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는 한 나라의 모든 극장이 매년 일정 기간 또는 일정 비율 이상 자국 영화를 의무상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자국의 영화와 영화산업을 지키고 육성하려는 보호정책의 일종이다. 스크린쿼터는 1927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영국 의회는 ‘영화헌장(Cinematograph Act)’을 제정해 영국 내 모든 극장에서 자국 영화를 30% 이상 상영토록 강제했다. 그 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이 이 제도에 동참했다. 현재는 유럽과 아시아, 중남미의 일부 국가가 스크린쿼터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7년 처음 시행됐다. 이 시기의 한국영화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스크린쿼터와 같은 든든한 보호막이 절실했다. 시행 초기에는 연간 6편 이상의 한국영화를 총 90일 이상 의무상영하도록 규정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변화를 거쳐 현재는 연간 1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재량에 따라 상영일수를 축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실제로는 연간 106일 정도의 스크린쿼터가 시행되고 있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62) 스크린쿼터와 보호무역

한국영화의 눈부신 도약

스크린쿼터의 보호 때문이었을까. 1990년대에 한국 영화 산업은 대기업이 잇따라 진출하면서 눈부시게 도약했다. 대규모 투자와 할리우드 영화사 못지않은 배급력이 발휘되면서다. 1997년 25.5%에 머물던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2년 상반기 현재 58%에 육박한다. 또한 1997년 59편에 불과하였던 한국영화의 제작편수는 2011년 216편이 제작되어 4배가 넘는 성장세를 나타내었다.

이제는 한국영화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진입한 만큼 다른 나라의 영화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이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스크린쿼터라는 울타리를 이제는 걷어낼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은 스크린쿼터가 보호무역의 정책 수단과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은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자국의 산업이나 생산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관세나 비관세장벽 등의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여 수출이나 수입을 증가 또는 감소시키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보호무역을 실시하였을 때 경제적 효과는 어떻게 될까? 먼저 관세가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관세는 수입상품에 대해 수입국 정부에서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수입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부과된 관세만큼 해당 상품의 시장가격이 상승하고, 정부는 그만큼의 조세수입을 올리게 된다.

보호무역의 경제적 효과는…

하지만 시장가격의 상승은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켜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초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관세가 부과되면 국내의 생산자와 정부는 이득을 보지만, 국내 소비자는 손해를 입게 된다.

비관세장벽은 관세 이외에 정부가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조치들을 일컫는 말로 수입할당제, 수입허가제, 수입과징금 등이 있다. 수입할당제는 정부가 국내로 수입되는 상품의 양을 제한하는 조치를 말한다. 최대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정해 놓고 그 한도 내에서 수입이 이루어지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수입할당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관세와 마찬가지로 국내의 유치산업이나 경쟁력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 효과는 관세를 부과할 때와 유사하다.

수입 수량에 제한이 없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상품의 수요량은 해당상품의 국내 공급량으로 충족하지만,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는 부족한 만큼을 수입을 통해 해결한다. 이때 수입량이 제한되면 부족분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고, 국내 시장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시장가격의 상승으로 국내 생산자의 이득은 상승하는 반면 소비자는 손해를 입게 된다.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쟁

스크린쿼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국영화의 상영일수를 일정 기간 보장함으로써 외국영화의 상영일수를 제한하는 스크린쿼터는 일견 보호무역의 정책 수단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스크린쿼터가 실시됨에 따라 이득을 보는 수혜자들은 국내의 영화산업 종사자와 관계자들이 되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일반 관객들이 된다. 다시 말해 스크린쿼터가 보호무역 조치의 일종이라는 전제하에 이론적으로 관객들은 영화를 더 비싼 돈을 지불하고 관람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우선 스크린쿼터의 축소나 폐지가 불러올 경제적인 타격을 언급한다. 즉,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극장들은 대규모의 제작비와 유명배우들이 투입된 상업성 높은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려 할 것이고, 이로 인해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와 같은 흥행성 낮은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상영은커녕 제작조차 힘들어져 영화시장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62) 스크린쿼터와 보호무역
이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종국에는 문화산업 전체가 낙후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역설한다.

또 이들은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스크린쿼터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문화는 한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를 예술적으로 담아내는 총체로, 문화는 경제로 재단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가 교역의 대상이 되면 강대국의 문화가 약소국의 문화를 소외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약소국 문화를 위한 적절한 정책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며, 스크린쿼터가 이러한 정책적 배려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유치 산업

성장잠재력은 있지만 현재의 경쟁력은 뒤떨어져 있는 산업을 말한다. 이런 산업을 정부가 무역장벽을 통해 보호하면 생산 증대뿐만 아니라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도 배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어떤 산업이 미래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치산업 보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