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JP모건 파생상품 손실 2조원…'볼커 룰' 앞당기나
JP모건의 망신과 금융개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4일 JP모건체이스의 거액 투자 손실 사태는 월가개혁의 당위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JP모건은 가장 튼실한 은행이고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가장 똑똑한 은행가이다. 그런데도 20억달러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이 월 스트리트 개혁법안을 통과시킨 이유”라고 설명했다. - 5월15일 연합뉴스

☞ JP모건은 200년의 역사를 가진 금융계의 공룡이다. JP모건의 역사는 곧 현대 금융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생긴 1913년 이전 JP모건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나 다름없었다. 모건 가문은 19세기와 20세기 초 경제위기 때 미국 정부와 뉴욕 증시를 여러 차례 구해냈으며 1930년대 대공황 때에도 이름을 날렸다.

JP모건은 1934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 업무영역 제한을 골자로 한 ‘글래스-스티걸법’이 제정된 이후 JP모건과 모건스탠리로 분리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JP모건은 2000년 체이스맨해튼 은행과 합병, JP모건체이스로 거듭났으며 2004년 다시 뱅크 원과 합쳤다. 2008년 3월에는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를 사들이고 그해 6월에는 서민 금융회사인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해 명실상부한 미국 최대 은행이 됐다.

대공황과 최근의 금융위기에서도 살아남아 덩치를 키워왔던 JP모건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유서 깊은 수많은 금융회사를 단 한순간에 파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파생상품 투자 손실이 그것이다. JP모건의 다이먼 회장은 최근 “금융파생상품에 잘못 투자해 지난 6주간 20억달러의 투자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상황에 따라 손실이 40억달러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즉각 JP모건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낮추고 등급전망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바꿨다.

JP모건이 물린 상품은 미국 금융위기를 증폭시킨 한 원인으로 꼽히는 CDS(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란 파생상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JP모건이 맨처음 이 상품을 고안해냈다. CDS는 국가나 기업의 부도위험 자체를 사고 팔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정한 보증료(수수료)를 내고 CDS를 사면 국채나 회사채 등 관련 채권이 부도가 나면 투자금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된다. 부도위험을 회피(헤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CDS를 판매하는 금융사는 수수료 수입을 얻는다. CDS 프리미엄이라고 불리는 수수료는 해당 채권의 부도확률이 높으면 비싸고, 반대로 낮으면 싸다.

JP모건에 엄청난 손실을 안긴 장본인은 런던 법인에서 일하는 브루노 익실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거액의 베팅을 잘해 시장에서 ‘런던 고래’란 별명으로 통했다. 그가 일하는 런던 법인은 2010년 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기도 했다. 익실은 앞으로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보고 CDS를 대거 매도했다. CDS를 판 측은 국채나 회사채가 부도가 나지 않은 한 앉아서 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부도가 날 경우 거액을 다 물어줘야 해 무한대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 JP모건엔 불행하게도 시장은 유럽발 재정위기 우려가 다시 불거지면서 예상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결국 한순간에 2조원이 넘는 돈을 날린 것이다.

파생상품은 운이 따르면 수십배, 수백배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반면 잘못되면 한순간에 쪽박을 찰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의 투기성이 강하다.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돈을 잃는 ‘제로섬(zero-sum)’ 상품이기도 하다. 상품을 매매하는 트레이더 혼자 72억달러를 날려버린 경우도 있고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은행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1995년 영국 베이링 은행의 파산이다. 233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이 영국 금융사는 싱가포르 법인의 수석 트레이더였던 닉 리슨이 일본 주가지수선물 상품에 투자했다가 14억달러를 날리면서 몰락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까지 경영에 참여했던 미국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사례도 유명하다. 이 회사의 설립자 존 메리웨더는 유명한 채권 딜러였으며, 이사진에는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스 교수가 참여했다. 이 두사람은 옵션가격 결정 모델을 발전시킨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1998년 가을 LTCM은 러시아 채권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46억달러를 까먹었다.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은 LTCM에 유례없는 구제금융을 내주기까지 했다. 2008년 선물 거래로 72억달러의 손실을 본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도 트레이더인 제롬 케르비엘이 회사의 눈을 속이며 거래하다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JP모건 파생상품 손실 2조원…'볼커 룰' 앞당기나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JP모건의 거액 투자손실은 글로벌 은행의 리스크가 불분명하고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시장에선 ‘볼커 룰(Volcker Rule)’이 더욱 강화돼 시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Fed 의장이었던 폴 볼커의 이름을 딴 ‘볼커 룰’은 2010년 제정된 금융개혁법안(도드-프랭크법)에 포함된 것으로 글래스-스티걸법처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 업무영역 제한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상업은행이 자기자본으로 파생상품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게 제한된다. 볼커 룰 시행은 다이먼 회장 등 월가의 반대로 당초 올 7월에서 2014년 7월까지 2년 유예됐지만 앞당겨 시행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

상품 교역조건 좋아지면 국민 삶의 질도 높아져

상품교역 조건과 체감경기

지난 1분기 우리나라의 상품교역 조건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 이후 가장 나빴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가격에 비해 수입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탓이다. 한국은행은 1분기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75.1로 전년 동기 대비 6.4% 하락했다고 14일 발표했다. - 5월15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JP모건 파생상품 손실 2조원…'볼커 룰' 앞당기나
☞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다른 나라에 상품 하나를 수출하고 받은 돈으로 다른 나라의 물건을 얼마만큼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 단위의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말한다. 2005년(100)이 기준연도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75.1이라는 얘기는 2005년엔 한 단위의 수출대금으로 상품 100개를 수입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75.1개만 수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순상품교역조건이 좋아졌다는 것은 이 지수가 상승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지수가 상승하려면 수출단가가 수입단가보다 더 많이 상승하거나, 수출단가의 하락폭이 수입단가의 하락폭보다 작아야 한다. 따라서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상승하면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좋아진다. 반대로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하락하면 수출이 호조를 보이더라도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좋지 않다. 수입품 가격이 비싸져 생활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무역이 국민이 느낄 수 있을 만큼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면 순상품교역조건지수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지난 1분기 순상품교역조건지수 75.1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던 2008년 4분기와 같다. 교역조건이 나빠진 것은 수출단가 상승세는 주춤한 반면 수입단가는 오름세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1분기 수출단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5%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석유제품(11.8%)과 자동차(4.8%) 단가는 뛰었지만 주력 제품인 반도체(-27.8%)와 화공(-5.0%) 철강(-4.2%) 등의 제품 가격이 떨어져 상승률을 갉아먹었다. 반면 수입단가지수는 원유(17.9%)와 소비재(7.1%)를 중심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나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