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 버스터 키튼

콧수염·중절모의 채플린
'공감' 주는 감정 드라마 추구…몸 개그·팬터마임으로 약자 위로하고 권력자에 "똥침"

무표정 연기의 달인 키튼
코미디에 무감각 방식 도입…고통스런 상황일수록 "덤덤" 몸동작·스펙터클 화면 중시
[세기의 라이벌] 노동자 친구 채플린 vs 중산층 대변 키튼…무성영화 양대산맥
찰리 채플린의 후기 걸작 ‘라임 라이트’(1952)는 ‘이것은 어느 발레리나와 광대의 이야기’라는 자막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주인공 칼베로는 한때 유명한 코미디언이었지만 어느덧 “슬픈 인생의 무게가 쌓여”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말년을 지내고 있다. 낮술에 취해 귀가하던 칼베로는 우연히 하숙집에서 자살을 시도한 발레리나 테리를 구하게 된다. 그녀의 좌절과 상실감을 들은 칼베로는 그녀의 데뷔를 도와 스타가 되게 한다.

하지만 같은 극장의 무대에 선 칼베로는 씁쓸한 실패를 경험한다. 테리가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작곡가 네빌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자신을 위한 특별 공연에서 최고의 코미디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를 보기 위해 테리가 찾아오지만 마지막 공연히 끝난 뒤 그는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이 작품은 채플린의 인생 고백담처럼 보인다. “웃어주지 않으면 비극이 된다”고 말하는 극중 칼베로의 대사는 희극과 비극이 아주 멀리 있지 않다는 통찰뿐만 아니라 젊음과 늙음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놀라운 대목은 그의 마지막 무대에 선 상대역이 버스터 키튼이라는 사실이다. ‘제너럴’(1926)의 흥행 실패 후 유성영화가 도래한 미국 영화사에서 조용히 물러나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던 키튼의 인생은 그 자체로 또 한 명의 칼베로였다. ‘라임라이트’에는 두 사람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분장실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화면의 앞쪽과 뒤쪽을 차지하고 있다.

‘라임 라이트’의 배경이 되는 1910년대는 무성 코미디 영화가 활황을 누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채플린은 열일곱 살에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프레드 카노 극단에 입단한다. 이후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써내려간 맥 세네트에게 스카우트되면서 대서양을 건너게 됐고, 1914년부터는 10분 분량의 단편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이듬해에는 감독으로 데뷔해 자신의 영화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부이면서 당대 최고 스타였던 메리 픽포드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를 규합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를 창립했고, 1920년에는 장편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그의 첫 장편영화는 1921년 작 ‘키드’였다. 이후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스’(1936), ‘위대한 독재자’(1940) 같은 걸작들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고통과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콧수염을 단 떠돌이 찰리의 연기를 보며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맥 세네트 밑에서 배출된 또 한 명의 위대한 코미디언이 바로 버스터 키튼이었다. 남달리 유연했던 그는 서커스를 하는 부모와 함께 어릴 적부터 노래와 춤, 재담을 선보이는 보드빌 쇼를 순회하며 경력을 쌓았다. 1917년 유명 희극배우 로스코 패티 아버클의 눈에 띄어 영화에 데뷔한 그는 1920년에 만든 ‘일주일’을 시작으로 연출과 연기를 겸하며 1928년 ‘카메라맨’까지 30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주연도 맡았다.

채플린이 콧수염과 몸에 맞지 않는 패션, 중절모와 지팡이를 통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면 키튼은 무표정한 연기로 시대를 풍미했다. “표정이 사라질수록 관객의 웃음은 더 커진다”고 강조한 그의 연기는 고통스러운 상황일수록 더욱 심드렁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는 ‘위대한 무표정(The Great Stone Face)’이라 불리면서 코미디에 무감각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전성기 때 이들은 특유의 가면을 쓴 캐릭터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채플린이 연기하는 떠돌이 찰리는 노동자나 부랑자 계급을 대변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고, 권력자들에게 ‘똥침’을 먹이는 에피소드로 후련함을 안겨줬다. 찰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채플린이 희극에 도입한 것은 인생의 ‘비극’이었다. 삶의 대부분은 힘들고 배고픈 상황이지만 채플린은 가난의 한가운데에서도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그의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것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세계를 절묘하게 결합한 덕분이다.

키튼이 주로 대변한 것은 미국의 중산층 계급이었다. 그러나 성공한 중산층보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난국을 해결하려 애쓰는 분주한 도시인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특유의 ‘설상가상’ 시퀀스를 만들어 냈다. 설상가상 시퀀스는 키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어려운 상황이 점점 불어나 웃지 못할 파국에 이르는 키튼 특유의 영화 스타일을 이르는 말이다.‘일곱 번의 기회’에서 키튼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27세의 생일 저녁 7시까지 결혼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동분서주하던 그는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광고를 내고, 약속장소에 몰려든 신부감 떼거리를 맞이하게 된다. 키튼의 영화는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 놓인 남성 주인공의 운명 드라마였다.
[세기의 라이벌] 노동자 친구 채플린 vs 중산층 대변 키튼…무성영화 양대산맥
하지만 두 사람은 무성영화의 종말과 함께 서서히 뒷걸음질치게 된다. 채플린은 1931년 ‘시티 라이트’를 제작하며 유성영화 제작을 거부했다. 몸개그와 팬터마임이 만국어인 이상 대사는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채플린은 무성영화가 인류의 공통 표현 수단이며, 진정한 극은 만인의 공감에 기반하는 것이기에 근본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배우들이 극예술의 기본을 잊고 있다고 지적하며 성공하려는 배우들이 알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팬터마임이라고 주장했다. 사운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라임 라이트’의 주요 장면들은 여전히 무성영화의 개그와 몸짓으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특유의 콧수염과 분장도 지우고, 떠돌이 찰리가 아니라 채플린의 맨얼굴로 무성영화가 사라져 버린 시대와 맞서고 있다.

키튼은 1926년 장편 ‘제너럴’을 연출한다. 야심차게 시도한 이 작품은 흥행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채플린처럼 감정의 드라마를 추구하기보다 연속되는 장면을 연결하며 긴장감을 구축하는 그의 스타일은 한 시간이 넘는 장편 영화를 만들기에는 무리였다.

에드가 모랭은 저서 《스타》에서 두 사람을 ‘홀림’의 대가로 표현한다. “희극의 주인공은 충동에 따라 움직이며,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한다. 키튼의 얼굴, 채플린의 자동인형적인 걸음걸이는 거의 최면술에 걸린 것 같은 홀림을 나타낸다. 이 홀림은 그들로 하여금 있을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하게 하지만, 또한 그들을 최종적인 승리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실수한 나머지, 그 자체에 의해, 코미디의 주인공은 적을 이길 수 있으며, 심지어 사랑하는 여자도 유혹할 수 있다.”

이보다 더한 찬사가 어디에 있을까. ‘실수하는 인간’, 그것은 두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증명된 인간 존재론이었다. 실수 인생은 그들의 실제 인생이기도 했다. 여러 차례 파경에 이른 채플린의 결혼과 이혼,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사로잡힌 버스터 키튼의 말년은 스타이자 천재 예술가의 삶이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말년의 모습을 선사하는 ‘라임 라이트’의 두 사람은 자신들을 스타로 만든 캐릭터를 버리고 맨얼굴 자체로 감동을 선사한다. 두 사람의 입가에 어린 표정은 ‘진정한 웃음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라는 것을 증명한 영화사 자체가 아니었을까.

이상용 <영화평론가 ·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