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분업화와 전문화는 미술계도 피할 수 없었다
올해는 한국 최초의 아트페어(art fair)인 화랑미술제가 30주년을 맞는 해다. 아트페어란 미술품을 거래하는 거래상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를 뜻한다. 한 장소에 여러 작품들이 모여 전시되기 때문에 미술계의 동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축제이기도 하다.

최초의 아트페어는 1967년 독일의 쾰른에서 개최되었다. 그 뒤를 이어 벨기에의 아트 브뤼셀(Art Brussels· 1968년), 스위스의 아트 바젤(Art Basel·1969년), 프랑스의 피악(FIAC·1974년), 미국의 아트 시카고(Art Chicago· 1980년) 등이 지속적으로 창설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세계 곳곳에서 매년 수십 개의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각각의 아트페어는 일반인들을 미술품 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테마와 기획들을 도입하고 있으며, 다양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화랑(갤러리)·미술품 경매에 이어 제3의 미술품 시장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아트페어의 성공을 이끈 이들은 다름아닌 미술품 거래상(art dealer)이다. 그들은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화랑을 운영한다. 또 미술품 경매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이기도 하다. 이들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아트 페어라는 새로운 거래 방식을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미술품 거래상의 등장

미술계에서 거래상들이 이렇게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근대 이전의 미술가들은 대개 귀족과 왕족들을 상대로 작품을 만들고 판매했다. 귀족과 왕족은 미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따라서 근대 이전 미술가들에게는 거래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왕족과 귀족들이 몰락하자 미술가들은 스스로 그림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미술가들은 작업실로 사람들을 부르기도 하고 직접 그림을 들고 다니면서 판매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작업을 거리에서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 활동과 영업 활동을 병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자신들은 작품을 그리는 데 몰두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미술품 거래상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미술에서도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뤄진 것이다.

미술품 거래상은 적극적인 판촉 활동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의 작품을 소비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미술품 거래상들은 미술가의 경제적 안정에 기여하였고, 이는 미술가들이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미술품 거래상은 단순 전시를 넘어 기획전시 상설 전시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신규 작가의 존재를 알리는 기회의 장을 제공해 주는가 하면, 새로운 미술 화풍에 대한 교육의 기능도 담당하기 시작한다. 또한 미술상은 거대 기업이나 부호들의 투자자금이 재능 있는 신규 작가에게 투자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왔으며, 이로 인해 재능있는 신인 미술가들이 생활고로 인해 다른 분야로 떠나는 현상을 막는 데도 지대한 공언을 한다.

화가와 미술품 거래상의 공생

미술품 거래상의 등장은, 미술품 자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화가들의 전문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상은 소비자들에게 풍경화는 누가 더 잘 그리고, 초상화는 누가 더 잘 그리는지 평가해 주기 시작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화가들 역시 시장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좀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평가받는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근대의 화가들은 단순히 화가로 통칭되지 않았고, 풍경화가, 초상화가, 정물화가 등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지칭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다 준 것은 결코 아니다. 미술품을 지나치게 상업화시킨 장본인 또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재능 있는 신인 화가들에게 안정적인 작품 생산에 몰두할 수 있는 금전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그 사람이 작품 모두를 독점적으로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가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인 화가들 역시 자신의 작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해 줄 뿐만 아니라 홍보도 해주면서 생활에 필요한 금전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주는 이런 방식을 쉽게 거절하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많은 화가와 거래상은 독점적인 관계에 놓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거래상과 미술가의 관계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술계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새로운 미술시장'아트 페어'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분업화와 전문화는 미술계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술시장에도 불황이 닥치게 되고, 이로 인해 많은 미술가들이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팔아주지 못하는 거래상과의 독점적 관계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다. 화가들은 미술품 거래상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요구하기 이른다. 거래상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술가의 독점적 관계로 인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거래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그런 시도 중 하나가 아트페어였다.

아트페어는 일반대중에게 상설 전시되는 갤러리가 아니라 한시적으로 전시된다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일반 대중을 전시관으로 유도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또한 여러 화가의 다양한 미술품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자유로운 경쟁에 놓이게 하고 그 속에서 거래가 이뤄지게 함으로써 화가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돼 주었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용어풀이 ☞ 분업화와 전문화

▨ 분업화

단독으로 행하는 일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하여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한 가지 물건을 만들 때, 작업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 분업의 이런 효과는 비교우위를 생산에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 전문화

전문화 역시 일을 분할하여 서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수행되도록 한 것은 분업과 동일하다. 하지만 분업이 주로 개인이나 집단에 주어진 과제를 분할한다는 국한된 의미에서 사용된다면, 전문화는 단순히 일의 분할을 넘어 그런 과정에서 축적된 개인이나 집단, 기관만의 독특한 특성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