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을 보면 과거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각지의 여러 원주민을 대상으로 가혹할 정도의 약탈과 착취를 일삼았다는 문구를 대면하곤 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그 사례 가운데 하나로 유럽인들이 순수한 인디언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하찮은 물건을 건내주고 금과 보석 같은 값비싼 물품과 교환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경제 관념에 무지한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불공정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기꺼이 이런 ‘교역’에 나선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이렇게 무지한 인간들이기만 했을까? 이러한 서술은 원주민들 또한 나름의 셈법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 경제 주체를 무시하고 있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유럽 정복자들은 신대륙 원주민과 불공정 거래를 했다?

원주민들은 무지한 인간?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향신료 교역이다.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에는 고기를 오래 저장하는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금에 절인 고기는 상대적으로 질기고 맛이 없었다. 이런 고기를 맛있게 먹는 유일한 방법은 향신료로 양념을 만들어 함께 먹는 것뿐이었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산 향신료를 맛보고 나서 거의 필수품으로 삼다시피 했다.

유럽 상인들은 지중해를 건넌 뒤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로 가는 경로를 통해서 향신료를 조달해 왔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 발발 후 오스만투르크가 이 무역로를 차단했다. 향신료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막힌 셈이다. 유럽인들은 향신료가 있는 인도로 가기 위해 아프리카를 거쳐 가는 먼 바닷길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결국 포르투갈인인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 이 바닷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아프리카 해안에 무역 기지를 세웠다. 인도로 가는 긴 항해 중간에 식수와 음식물을 보급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원주민과의 교역이 시작됐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휴대하고 있었던 흔하디 흔한 물건을 원주민에게 건네주면 금과 보석 같은 값비싼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행태는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대에서도 그대로 목격됐다. 그들은 서인도제도에서 마주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하찮은 물건을 건네고 대신 금으로 만든 장신구들을 받았다. 원주민들도 그러한 거래에 기꺼이 응했다. 콜럼버스는 일기에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선원들이 유럽에서라면 버릴 만한 물건을 가지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진 보석과 교환하는 모습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적었다. 또 그는 선원들에게 그러한 방식의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원들이 자신이 가진 하찮은 물건과 원주민의 보석 등을 교환한 것은 인디언들에게도 썩 나쁜 거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원주민들에게 금과 보석 등은 유럽인들이 보여준 여러 물건에 비해 흔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금과 보석은 어디에 가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유럽 선원들이 보여준 여러 물건들은 그들에게서 구하지 못하면 얻을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주민들에게 금과 보석이 유럽인들이 교환하자고 한 물건들에 비해서 부존량이 많은 재화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부존량이 많아 교환가치가 낮은 재화인 금과 보석을 내주고, 구하기 어려운 선원들의 물건과 교환한 원주민들의 거래 방식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는 그 유명한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을 통해서 재화의 가치 측정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재화의 가치에는 해당 재화를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을 의미하는 사용가치와 해당 물건을 가지고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구매력을 나타내는 교환가치 두 가지가 있는데, 물과 다이아몬드를 보면 항상 이 두 가지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물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재화이지만 싼 값에 거래되고,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물건임에도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을 보인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이러한 의구심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들은 1세기가 지난 1870년대에 등장한 한계효용학파들이었다. 한계효용학파에 따르면 상품가격은 총효용이 아니라 한계효용에 영향을 받는다. 한계효용은 재화의 부존량과 소비량이 많을수록 작아지는데, 부존량이 많은 물은 한계효용이 낮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사용가치가 높은 재화이지만 교한가치는 낮다. 반면 다이아몬드의 부존량은 물에 비해 극히 적어 한계효용이 높기 때문에 사용가치가 낮은 물건임에도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거래 상황따라 다른 재화의 가치따라 달라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유럽 정복자들은 신대륙 원주민과 불공정 거래를 했다?
특정 재화의 가치는 각 경제주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휘발유는 흔한 것이지만 물은 귀하게 취급될 것이다. 실제로도 물 1리터가 휘발유 1리터보다 휠씬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물이 싸고 휘발유는 훨씬 비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이 자신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물건을 건내주고 상대적으로 귀한 물건을 교환했을 때 아무도 잘못된 거래라며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원주민들과 유럽 선원들의 거래 상황에서도 의구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비판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이후 많은 유럽국가들이 약한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죽였으며, 잉카와 아즈텍 문명과 같은 우수한 인디언 문명을 파괴한 부분에 있다 할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총효용 : 일정 기간 동안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주관적인 만족의 총량

▨한계효용 : 비량이 1단위 증가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총효용의 증가분

▨사용가치 : 해당 재화를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을 의미

▨교환가치 : 해당 물건을 가지고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구매력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