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건강 해치는 데 채용 꺼리는 건 당연"

"담배 피운다고 죄인 취급하는 건 문제있어"


흡연에 대한 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추세다.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고 업무용 빌딩의 상당수가 빌딩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정하는 게 요즘이다. 흡연 규제가 점점 강화되면서 채용이나 인사에서 흡연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기업도 늘고 있다. 채용이나 임원 승진에서 흡연자를 아예 배제하거나 비흡연자에게 일정한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부품(DS)사업 부문 직원들에게 ‘흡연자들은 임원 승진, 해외 주재원 선발, 해외 지역 전문가 선발 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식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흡연자는 사실상 임원 승진이 어렵다고 보면 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DS 부문 전 직원에게 금연서약서를 받고 팀장 등 보직을 맡은 간부들 중 흡연자에 대해서는 매달 흡연 여부 검사도 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외에도 흡연자들에게 금연을 요구하거나 일정한 불이익을 주는 기업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본인의 건강은 물론 주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지나치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개인의 취향인 흡연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지적이다. 흡연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삼성전자는 신입사원 공채 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채용 단계부터 흡연 여부를 반영해 사내 금연문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에서다. 삼성그룹은 입사지원자들의 반응과 사회여론을 보고 비흡연자 우대 전형을 삼성전자 이외 다른 삼성 계열사에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이런 방침에 대해 비흡연자들 대부분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편이다. 흡연자에 불이익을 주기보다는 비흡연자를 우대하는 게 반발도 덜하고 자연스럽게 금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해로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건강마저 해치는 흡연자를 기업들이 인사채용에서 꺼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들이 사원 채용 시 신체검사를 하는 이유도 건강한 사람을 뽑기 위한 것인데 비흡연자를 우대하는 것 역시 같은 차원이라는 얘기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신들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권리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인데 흡연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간접흡연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주는지 의학적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다수의 동료들과 생활해야 하는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면서 흡연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흡연권보다 혐연권이 앞서기 때문에 비흡연자 우대정책 역시 당연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금연전도사로 유명한 박재갑 서울대병원 교수는 “부모 중 1명이 담배를 피우면 자녀가 기관지염이나 폐렴에 걸릴 위험성이 1.7배 늘어나고 부모가 모두 흡연하면 2.6배로 증가한다”며 간접흡연의 위험에 대해 지적했다.


반대

흡연이 해롭고 가급적 금연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흡연자들을 마치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네티즌은 삼성의 비흡연자 채용우대 방침에 대해 “군 가산점도 안 주면서 비흡연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채용 단계에서 비흡연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건 기본권인 흡연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는 반응도 있다. KT&G가 담배를 만들어 팔고 있고 이 돈의 상당 부분이 재정으로 들어가는 현실에서 흡연자만을 몰아붙이는 정책들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담배가 그토록 ‘공공의 적’과도 같은 것이라면 정부가 당연히 담배의 제조 판매를 법으로 막아야 하는데 이를 내버려 두면서 그 담배를 사서 피우는 사람만 몰아세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는 것이다.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여건과 인센티브를 주고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데 무조건 담배를 끊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일종의 협박성 정책은 흡연자들의 반발심만 더 부추길 뿐 금연운동 확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블로거는 삼성전자의 정책에 대해 “금연이라는 트렌드에 맞춰 사내 분위기 역시 금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흡연자들이 누릴 수 있는 흡연의 자유가 배제될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며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공간이나 금연 프로그램 지원 등 사내에서 적극적으로 금연을 위한 노력을 더 해준다면 삼성전자 직원들도 타의가 아닌 자발적 금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생각하기

금연 문제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흡연자들의 끽연권과 비흡연자들의 혐연권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에 대한 논쟁도 많고 이 두가지 권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금연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끽연권에 대한 정의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끽연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의 문제다. 흡연자의 상당수는 길거리 흡연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희박하다. 열린 공간에서 담배연기는 바람에 날려버리는데 무슨 피해를 주겠느냐는 식이다. 건물 내 흡연실 내에서의 흡연 역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비흡연자의 입장은 판이하다. 길에서 앞서가는 사람의 담배연기가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하다. 흡연실에서 풍겨나오는 담배연기는 건물 전체로 퍼진다. 사실 흡연자들은 자신들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비흡연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모르고 넘어가는 때가 많다. 방금 담배를 피운 사람과 대화할 때 입에서 풍겨져 나오는 역한 니코틴 냄새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흡연자 인사 불이익은 정당할까요
이는 대부분 흡연자들이 간과하고 모르는 부분이다. 최소한 담배를 끊고 몇 년은 지나야 비로소 비흡연자들의 고충을 뒤늦게 알게 된다. 입사나 승진에서 비흡연자들에게 가점을 주는 정책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금연을 돕기 위한 정부와 직장 차원의 지원과 노력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그들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반강제로 해치고 비흡연자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 한국경제신문 4월23일자 보도기사

삼성전자가 신입 직원 채용 때 비흡연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임직원의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인사고과에 흡연 여부를 반영하는 곳은 있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지원자를 우대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2일 “신입 사원 공채 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직원 채용 단계부터 흡연 여부를 반영해 사내 금연문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 하반기 신입 공채 때부터 면접 전형 단계에서 비흡연자에게 가산점을 줄 계획이다. 흡연 여부는 소변이나 모발 검사로 사후 검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입사 지원자들의 반응과 사회적 여론에 따라 비흡연자 우대 전형을 삼성전자 외에 다른 삼성 계열사에서도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앞서 완제품(DMC)과 부품(DS) 부문 모두에서 임원 승진과 해외 주재원, 연수자 선발 때 비흡연자를 우대하기로 했다. 전 직원에게 금연 서약서를 받고 간부 중 흡연자에 대해서는 금연 때까지 매달 흡연 여부를 검사할 예정이다.