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밤 산둥(山東)성 이난(沂南)현 동스구(東師古)촌. 검은 안경을 쓴 한 사람이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을 틈타 담을 넘은 그는 골목길을 통해 마을을 빠져나간 뒤 들판을 달리고,개천과 강을 건넜다. 5㎞가 채 되지 않는 길을 달리는 동안 그는 200차례 이상 넘어졌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는 지지자들이 몰고온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27일 그는 베이징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나타나 자신을 부당하게 탄압한 지방정부 관리들의 처벌과 가족의 안전 보장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중국의 인권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다시 부상했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은 그의 처리를 위해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인 천광청(陳光誠)의 탈출기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공안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던 시각장애인이 가택연금을 뚫고 나온 것도 대단했지만 그가 향한 곳이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이었던 것도 극적이었다. 인권문제에 관해 평행선을 달려온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그의 처리를 놓고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Focus] 美·中 외교 수렁에 빠뜨린 '천광청 드라마'

#영화같은 탈출


천 변호사의 탈출은 그와 7~8명의 인권운동가들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탈출 시도는 이미 두 달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온종일 집안에만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척 침대에만 누워있으면서 감시인들을 안심시켰다. 달빛이 없는 지난달 22일을 D데이로 잡았다. 감시요원이 식수를 뜨러 갔다오는 동안 다른 방으로 이동한 뒤 뒷담을 넘었다. 그러나 이 때 다리를 다쳐 탈출기간 내내 그는 수도 없이 넘어져야 했다.

탈출을 도운 허페이룽(何培蓉)은 “천광청을 구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차를 몰고 갔을 때 그의 온몸은 물에 젖었고 진흙투성이였다”고 회고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천광청은 또 다른 인권운동가인 궈위산(郭玉閃)의 도움을 받아 안가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25일 천 변호사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 대한 3가지 요구’라는 제목의 15분짜리 동영상을 찍었다. 동영상에서 천 변호사는 자신을 감시하던 공안들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그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경애하는 원 총리, (나는) 어렵게 탈출했다”며 말을 꺼낸 그는 지난 2년간 지방의 관리와 공안요원들이 자신과 부인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에게 가한 폭행을 상세하게 폭로했다. 그는 원 총리에게 이들에 대한 처벌과 가족의 안전보장 등을 요구했다.

#곤혹스런 미국과 중국


중국과 미국은 모두 곤혹스런 처지가 됐다. 더구나 베이징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매년 한 차례씩 여는 중·미 전략경제대화가 5월3일과 4일에 예정돼 있었다. 양국 간 경제적 협력과 북한 이란 시리아 등 국제적 현안 등을 협의하는 회의였지만 천 변호사 사건으로 회담 자체가 제대로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미국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29일 베이징에 급파해 중국과 협의에 들어갔다. 중국 지도부 역시 29일에 긴급 회동을 갖고 그의 처리 방안을 협의했다.

사태는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 했다. 천 변호사가 망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 결정적이었다. 인권문제로 전략경제대화를 무산시킬 수 없다는 양국의 득실계산도 한몫했다. 양국은 천 변호사가 가족과 함께 톈진에서 법률을 공부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로 합의했다. 미국 측은 천 변호사를 즉시 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탈출 중에 골절상을 입은 데다 직장출혈 등으로 결장암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병원에서 가택연금과 같은 공포상황을 경험한 천 변호사가 돌연 미국행을 요구한 것이다. 그를 데리고 이미 치외법권 지역인 대사관을 빠져나온 미국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야당들과 인권단체들은 미국이 안이하게 대처해 천 변호사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

# 중국의 의도는?

곤혹스런 미 오바마 행정부를 구한 것은 뜻밖에도 중국이었다. 중국은 천 변호사가 베이징 미 대사관을 나오자 미국에게 내정간섭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천 변호사가 미국행을 원한 지 하루 만에 그의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과거 중국의 유명 인사가 미국의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요청한 사례는 두 번 있었지만 결과는 서로 판이했다. 지난 2월 충칭시 공안국장인 왕리쥔(王立軍)이 청두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 설득해 제발로 걸어나가게 함으로써 중국과의 마찰을 회피했다. 이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에 발생한 반체제 지식인 팡리즈(方勵之)의 사례는 이와 대조적이었다. 당시 팡리즈가 주중 미국대사관에 가서 망명을 요청하자 중국은 주변을 통제하는 등 팡리즈의 망명을 막고자 각종 압력을 행사했다. 결국 13개월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중국은 그의 미국행을 묵인했다.

당초 천 변호사는 팡리즈의 사례를 따를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가 대사관을 나온 이후의 상황은 왕리쥔의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중국은 천 변호사가 병원으로 온 이후에는 그의 미국행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미국은 협상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준 꼴이 됐다. 누가 봐도 칼자루를 쥔 쪽은 중국이었지만 결과는 미국의 승리였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중국이 ‘통 큰 양보’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광청 사건으로 앞으로 야기될 갈등과 대립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전략경제대화 개막식 연설에서 “미·중 양국은 대립과 충돌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국 간 협력을 유달리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두고 중국이 인권문제에 대해 정책적 전환을 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감이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천광청에 대해 미국 유학 허용이라는 ‘결단’을 함으로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을 것이라는 분석도 한다. 그러나 중국이 천 변호사 문제를 양보하고 경제적·정치적 성과물을 얻어냈다는 정황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베이징=김태완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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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체제 시각장애 인권 변호사

천광청은 누구인가

[Focus] 美·中 외교 수렁에 빠뜨린 '천광청 드라마'
천광청(陳光誠·40)은 중국과 미국의 인권운동가 사이에서는 꽤 유명인사다. 지난해 말 그의 팬이자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인 크리스천 베일이 그를 만나기 위해 산둥성 집까지 찾아갔다가 공안과 몸싸움을 벌여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71년 산둥성 린이(臨沂)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열병을 앓아 시력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난징(南京)에 있는 중의약대에서 중국 의학을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와 안마사와 침구사로 일했다. 이후 농민과 장애인의 처지에 울분을 느껴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을 공부했다. 합격 후에는 인권변호사로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다. 2003년 외국어 교사였던 위안웨이징과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그는 2005년에 산둥성 정부가 산아제한을 위해 지역 여성 7000명에게 강제 불임과 낙태를 강요한 사실을 폭로해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2006년에 경찰에 체포돼 4년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했는데, 다른 사람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고 교통흐름을 방해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2010년 10월 석방됐지만 아무 이유 없이 가택연금을 받아야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여러 차례 중국 정부에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천광청은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인’에 뽑혔다. 2007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