있는 근로자들의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유했다. 메르켈 총리도 기존 긴축 일변도 정책 주장에서 한걸음 물러났다. 메르켈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독일과 프랑스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유로존의 재정 긴축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예산 균형을 통한 재정 건전성과 성장을 위한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 구체적 해결책 도출은 실패

G8 정상회의가 유로존의 긴축보다 성장에 힘을 실어줬으나 구체적인 위기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부실한 스페인 은행들에 유로기금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정도의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쳤다. 한발 뺀 메르켈 총리도 성장과 긴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총론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여전히 큰 입장차를 보였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구제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은 채로 그리스에 무임승차해도 상관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유럽의 일부 정상들은 이 지역 재정위기 해법으로 △유로안정화기구(ESM)의 유로존 일반 은행 자본확충 직접 지원 △유로본드(유로존 공동채권) 발행 △ECB의 무제한적인 이탈리아·스페인 국채 매입 등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법의 구체적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정상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른 G8 정상들이 유로존이 추가적인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메르켈 총리가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한 독일 관리는 “정상들이 자유롭고 내실있는 의견 교환을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올랑드 대통령이 이제 성장을 옹호하는 외침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실질적 해결책을 내놓을 것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17일 치러지는 그리스 2차 총선거 결과가 유로존 재정위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이행을 반대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그렉시트(Grexit·그리스 유로존 탈퇴)’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 새 정부가 구성된 뒤 긴축이행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면 ECB가 그리스 은행에 자금 공급을 중단하고 결국 유로존 방출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마르코 애넌지아타 GE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정부가 긴축 이행을 거부하는 순간 그리스의 유로존 방출은 곧바로 쓰일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라고 내다봤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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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추가도발땐 공동대응" … G8정상, 핵실험 등 강력 경고

주요 8개국(G8) 정상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포함한 추가 도발을 강행할 경우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G8 정상들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정상회의 후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깊이 우려한다”며 “북한이 국제적 의무사항을 준수하고 모든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주장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탄도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 등 북한이 추가 행동을 하면 (관련 결의안 등을 통해)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북한 당국에 의한 외국인 납치와 북한 내 정치범 상황을 포함한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G8 정상들은 회의 첫날인 18일 저녁석상에서도 북한의 도발 사태를 이란 시리아 문제와 함께 중요한 국제안보 이슈로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G8 정상회의 업무 세션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날 만찬에서) 북한의 상황에 관해 논의할 때 정상들은 모두 북한이 국제적인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국제 공동체에 다시 동참할 길이 있지만, 지난 몇 달간 보여준 것처럼 도발적인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22일 G8 정상들의 공동성명에 대해 “공화국의 신성한 자주권을 침해하려는 8개국 집단의 무모한 정치적 도발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며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8개국 수뇌회의 참가자들이 회의 선언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의 평화적인 위성 발사와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부당하게 걸고 든 것을 단호히 규탄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